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년 글쓰기.
미친년이 글을 썼다.
엄마 죽고 사흘, 밤잠을 못 자 미쳐버린 년이 글을 썼다.

엄마의 이틀 장례식을 마치고 다음날 하루는 엄마 따라 죽은 것처럼 지냈다. 아, 실은 그 아침에 일어나 엄마 장례식에서 부른 노래, 엄마의 육성을 담은 MR에 맞춰 노래를 불러 녹음을 했다. (미친년이 노래도 했구나) 울지도 않고 녹음을 해 장례식에 참석한 친척들에게 보내도록 하고, 다시 ‘살아있음’ 스위치가 나갔다. 그리고 까만 시간을 보냈다. 이런 거였구나. 엄마가 죽는다는 게. 하관예배에 들은 설교가 까만 생각 어딘가를 스쳤다. 죽는 것이 유익이라고? 다른 죽음 말고, 엄마의 죽음인데? 엄마의 죽음이 유익이라고? 오래 생각하진 못했다.

침대에 누워 까만 시간을 혼란스럽게 보내고 새벽 다섯 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흘 전 이 시간에 동생 전화를 받았다. “엄마 돌아가셨어” 나는 당황하지 않았다. 울지 않았다. “지금 몇 시야?” “다섯 시야” 그 다음에 내가 뭐라고 말했더라? “수고해”라고 말한 것 같은데. 설마 그렇게 말했을까? 바로 그 다섯 시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전화가 올 것 같았다. 새벽마다 전화가 올 것 같다. 엄마 돌아가셨어. 엄마 돌아가셨어.

이러다 돌아버릴 것 같았다. 글을 쓰고 싶었다. 엄마의 장례식과 엄마의 삶에 대해서 쓰고 싶었다. 장례식을 했다면 조문객을 맞을 때마다 수십 번 했을 엄마의 마지막 시간을 말하고 싶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페이스북에 글을 썼다. 한달음에 썼다. 엄마의 장례식에 대해서. 엄마의 장례식에 대해 쓰려니 아버지 장례식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휴대폰의 앨범을 뒤져 아버지 장례식 사진을 찾아 포스팅을 했다. 인사 글을 쓰려했는지, 우리 엄마 죽었으니 나를 위로해 달란 얘길 하려 했는지 모르겠다. 그냥 썼다. 생각보다 손이 먼저 나갔다. '세상에서 가장 긴 장례식'을 썼다.

글을 쓰고 나니 살 것 같았다. 숨이 쉬어지는 것 같았다. 포스팅을 마치고 바로 아래 글을 보니 동생이 올린 ‘부고’가 보인다. 찬찬히 읽었다. 아, 우리 엄마가 죽었지! 맞아, 엄마가 죽었어. 한바탕 울고 나니 한결 차분해졌다. 점심을 해서 현승이와 둘이 밥을 먹었다. 처음으로 밥이 목에 넘어갔다. 그렇지. 엄마 죽음을 얼마나 오래 준비했는데... 이제 괜찮아진 거야. 이게 정상이지. 엄마의 빛나는 영혼을 낡은 육신에서 해방시켜 달라고 기도했던 사람 나잖아. 이제 괜찮아. 친구에게 전화 했다. 괜찮다고, 걱정 말라고. 그리고 심지어 마감을 하루 남긴, 쓰다만 원고를 썼다.

짧은 오후가 지나고 다시 까만 생각이 되었다. 며칠 밤 다시 잠을 설치고, 새벽 5시면 새로운 두려움에 눈을 뜨고 오늘이다. 그 새벽, 페이스북에 썼던 글이 눈에 들어온다. 내가 이걸 썼다고? 그 캄캄한 뇌로 글을 썼다고? 미친년이 미쳐서 쓴 글이구나. 『치유하는 글쓰기』에 나오는 ‘미친년 글쓰기’라는 용어를 글쓰기 강좌에서 사용하곤 했었다. 비정상적 상태의 글쓰기. 정상에 대한 강박 없는 글쓰기.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드는 글쓰기. 그 새벽에 바로 그 미친년 글쓰기를 실행한 것이다. 그러니까 돌아보면 미친년 상태였다.

오늘 아침엔 블로그의 엄마에 관한 글을 하나하나 읽으며 한 카테고리에 모았다. 남편에게 며칠 전 새벽에 쓴 글은 미친년 글쓰기였다고 말했더니 “정신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쓰는구나.”라고 했다. 하긴 그 글을 쓰고 분명 마음에 비쳐든 빛이 있었다. 비로소 숨이 쉬어진 것도 같다. 그 효과 잠깐이고 다시 아득해진 정신이 되었지만. 뼛속 어딘가에서 흘러나온 글인지도 모른다. 봄 햇살 듬뿍 담아서 보낸다는 메시지와 함께 풍성한 후리지아 한 다발이 집에 왔다. 캄캄한 창밖을 배경으로 두니 향기로 피어나는 존재감이다. 꽃향기 맡으니 또 쓸 힘이 난다.

모르겠다. 이 또한 미친년 글쓰기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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