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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더 내려놓음?

larinari 2014.08.23 23:41


기다려도 오지 않는 연애와 결혼으로 늘 조금 의기소침한 제자가 보기 드문 밝은 표정으로 나타납니다
. “사모님, **** 책을 읽었는데요. 제가 뭘 내려놓지 못하는지 알았어요. 이제 정말 내려놓으려고요반가운 말입니다. 자기를 돌아볼 뿐 아니라 내려놓을 것을 발견했다니 반갑고도 기특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예측컨대 금방 다시 의기소침은 찾아올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 후, hot한 연애강의를 들으며 아직도 내려놓지 못한 것 발견, 그러면 다시 희망이 꿈틀하겠지요. 기꺼이 내려놓기를 결심할 것입니다. 내려놓았는데, 내려놓겠다는데 여전히 변화 없는 일상이 거듭되면 더 깊은 좌절. 이렇듯 반복되는 사이클을 오가는 어느 날에 날린 메시지인가 봅니다. ‘사모님, 도대체 제가 뭘 더 내려놓아야 할까요? 뭘 더 내려놓아야 배우자를 주실까요?’ 글자 사이사이에 서린 좌절감과 분노가 읽혀집니다. ‘그러게 말이다. 그런데 응? 뭘 내려놓으면 배우자를 주신다고? 나는 금시초문인데


사람은 무엇인가를 욕망하는 존재이고
,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욕망하느냐는 각 사람의 고유함을 드러내는 단면일 것입니다. 젊은 날의 정신적 에너지가 통제 불능으로 흘러가는 연애와 결혼에 관해 제각각의 의미를 부여해 바라는 것들이 있습니다. 자상한 남자, 지혜로운 여자, 존경할 수 있는 남자, 보호해주고 싶도록 가녀린 여자, 키는 작아도 어깨가 넓은 남자, 몸은 뚱뚱해도 다리만은 예쁜 여자,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남자, 머리숱이 많은 여자남들이 뭐라 하든 내게는 중요한 어떤 기준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의 개성과 고유함이기도 하며 뒤집어보면 나만의 집착일 수도 있고요. 자신이 붙들고 있던 기준들이 그렇게 절대적인 것은 아니었다는 것, 심지어 세속적인 욕망이었음을 깨닫는 것은 얼마나 귀한 일인가요. 말씀의 거울에 나를 비추면서 영혼에 달라붙은 욕망의 짐들을 하나씩 벗게 되는 일, 진리이신 주님을 만나서 받는 자유라는 선물일 것입니다. 분별하고 내려놓고 자신을 부인하는 비움의 영성, 이 시대 특히 필요한 것 같습니다.

 

고귀한 빛일수록 바래기가 쉽고 고결한 것은 더러움 타기가 쉬운 법입니다. 내려놓음 역시 그러합니다. 절박한 기도제목 앞에서의 내려놓음이 어느 새 목적이 아닌 수단이 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내려놓았더니 더 큰 것 주시더라는 흔한 간증 덕에 <내려놓음, 더 내려놓음>은 하나님의 선물 창고를 여는 모양새 좋은 마스터키로 둔갑하는 것 같습니다. 일이 자꾸만 꼬이고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풀리는 것이 요원한 듯 보일 때, 문제의 원인을 밖에서 찾지 않고 나를 성찰하는 것은 좋은 태도입니다. 무엇보다 말씀에 비추어 나를 돌아보는 것만큼 소중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리하여 깨달은 나의 부족함을 당장 고친다면 안 풀리던 일이 풀릴 것이라는 기대, 그런 기대를 유발하는 가르침은 잘못된 것입니다. 결국 그것 나의 욕망(그 자체가 옳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을 채우기 위해 고도로 세련된 기제로서 내려놓음을 도용하는 것이니, 결국 하나님을 내 맘대로 하겠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법칙에 지배받는 분이 아니시지요. 헌데 우리는 결혼은 물론 많은 기도제목을 다...서 인과법칙의 하나님과 협상을 하는 태세를 취합니다. , 하나님 외모 내려놓았어요. 외모를 보지 말고 중심을 보라고 하시니까요. 내려놓겠습니다. 됐죠? 이제 속이 꽉 찬 배우자 주세요.

 

그것을(이것을, 저것을) 내려놓았는데 그때 비로소 배우자를 주시더라는 선배들의 간증이 허다하다고요? 어떤 사람에게는 그럴 수도 있겠지요. 설령 그것을 내려놓은 후에 배우자를 만났다 하더라도 내려놓았기 때... 결혼의 문이 열렸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남자의 키를 내려놓았더니 결혼이 된 것이 아니라 그렇게 중요하게 여겼던 남자의 키가 보이지 않을 만큼 좋은 사람이었던 게지요. 결혼하고 보니 , 내가 이것도 포기하고 저것도 안 보고 결혼했네.’ 했겠지요. 한두 가지 조건을 포기하는 것으로 결혼이 속히 되거나 인격이 성숙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사실 포기또는 내려놓음을 결심하는 것은 끝이 아닙니다. 오히려 결심한 그때부터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으며 이뤄가야 하는 것이지요. 이걸 내려놓았어요, 저걸 내려놓았어요, 라고 열 번 선언하고 희망을 품는 것보다 차라리 지근거리에 있는 한 사람이 가진 약점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고민하는 것이 더 영양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대, 많이 내려놓았어요. 더 내려놓을 것을 찾아 두리번거리지 말아요. 무엇보다 하나님 자판기에 동전을 넣는 마음으로 내려놓을 항목을 찾는 것이라면, 혹시 그런 것 같으면 정말 차라리 다 싸들고 있자구요. 정 내려놓고 싶거든 뼈를 깎는 고통이 따르는 내려놓음을 선택하여 조용히 실행해보시구요. 얄팍한 희망으로 외로움과 불안을 덮으려하지 말고 외로운 오늘, 불안한 오늘을 있는 그대로 살아요. 피하지 않고 오롯이 견디는 그것이 오히려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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