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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이 일 년이라11_간증하다 본문

푸름이 이야기

방학이 일 년이라11_간증하다

larinari 2016.07.31 17:40




중등부 수련회에 간증하러 따라간 채윤이. 지금 쯤이면 벌써 간증이 끝나고 저녁 집회까지 마쳤을 시간입니다. 간증문을 쓴다고 거실에 노트북 뻗쳐 놓고 며칠 글쟁이 엄마 코스프레를 했습니다. 머리 쥐어 뜯고 예민하게 굴고, 내가 이걸 왜 한다고 했냐며 후회하고. 엄마 싱크로율 90%. 며칠 끙끙거리더니 A4 반 장 짜리 간증문을 써내고 봐다랍니다. 분명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생각보다 정리를 잘 해놓아서 놀랐습니다.


그 다음엔 논쟁,


뼈대를 잘 잡아놓은 글에 살을 붙이는 과정에서 채윤이가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 얘기'가 많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등부 쌤들이 기대하시는 것은 그것이라고. 간증이 그런 거 아니냐고요. 단호박 엄마가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아니라고, 그렇지 않덕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하나님 은혜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 뜻이었습니다.' 이런 말은 제발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너의 이야기를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들려줬는데 듣는 사람이 거기서 하나님을 발견한다면, 그것이 좋은 간증이야.' 말발에 밀렸는지, 힘에 굴복했는지 알았다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촘촘하게 채워 넣은 간증문을 완성했습니다.


문장 몇 군데 봐주고, 최종적으로 분량이 많아서 줄이는 것을 도와줬는데 그럴 듯한 간증문이 되었습니다. 채윤이가 쓴 글을 처음 읽으면서는 엄마로서 울컥하는 부분도 있더군요. 허락받고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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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17살 김채윤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그렇게 긴 인생을 살아온 건 아니지만 중학교 시절에 가장 힘들었고 그런 힘든 시간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의지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서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저는 또래 친구들에 비해 일찍 진로를 선택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만난 피아노 선생님을 통해서 예술중학교를 알게 되었고 그 학교에 가면 공부보다 피아노를 많이 할 수 있다는 그 한마디에 반드시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엄마 아빠께선 아직 너무 이른 것 같기도 하고 쉽지 않은 길이기에 반대하셨습니다. 그날부터 저는 엄마 아빠를 설득시키려고 조르고 졸랐습니다. 결국 엄마 아빠도 제 선택을 믿고 지원해주기로 하셔서 5학년 막바지부터 입시준비를 했습니다. 같은 전공 친구들에 비해 많이 늦은 편이었지만 그래도 기적적으로 합격해서 예술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저는 피아노 치는 것을 좋아했고 중학교에 가서도 피아노를 더 많이 칠 수 있을 거라는 마음에 기대가 컸는데 막상 학교생활은 제 생각과 많이 달랐습니다. 매번 실기시험마다 등수를 세우는 시스템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구들이 서로 경쟁상대가 될 수밖에 없었고, 저는 이런 분위기에 적응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친구들 대부분은 유명한 교수님들에게 레슨도 받고 연습 환경도 좋았는데 그러지 못했던 저는 친구들 사이에 있으면 자꾸만 작아지고 자신감도 떨어졌습니다. 저는 특히 연습환경이 열악했기 때문에 학교가 끝나면 교회에 와서 연습을 하고 시험 막바지가 되면 밤늦게 까지 남아 연습을 했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지만 시험결과는 늘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결과보다는 과정에서 얻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하며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매 시험 때마다 그런 일이 반복 되다보니 좌절하게 되고 포기 하고 싶은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고 그랬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부담도 컸습니다.

그런 힘든 시간들이 계속 반복 되면서 결국 3학년 새 학기에 위기로 찾아왔습니다. 고등학교 입시준비로 학교에서 1주일에 한 번씩 친구들 앞에서 연주하는 향상음악회라는 것을 해야 했습니다. 그 음악회를 할 때마다 저는 너무 부족했고 그래서 매번 친구들 앞에서 창피하고 부끄러웠습니다. 내가 아직 연습이 너무 부족하고 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모든 시간을 다 연습하는데 올인 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습니다.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다보니 제 탓을 하게 되고 여기가 진짜 제 한계라고 느껴져 모든 상황 속에서 도망치고 싶었고 앞으로 계속 이런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막막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중학교 졸업 후 1년 동안 안식년을 가지는 프로그램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엄마 아빠께서 이런 것이 있다고 제안해주셨고 저는 예고입시를 포기하고 이 프로그램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엄마가 ‘네가 예중을 선택했을 땐 3년을 선택 한 거야. 그러니까 지금 포기하면 안 돼’ 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안식년을 갖더라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 입시준비를 하는 게 좋겠다고 하셨고, 입시를 마친 후에 선택하자고 하셨습니다. 저는 너무너무 포기하고 싶었지만 예중을 선택한 것은 저 자신이었기 때문에 끝까지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힘듦과 고민 속에서 저한테 유일하게 힘이 될 수 있었던 것이 교회 찬양팀 반주였습니다. 바쁜 학교생활과 부족한 연습시간으로 반주 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반주를 하는 시간이 다시 일주일을 버틸 힘을 얻는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3학년 여름수련회 때는 처음으로 찬양 가사를 생각하며 반주를 한 것 같습니다. 가사 하나하나가 하나님께서 저한테 말씀해주시는 거 같았습니다. ‘또 하나의 열매를 바라시며’ 라는 찬양을 하는데 수십 번 불렀던 그 찬양의 가사가 제 마음에 새롭게 들어왔습니다. ‘감사해요 깨닫지 못했었는데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라는 걸 태초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사랑은 항상 날 향하고 있었다는 걸’

힘든 시간을 견디고 나니 2학기 막바지에 졸업을 압두고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시험에서는 제가 상상할 수 없었던 결과를 받아 행복했고, 준비했던 고등학교에도 합격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고등학교 입학을 포기하고 올해 안식년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말 열심히 해서 얻은 합격이기 때문에 입학을 포기하는 선택은 어려웠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고를 가든 안식년을 하든, 어느 순간에는 아쉽고 후회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일단 선택하면 포기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고, 선택에 대한 책임은 내가 져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1년 안식년을 하며 매일 늦잠도 자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제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면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저는 학교생활을 하면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많았습니다. 지금 내가 잘 하고 있는 걸까? 그때 내가 잘 한 걸까? 하면서 제 탓을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중학교 3년의 생활을 돌아보고 지금 현재의 제 삶을 보면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하신다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또 앞으로의 모든 것은 알 수 없고 막막하지만 하나님께서 저의 길을 인도하실 것을 믿으면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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