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브♥갓♥메일_목적이 이끄는 연애_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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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한 번은 올 것이 오고야 말았구나.^^ 언젠가는 은혜로부터 한 번 쯤 받아야할 질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예상문제였다. 믿지 않는 친구와의 이성교제라..... 예상문제였긴 한데 막상 받아보니 생각보다 난감하구나. 너의 주문대로 ‘예스/노’로 분명하게 답하기는 사실 어려운 일이 아니다만, 정답은 은혜가 이미 알고 있는 것 아니냐? ‘선생님만큼은 뭔가 다른 답을 주실 거라 믿는다’는 말은 정답이 아닌 걸 정답이라고 하는 걸 듣고 싶다는 얘기냐? 이 녀석! 선생님을 완전히 골탕 먹이기로 작정한 것이냐?^^ 맞다. 선생님이 그런 말을 자주 했었지. 믿지 않는 친구들과 적극적으로 사귀고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되라고. 단지 예수 믿지 않는다고 해서 그저 ‘구원해야 할 대상, 죄인’으로만 대하지 않도록 하라고 했지. 그 말을 기억해내서 선생을 오도 가도 못하게 만들겠다는 것이지? ^^

동아리 선배라는 J군, 네 얘기를 들으니 좋은 사람 같구나. 마음이 따뜻하고, 그러면서도 합리적이라니 정말 멋진 사람 같아. 게다가 요즘 같은 세상에 그런 좋은 회사에 한 방에 합격했다니 흔히 말하는 능력도 갖췄네. 은혜와 말도 잘 통하고, 노래 동아리에서 만났으니 함께 노래하는 것도 공감대가 될테고.... 정말 장점이 많다. 그런 J와 뭐 결혼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좀 사귀어 보는 게 뭐 그리 잘못된 것이냐고? ‘데이트를 해도 되는지 안되는지를 예스/노로 대답하라~’ 하는 게 이번 메일의 주문이렷다?

좀 쑥스럽지만 선생님의 결혼생활 얘기를 좀 해야겠다. 요즘 새삼스레 드는 생각인데 선생님은 아무래도 일생을 통해서 받은 최고의 선물이 ‘남편’인 듯해. 예전에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 닭살행각에서도 더 나간 오버라 생각했는데 날이 갈수록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단다. 왜 그런가 하면, 남편과의 결혼을 통해서 비로소 ‘영혼의 친구, 영혼의 우정’을 맛보았어. 결혼 전에도 아니 지금도 정말 좋은 벗들이 많이 있지만 ‘영혼의 친구’라는 말은 남편에게만 붙이고 싶어. 간단하게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지만 결혼생활을 하면서 피차간에 무엇으로도 감출 수 없는 가장 추한 밑바닥의 모습을 드러냈고(한 두 번이 아니고 반복적으로, 결혼 초에만 그런 것이 아니고, 지금도 여전히 심심치 않게 드러나고 있음^^) 그 바닥을 보고도 서로를 다시 사랑하고 더 깊게 사랑하게 되는 기적 같은 일이 있었단다. 이런 기적 같은 사랑은 ‘영혼으로 하나됨’ 이라고 부르는 것이 참으로 적절한 것 같아. 이 사랑은 십 몇 년 전 기타를 치며 눈을 지그시 감고 찬양하던 어떤 남자, 그 남자의 모습을 보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고 매일 그를 향하여 달리는 마음을 누를 수 없었던 불같은 사랑과는 비교도 안 되는 사랑이란다. 눈을 떠도 감아도 떠오르던 세상이 온통 그 사람으로 채워진 것 같았던, 마법의 보자기를 뒤집어 쓴 것 같던 그런 사랑보다 말할 수 없이 깊은 사랑이야. 너무 신파조 냐?^^; 아무튼 진실이다.^^

영혼의 친구가 된 남편과의 관계로 인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도 더 깊어졌다고 말할 수 있어. 이것이 바울사도가 남편과 아내가 하나됨에 대해서 말한 ‘큰 비밀’ 아닐까? 헌데 이 비밀을 발견한 부부는 이 지구상에 과연 몇 퍼센트가 될까? 이 깊은 비밀의 발견은커녕 속 깊은 대화조차 통하지 않는 관계로 그러려니 하고 지내는 부부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니? 크리스챤 부부들 중에서도 말이다. 우리 부부 이야기에 숨은 더 큰 비밀이 있는데 그게 뭔 줄 아니? 두 사람의 인격이 아무리 훌륭한들, 이해심이 아무리 많은들 인간의 바닥을 보고도 계속 뜨겁고 사랑할 수 있겠니? 너희들과 예전에 함께 부르기도 했던 찬양인 것 같은데 생각나니? ‘나의 힘으론 당신을 사랑할 수 없네. 나의 가진 모든 것으로 당신을 축복할 수 없지만 주님이 주신 크고도 놀라우신 그 사랑으로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나님께 배운 사랑을 흉내라도 내는 것, 그 사랑의 모델 없이 영혼의 친구는 무슨 영혼의 친구냐. 서로의 최악의 모습을 확인하는 순간엔 뒤돌아서 다시는 쳐다보고 싶지도 않은데 말이다. 이것은 정말 부부가 함께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경험해야만 가능한 경지인 것 같아.

선생님 얘기를 왜 이렇게 길게 하는지 알아챘을 거다. 언젠가 네게 보낸 메일에 ‘목적이 이끄는 연애’ 라는 표현을 한 적이 있었어. 최소한 ‘이 정도의 목적’이었으면 좋겠어. 연애를 통해 정말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목적, 또 그 배우자를 만나는 목적이란 이 세상에서 달리 경험해 볼 수 없는 ‘영적으로 하나 되는’ 결혼의 축복을 누려보는 목적. 그런 목적 말이다. ‘모든 데이트는 곧 결혼이다!’ 이렇게 말할 수는 없지. 그렇지만 비신자와의 잦은 데이트는 비신자와의 결혼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많아지는 거고, 신앙인과의 지속적인 데이트는 신앙인과의 결혼이 되기 싶지 않겠니? 결혼을 전제로 하는 데이트 습관, 이것이 목적이 이끄는 연애다. 최소한 은혜가 이 부분에 동의한다면 J와는 궁극적으로 결혼 할 수 없지 않겠니? 그걸 알면서도 데이트를 하고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은 책임 있는 행동일까? 데이트를 통해서 더 깊은 친밀감을 가진 이후에 ‘당신과 결혼은 안되겠다’ 는 얘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올 때 상처 줘야하는 너 자신, 상처 받을 상대방이 어떨지를 냉철하게 생각했으면 좋겠어.

은혜야!

이건 선생님의 조심스런 추측이다만 은혜가 불신자인 J의 프로포즈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심지어 ‘사귀어 볼까?’ 하는데 까지 간 데는 뭐랄까 좀 미묘한 마음의 역동이 있지 않았을까? 은혜가 누구보다 열심히 하나님 뜻을 구하면서 신중하게 연애를 위해서 기도하는데도 연애 문제가 어렵게 느껴져 좀 지친 것 아니니? 너는 이제 괜찮다고 하지만 지난 번 K와의 일로 인한 마음의 후유증이 남아 있는데다 주변의 믿는 형제 중에는 딱히 마음에 드는 사람도 없고 말이다. 하나님의 방법대로 연애하기 위해 기도하며 기다리는 일이 버겁게 느껴지고 조금 엇나가보고 싶은 것은 아닌지? 조금은 자포자기랄까, 하나님이든 선생님이든 어딘가에 반항해보고 싶은 마음에 J의 제안에 마음을 열게 된 건 아닐까. 그런 좀 불편해진 마음에 ‘비신자와 결혼하지 마라. 연애하지 마라’ 하는 부정적인 명령에 태클을 걸어보고 싶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단지 은혜의 상황뿐 아니라 교회 안의 현실을 생각할 때 마음이 많이 아프다. 교회 청년부 마다 성비에 있어서 자매가 월등히 높은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 아니냐. 크리스챤 형제와 이성교제를 하고 결혼을 하고 싶어도 이런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그럴 수 없는 자매들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 현실이야. 너희 교회만 해도 너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여자 선배들이 많이 있지 않니. 목적이 이끄는 연애를 하고 싶어도 형제가 없다는 한국교회 청년부의 현실에 ‘비신자와의 결혼 불가! 꽝꽝꽝!’ 이것이 많은 자매들에게 가혹한 요구라는 것 안다. 정말 마음 아픈 일이다. 은혜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함께 기도할 부분이라고 생각해.

다시 은혜 개인의 얘기로 돌아가자. 사람은 너나 할 것 없이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 같아. ‘절대 열어보지 마세요’ 하면 꼭 열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니? 나는 운전하다가 속도제한 표시에 감시 카메라까지 있는 곳을 조심해서 지나고 나면 이상하게 엑세레이터를 더 밟게 되더라.^^; 딱 잘라서 안 된다고 하면 더 하고 싶은 마음이 분명 우리에게 있는 것 같아. 그 명령이 우리의 안전을 위한, 우리를 상처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뜻이 있는 것에는 주의를 잘 기울이지 않고 말이야. 네가 말한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는 말씀은 결혼관계에서 최선의 것을 주시기 위해서 미리 보호막을 쳐두시는 사랑의 명령인 것 같아. 때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는 일이 끝도 없는 일 같고, 지치고 힘들지. 주변에 널린 쉬운 방법들이 눈에 들어오고. 그렇지만 그 분의 방법은 믿을만하다는 것을 은혜가 다시 기억했으면 좋겠어. 이제 선생님이 더 할 말이 없구나. 은혜가 선생님에게 던진 ‘비기독교인 친구와의 데이트, Yes냐 No냐?’ 이 질문은 다시 은혜에게 토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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