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대형교회 청년부에선 명절연휴에 비전트립을 가곤 하더군요. 잘되는 프로그램이라고 해요. 기획하신 분의 의도는 잘 모르겠지만 제 나름대로 이름을 붙여봤습니다. ‘좋은 소식 선교단’, 어떻습니까? ‘좋은 소식 없냐?’ 명절이면 무한반복으로 들어야 하는 질문을 피해 좋은 소식 들고 선교지로 떠나기. 괜찮죠? ^^ ‘좋은 소식 없냐, 국수 언제 먹여 주냐?’ 명절증후군 유발하는 작은 아버지(삼촌, 외숙모, 당숙....), 단지 결혼하지 않았단 이유로 어린애 취급하시는 권사님, 심지어 소개팅을 미끼로 다단계 물건을 팔려는 선배. 싱글의 나날을 더욱 우울하게 만드는 분들이죠. 나쁜 뜻이 없다는 건 알지만 깜빡이도 안 켜고 끼어드는 분들 대하는 일, 참 난감하죠.

 

‘아직’ 결혼하지 않은 조카나 후배, 청년을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일 것입니다. 결혼 했다, 안했다를 그대로 한자로 표현하면 기혼(旣婚), 비혼(非婚)이겠네요. 헌데 일상적으로 더 자주 쓰는 표현은 ‘아직’의 의미가 담긴 미혼(未婚)입니다. 결혼이 당연한 것,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라는 것, 심지어 정상적인 것이라는 전제 때문일 것입니다. ‘아직도’ 못했다는 부정적인 느낌까지 함의하는 것 같습니다. 명절에 만난 친척들은 나이를 먹었는데 아.직. 결혼하지 않은 것을 걱정하십니다. 게다가 결혼하는 적정한 시기까지 있다고 믿으시지요. 미취학 아동이 입학하는 데야 법으로 정해놓은 나이가 있다지만 미혼 여성이 결혼을 이뤄내야 하는 적령기는 대체 언제일까요? 누구를 위한 결혼 적령기인가요. 이것은 특히 여성들에게 멍에가 됩니다. 젊음과 미모를 무엇보다 중요한 교환가치로 여기는 자본주의적 발상입니다. 젊음의 상품가치가 떨어지기 전에 보내야 한다는 조바심에 그렇게들 ‘좋은 소식’의 안부를 물으십니다. 그러니 결혼상대도 없고, 하겠다는 뜻이 없더라도 이 관습의 벽 앞에만 서면 미완의 존재가 되고 맙니다.

 

미혼이 아니라 비혼이라고 설득해야겠습니다. 아직 안 한 것이 아니라 단지 하지 않은 것이라고요. 누구를요? 오지랖 삼촌을? 올해는 꼭 방 빼라고 닦달하는 엄마를요? 아니요. 나 자신을요. 미혼이어서 미완인 존재로 스스로를 규정하지는 않는지 생각해봅시다. 결혼하지 않은 나를 2% 부족한 인간으로 여겨 속으로 잔뜩 움츠리고 있지는 않은지요. 아니면 닭살커플을 은근히 비꼬거나 씹는 것으로 공허함을 채우고 있진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미혼으로 ‘아직’의 삶을 살 것인가, ‘지금’으로 충분한 삶을 살 것인가. 사실 선택의 문제입니다. 나의 선택입니다.

 

오늘로 충분한 삶을 사는 것이 진짜 삶입니다.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을 저당 잡히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습니까. 물론 외롭지요. 데이트하기 좋은 날씨 좋은 주말에 혼자 시간을 보내자면 괜히 더 쓸쓸할 것입니다. 결혼한 친구가 부러워지는 마음 또한 어쩔 수 없습니다. 결혼하고 싶은 마음, 그러지 못한 현실의 결핍감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결혼하고 싶다’와 ‘결혼은 꼭 해야만 하는 것이다’는 다릅니다. 결혼하고 싶지만 적당한 사람이 없어서 지금은 혼자라고 생각한다면 비혼입니다. 결혼을 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으로도 충분합니다. 반면 마땅히 해야만 하는 결혼을 나는(나만) 못하고 있으니 나는 부족한 사람이라 여긴다면 미혼자입니다. 아직 하지 못한 결혼에 골몰하느라 오늘을 충만하게 살기 어려울 것입니다. 예, 똑같은 싱글의 나날에 어떻게 이름 붙이고 사는 가에 따라 전혀 다른 오늘을 살 수 있습니다.

 

폴 투르니에는 그의 책 <모험으로 사는 인생>에서 결혼이든 독신이든 인생의 모험이라며 이렇게 말합니다. “진정한 문제는, 어떤 사람이 결혼을 한다면 그 결혼을 성공적으로 만드는 것, 결혼하지 않는다면 독신 생활을 성공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결혼이나 독신 그 자체가 아니라 주어진 결혼 또는 싱글의 나날을 충만하게 사는 것입니다. 결혼만 하면 우울한 주말, 불행한 나날이 끝날 거라 생각하는 것은 아니죠? 결혼에 대한 갈망으로 싱글의 나날을 허비하는 사람은 정작 기혼자가 되었을 때는 ‘아직’ 결혼하지 않았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여전히 불행하게 지낼 가능성이 큽니다. ‘좋은 소식 없냐?’는 질문에 대답할 말을 준비하세요. 결혼계획 말고도 일상의 좋은 소식이 널려 있다고요. 아, 그전에 먼저 발견해야겠죠. 미혼 아니고 비혼인 오늘 나의 좋은 소식들을요.

 

 

<QTzine> 3월호_나 자신이 되어 연애하기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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