엄마 돌아가시고 한 50여 일 지난날이었다. G 권사님의 아버님께서 소천하셨단 소식이다. 아, 어쩌나! 권사님은 어머님 보내드린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권사님께서 어머님을 보내드린 후 한참 힘드셨단 얘길 전해 들었다. 한 번도 제대로 위로의 마음을 건네지 못했었다. 엄마를 잃고 나니 권사님이 힘드셨단 얘기가 비로소 몸으로 알아들어졌다. 딸이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엄마가 아무리 오래 살아도, 아무리 많은 죽음으로 연습한다 해도 엄마를 잃는 것은 새로운 슬픔이구나! 엄마 장례 후 권사님께서 건네는 메시지 하나도 더 깊은 곳을 건드리며 다가왔었다. 부모님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 남다른 분인데, 아버님마저 보내셨구나! 싶으니 속에서 쿵, 하고 무엇 하나가 또 무너져 내렸다.

 

멀리 남해에 차려진 장례식에 내려가는 준비를 하는 차에 또 다른 비보. N 집사님의 어머님이 소천하셨다는 소식이다. 쿵! 쿵쿵! N 집사님은  G 권사님의 남편이시다. 그러니까 권사님의 시어머님 또한 같은 날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부부가 함께, 같은 날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었다는 소식이다. 죽음이 이렇게 덮칠 수 있다고? 공포가 밀려왔다. 아내의 죽음 후에 쓴 애도 일기, 『헤아려 본 슬픔』에서 C. S. 루이스가 말했다. "슬픔이 마치 두려움과도 같은 느낌이라고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았다." 엄마 애도는 진행 중이었고, 나는 아직 죽음의 강에 휩쓸려 내려갈 것 같은 두려움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 슬픔은 때때로 공포다. 아니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 역시 C. S. 루이스의 표현처럼 "무섭지는 않으나, 무서울 때와 흡사한 느낌, 속이 울렁거리고 안절부절못하며 입이 벌어지는......" 그런 상태이다.

 

하루 일정으로 남해와 보은, 두 곳에 들러 조문하는 일정으로 교우들과 함께 했다. 기가 막힌 일이다. 큰 슬픔 중에 가장 힘이 되어줄 남편 없이, 아내 없이 각각 장례식을 치룬다는 것이. 줄줄 흐르는 권사님의 눈물은 마스크 안으로 흘러 모여 저수지가 될 것 같았다. 새벽부터 하루 종일 기나긴 시간을 버스에서 보냈다. 자다 깨다 하며 시간이 흐른 것 같은데, 정신줄을 놓았다 잡았다 한 것 같기도 하고. 보은에서 조문을 마치고 저녁식사를 했다. 차에 오르는 순간 이제 끝났구나, 두어 시간이면 집에 가 편히 누울 수 있겠지 싶었다.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속이 울렁거리고 배가 뒤틀리기 시작했다. 식은땀이 났다. 휴게소 들르지 않고 논스톱으로 달리겠다고 출발한 버스인데...... 어쩌지. 어쩌지 싶으니 몸은 더욱 어쩔 줄 모르게 되었다. 위로 아래로 분출할 것 같은 무엇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집사님 한 분이 화장실이 급하여 첫 휴게소에서 버스를 세우셨다. 집사님을 따라 달려서 내려 낮에 남해에서 먹은 것까지 토해냈다.

 

울렁거림은 진정은 되었지만 몸이 나아진 것은 아니었다. 다시 출발한 버스에 길게 누워 스스로 안정, 절대 안정을 진단했다. 몸 안에서는 조그만 자극에도 다시 분출하겠다는 것들이 꿈틀거렸다. 비상용으로 비닐봉지를 앞에 두고, 식은땀 흐르는 몸으로 가만히 숨만 쉬며 누워 있었다. 음악의 힘을 빌어 안정을 찾게 위해 이완시키는 음악을 틀었다. 이어폰으로 음악이 들리는 순간,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눈에서는 눈물이, 온몸에선 식은땀이. 캄캄한 창에 엄마 얼굴이 어른거린다. 엄마가 보고 싶은 거였구나. 엄마, 엄마...... 속으로 엄마를 불러보는데, 엄마가 아니다. 속에서 울리는 소리는 "예원아, 예원아, 예원이 어딨니......" 몸과 마음이 하나 되어 뒤틀렸다. 뒤틀리는 몸과 마음을 안전벨트에 꽉 묶어두고 소리 없이 눈물과 식은땀을 흘렸다. 예원이.

 

바로 일주일 전, 예원이 장례식이었다. 아직 믿어지지 않는다. 예원이 장례식이라니. 그리고 실은 아직 예원이를 말할 수 없다. 애도의 첫 단계가 '부정'이라면 예원이 만큼은 끝까지 부정하고 싶다. 예원이 소식을 들었던 밤, 모든 것이 끝났다 싶었다. 그대로 죽음의 강에 나를 던지는 것 밖에는 다른 길이 없겠구나, 생각도 했다. 40여 일 전에 엄마를 보냈던 과정과 똑같이 화장장을 거쳐 한 줌의 재로 마주한 예원이를 세종시 어느 추모공원에 안치하고 돌아왔다. 그날 그 시간 이후로 집안에서 예원이는 금기어가 되었다. 나도, 남편도, 채윤이도 말하지 않았다. 말할 수 없었다. 괜찮은 듯 살아졌다. 남해에서 보은까지, 하루 종일 죽음을 마주했던 몸이 요동을 쳤다. 슬프다고, 슬프다고, 예원이 그 빛나는 생명이 아깝다고 몸부림을 했다. 몸이 말했다. 슬프다고, 견딜 수 없이 슬프고, 그 슬픔은 분출하고 싶은 분노이며 공포라고.

 

엄마 애도의 진행상황을 보고하는 몸의 신호가 하나 있다. 장례식 당일 마스크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아침 입관식에서 이미 젖었고, 하루 종일 그런 채로 다녔다. 그날 이후로 마스크 꼈던 입주위가 시도 때도 없이 실룩거린다. 마그네슘이 부족하여 눈 떨림 현상이 온다는데 그 비슷한 증상일 것이다. 암튼 아무 때나 왼쪽 입술 위가 떨렸다. 마치 어릴 적에 울음을 참으려 할 때마다 입이 삐죽거려지고, 입술이 떨렸던 것처럼. 수시로 실룩거리는 입술로 대화 중에 민망한 순간이 자꾸 생겼다.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나아졌다. 슬픔에서 빠져나오는 진도와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횟수도, 강도도 눈에 띄게 줄었다. 예원이 보내고 거짓말처럼 다시 실룩거리기 시작했다. 생각하지 않기로 작정하고, 최대한 '부정'하기로 마음먹었지만 몸은 속아주지 않았다. 버스에 누워 몸에게 슬퍼할 것을 허락했다. 

 

충분히 슬퍼할 여유 공간이 필요하다. 잃어버린 엄마, 예원이를 살려낼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대로 살아서는 안 된다. 잊어라, 생각하지 마라,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약한 것, 예측할 수 없는 것, 감정, 슬픔을 회피하는 문화에 둘러싸여 있다. 슬픔을 회피하는 문화는 슬퍼하는 사람을 그대로 봐주지도 않는다. 그만 해라, 언제까지 그 얘기냐. 그만하라는 압력이다. 압력에 못이겨 억압하고 만다. 가장 정직한 나, 곧이곧대로 보여주는 몸이 말한다. 아직 슬퍼, 나 아직 슬프다니까.

 

애도 심리에 관한 많은 연구들이 말한다. 애도에 대한 반응은 명백하게 신체적으로 온다고. 우는 것만 아니라, 훌쩍거림, 가슴의 압박감, 딸국질, 헐떡거림, 한숨 쉬기, 목이 조이는 것 같은 호흡 곤란, 먹을 수 없음, 식욕부진, 목에 음식이 걸린 것 같은 느낌, 위와 신장의 잦은 탈, 육체적인 탈진 또는 흥분 등이다. (『모든 상실에 대한 치유, 애도』 David K. Switzer, 학지사) 이 명백한 반응은 가장 정직한 반응이기도 하다. 몸이 가장 정직하다. 그런 의미로, '애도'의 개념을 정립한 죽음과 애도의 어머니 엘리자베스 퀴블로 로스는 말한다. "몸이 요구하는 대로 다 들어주라"라고. 이제는 다 잊었고 정리되었다고 머리가 말할 때도 몸은 다른 말을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몸은 감정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아원에 있는 아이들이 공교롭게도 특정한 날에 이유 없이 아프고 기분의 저하를 보이는데, 그 날은 고아원에 보내진 날이나 부모가 돌아가신 날과 같은 시기라는 것이다. '더 소름 끼치는 것은 아직 달력을 읽기에는 한참 어린 아이들'에게도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  

 

앞에 나열한 신체 증상만이 아닐 것이다. 아동문학가 매들린 렝글(Madelain L' Engle)은 C. S. 루이스의 애도 일기 『헤아려 본 슬픔』을 읽음으로써, 사람마다 겪는 슬픔이 독특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 자신 남편을 잃은 슬픔 속에서 읽은 것이다. 사람사람이 겪는 슬픔이 다른 것처럼 신체 증상 또한 그러할 것이다. 내게는 새벽마다 가슴이 서늘해지는 증상, 입술 떨림이었다. 장례 후 처음으로 친구들과 일박 여행을 한 날에는 식사하는 자리에서 우지끈 이가 부러졌다. 여행 가면 마지막까지 쌩쌩했던 내가 가장 먼저 피곤해 꼬꾸라졌다. 이사로 참여하고 있는 단체에 모임이 있어서 나간, 첫 공식 모임에서는 혈압이 떨어져 시야가 흐려지고 두통이 오고 기운이 빠져나가 그 자리에서 빠져나와야 했다. 머리 차원에서 "괜찮아, 오케이" 사인이 떨어져 움직인 날에 몸이 아니라고 말하곤 했다. 몸이 말하는 슬픔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오늘따라 왜 이래?" 하고 지나치기 일쑤. 유난 떠는 것처럼 비칠까 봐, 약한 모습 보이는 것이 싫어서 그랬다.

 

요즘도 간간이 입술이 위 근육이 실룩거리며 울음 참는 모양새를 한다. 이젠 잠도 잘 자고, 컨디션도 좋은 편이다. 그런가 싶더니 요 며칠 다시 서늘한 가슴으로 이른 새벽에 눈을 뜬다. 당황하지 않는다. 서서히 빠져나오고 있지만 슬픔의 강에서 온전히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자크 데리다의 말처럼 애도는 "끝이 없고, 위로할 수 없고, 화해할 수 없는 것이다.” 진정한 애도는 결코 완성될 수 없다. 애도의 원인인 상실, 죽은 엄마가 돌아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입술 떨림이 온전히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러다 10년 쯤 후에 다시 입술 위가 실룩거린다 해도 당황하지 않을 것이다. 아, 그렇지. 내가 사랑하던 엄마가 없어, 하고 몸이 일깨우는 그리움과 슬픔을 그대로 마주할 것이다. 그렇게 가늘게 애도의 끈이 이어지다, 이어지고 이어지다, 저 하늘에서 엄마를 다시 만나는 날에, 그 날에 끝이 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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