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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여정

별일 없었던 일주일

larinari 2018.08.19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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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회 시즌이 끝났다. 지난 주 금요일부터 어제 토요일까지 달리고 달렸다. 지난 주 금요일엔 우리 교회 수련회가 시작되는 날이기도. 지리 감각이 통 없는 통에 무리하게 달리며 시즌을 시작했다. 강의 요청이 왔는데 우리 수련회가 겹쳐 거절 했다. 듣고보니 수련회 장소 바로 옆인 것 같아 다시 수락을 했다. 강화도와 영흥도. 서해안이라고 다 바로 옆이 아닌데. 새벽 6시 일어나 강화도에서 강의하고 2시간 운전하여 영흥도 수련회장에 갔다. 힐링캠프라는 이름의 널널한 수련회라 중간중간 방에 처박혀 연재 원고를 썼다. 둘째 날 밤에는 정말 오랜만에 음악치료사 페르소나를 발휘, 노래하고 춤추고 노래 만드는 프로그램을 인도했다. (아직도) 낯설고 많이 부끄럽지만 미친 척하고 분위기 띄우는 거 잘한다. 다음 날 눈을 뜨니 한쪽 눈 혈관이 터져 핏빛이 되었다. 아, 일주일 내내 있을 각종 수련회 강의는 좀비 눈알을 하고 다녀야겠구나. 막막하게 맞은 일주일이었는데 원고도 강의도 미션 클리어 하고 새 아침을 맞았다. 어제 오후부터 자기 시작해서 새벽까지 한 열두 시간 정도 잔 것 같다. 새로운 몸을 입은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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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강의를 많이 하다니 돈을 얼마나 많이 벌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 청년부 강의 많이 다녀서 돈 벌었다는 사람 못 봤으니 앞으로도 걱정 안 하셔도 된다.  열심히 달린 후에는 푹 자고, 알아서 챙겨 먹기도 하니 몸도 괜찮다. 볼이 폭 패이고 말라 있는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고 어쩔 수 없는 것이니 자꾸 각인 시켜주지 않으셔도 된다. 이미 충분히 부끄러운 말라 주름진 얼굴이다. 장기하가 부른다. 별일 없이 산다. 


니가 깜짝 놀랄만한 얘기를 들려주마

아마 절대로 기쁘게 듣지는 못할 거다

뭐냐 하면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뭐 별다른 걱정 없다

나는 별일 없이 산다 이렇다 할 고민 없다

니가 들으면 십중팔구 불쾌해질 얘기를 들려주마

오늘밤 절대로 두 다리 쭉 뻗고 잠들진 못할 거다

그게 뭐냐면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뭐 별다른 걱정 없다

나는 별일 없이 산다 이렇다 할 고민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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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을 말하자면 강의 마치고 운전하고 돌아오는 길, 피곤이 턱까지 내려와 졸음운전 걱정 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뭔가 강의 내용이 미흡했던 것 같아 침대에 이르기도 전에 이불킥을 하곤 하지만 말이다. 이른 아침 SRT 타러 가는 길, 식구들 잠든 현관문을 닫고 나설 때 이유 없이 왈칵 눈물이 나기도 하지만 말이다. 원고 써 내놓고 악플까지도 아닌, 부정적인 단어 한 두 마디에 심장이 뛰기도 하지만 말이다. 집에 돌아오는 길 장보러 마트에 들르면서 누군가 된장찌개 끓여 놓고 날 기다주면 좋겠다 싶어, 문득 엄마가 보고 싶기도 하지만 말이다. 다음 원고 생각으로 꽉 찬 머리 속에 이 말 저 말 뒤섞여 돌아버릴 지경이 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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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가장 멀리 다녀 온 강의가 광주, 수련회 장소는 정확히 전라도 화순이었다. 광주송정역에 내려서 맞으러 나온 청년의 차를 타고 화순으로 가는 중 '주남마을'이라는 표지판을 보았다. 임철우의 소설 <오월>이나 광주민주화항쟁 관련 자료에서 본, 너무나 익숙하지만 낯선 주남마을이다. 그리고 보이는 이정표는 보성, 화순, 벌교. 그러니까 민주화항쟁 당시 게엄군이 주둔하며 길을 막았다는 바로 그 길인 것이다. 연애 강의 하러 가는 길인데 내 마음은 온통 80년 광주에 가 있었다. 묻고 대답하는 강의 중 청년들 입에서 아무렇지 않게 나온 '충정로' 라는 말에도 멈칫했다. 일주일, 강의 다니는 외적인 삶보다 더 많은 일들이 내 마음에선 일어난다. 수련회서 만나는 청년부 목회자들 한 분 한 분이 내겐 의미이다. 황폐해진 청년부를 맡은 1년차 목사님, 아주 잘 만들어 놓은 청년부를 떠날 수도 있겠다는 목사님, 으쌰으쌰 살아 꿈틀거리는 공동체에서 신뢰받고 행복한 목사님, 작은 청년부를 맡아 온몸으로 뛰는 목사님. 강의 일주일이 아니라 만남 일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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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의 마지막 강의. 토요일에 덕산으로 운전하며 가는 중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의 찬송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채윤이를 키우면서 자장가로 그렇게 불러주셨던 찬송이 생각나 혼자 불러봤다.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요 나는 주님의 귀한 어린양 푸른 풀밭 맑은 시냇물가로 나를 늘 인도하여 주신다 주는 나의 좋은 목자 나는 그의 어린양 철을 따라 꼴을 먹여주시니 내게 부족한 전혀 없어라' 찬송 가사가 엄마처럼 따스해서 또 왈칵 눈물. 엄마의 찬송 소리를 많이 녹음해 두어야지 싶었다. 강의 마치고 홀가분하게 돌아오는 길, 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요' 찬송 불러봐. 못 부른다. 잠시 침묵 후 '예수 소유 하야서 나는 부자 되고 예수 한 분 잃어서 나는 그지 되네' 신청곡 아닌 다른 곳을 혼자 부른다. '엄마, 그거 말고 주는 나르을 기르시는 목짜아요 이거 불러봐' 내가 선창을 해도 못 부른다. '나 다 잊어버렸어. 끊어'란다. 전화 끊고 울며 운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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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 없는 일주일 보내고, 새로운 날들을 맞는다. 일상이 흘러간다. 별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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