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많은 본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은 내 본업이 뭘까하는 생각을 하다가 한 개의 본업을 꺼내들기가 어려워서 본업이 여러 개라고 하기로 했습니다. 너무 가까이 있어서 새로운 마음을 갖기 어려운 본업이 주부입니다. 그러나 손에 닿는 곳에 있을수록 나를 더 잘 한정짓는 옷임을 압니다.
유난히 힘들었던 어느 목요일 저녁, 대충 떼우고 싶었던 저녁식사에 모두들 밥을 원했습니다. 모두 밥을 원한다는 걸 확인한 순간 주부본능이 에너지를 받았습니다.
냉장고를 뒤지고, 손이 빨라지고 집니다. 쌀을 씻어서 백미 쾌속으로 밥을 앉히고 두 개의 후라이팬을 동시에 올려놓고 손이 가는대로 오징어 두 마리를 요리합니다. 사랑에 충실하여 요리하다보면 생전 처음 해보는 요리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중화식 오징어볶음 두 개가 탄생했습니다.
글을 쓸 때도 그렇지만 지금, 여기에 나를 있게하고 백지와 펜에 나를 맡기며 따라가다보면 어느 새 글을 쓰기 시작하던 그 순간과 다른 마음의 지점에 와 있는 것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치유하는 글쓰기이고 하나님을 만나는 글쓰기 입니다. 몰입을 해보니 요리도 다르지 않군요.
전혀 의도된 바 없으나 음식을 드시는 분들이 한 개씩 젓가락으로 오징어를 께작거리시다가 '에잇!'하고 밥을 엎어버립니다. '이거 비벼먹어도 되는거지?' 하고 묻지만 그거야 먹는 사람 맘이지요.
아빠따라 아이들도 비벼먹기로 했습니다. 본업은 여러 가지이되 어떤 일이든 내가 하는 일로 인해서 나도 행복하고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도 행복해야 합니다. 오늘 아침 주부라는 본업을 꺼내서 흐릿해진 부분들을 깨끗하게 닦아봅니다. 오랫만에 손에 닿는 차거운 물의 느낌, 뽀득뽀득해지는 그릇의 느낌을 느끼며 설겆이를 해볼랍니다.
본업은 여럿이되 오늘 아침은 주부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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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m 2009.06.19 10:19
우와 막 올려진 싱싱한 포스트 ㅋㅋㅋ
아...파전에 이어 나를 넘 배고푸게 하는 저..뻘건...ㅋㅋ
오늘 아침에 늦잠자서 밥 못 먹구 회사와서 토스트를 먹구 있는데 ㅠㅠ
저 한그릇 뚝딱 하고 싶어요 ㅋㅋ
어제 그래도 언니들이 김치찌개 끓여줘서 밥 완전 많이 먹었어요
오늘 저녁 부터 월욜까지 언니들이랑 붙어댕길꺼예요^^ -
forest 2009.06.19 11:12
뻘건건 아빠꺼, 뻘건거 하나도 없는 듕국식은 애들꺼,
아침을 우유 한잔으로 대신했더니 저 뻘건거 먹구싶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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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본업" 보고 사진 보는 순간
저는 왜 저게 떡볶이로 보였을까요 ~~
그래서 아 오늘 오랜만에 떡볶이 하셔서 본업이라고 하셨나보다 그랬어여 ㅋㅋㅋ
맛있겠당!!
윰언닌 아무래도 서울에 숨어있는게 분명한듯해여! ㅋ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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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yne 2009.06.20 10:46
나두 어제 오징어 해먹었는데.
걍 삶아서 초고추장에 팍 찍어서.. 비교됨.
저렇게 해먹을걸.
근데 어제저녁에 정말 다 죽였을까? ㅋㅋ -
영애 2009.06.21 23:24
대충 떼우고 싶은날 저런 음식이 나오면
제대로 준비한 날은 상다리 부서지겠네요!!!
선생님을 보면 요리가 어려워보이지 않아요~
막 쉽게 쉽게 만드시는 것 같아요!!ㅋㅋㅋ
정말 타고난 거겠죠??
저 위에 뻘껀거 지금 좀 떙기네요!!!
대충 뭐 먹고 싶은 날 저도 좀 불러주세요!!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