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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뽀하는 언니 손일까? 본문

푸름이 이야기

뽀뽀하는 언니 손일까?

larinari 2012.10.18 18:35




세상에서 제일 예쁜 손은 누구의 손일까요.
지난 번에 나는 거울에게 살짝 물어보았죠.
텔레비젼에 나오는 예쁜 탈랜트의 손일까.
피아노를 연주하는 뽀뽀하는 언니 손일까.
아니야 아니야 거칠어지신 우리 엄마 손.
그렇지 그렇지 가장 예쁜 손은 우리 엄마 손.




채윤이가 네 살 때 어린이집에서 배워 부르는 노래입니다. 노래든 학습이든 거의 청각을 통해서 습득하는 채윤이는 무조건 들리는대로 불렀습니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곱고 하얀 언니 손일까'를 '피아노를 연주하는 뽀뽀하는 언니 손일까'로. 이렇게 부르던 노래가 여러 곡 됐는데 일부러 바로 잡아주질 않았습니다. 채윤이만의 노래, 채윤이만의 독특한 발음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었죠. 그 독특함이 사랑스러웠고요.




음악치료 대학원을 다니며 음악 전공한 친구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음악을 전공하고 그 전공에서 의미를 찾지 못해 방황하다 '음악 치료'를 만나고 '구원자'를 만난 것처럼 기뻐하던 사람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연주공포가 있는 친구도 있었고, 여러 이유들이 있었겠지요. 어렸을 적부터 피아노만 붙들고 살았었을 겁니다. 그랬으니 명문대학들을 들어갔겠지요. 그 경험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아기 적부터 음악적 감각이 남다르던 채윤이를 굳이 음악을 시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음악을 하더라도 정말 원할 때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서 해야 한다고 믿었지요.




때문에 예술중이니 예술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생각도 하지 않았다기 보다는 대놓고 '보내지 않겠다. 가끔씩 절대 보내지 않겠다.'라고 지껄이기도 했지요. 곡절 끝에 대안에 없어서 가게 된 명일동의 음악학원에서 선생님을 한 분 만났습니다.(언젠가 이 만남에 대해서 글로 나눌 날이 있을 것입니다.) 처음엔 어려워만 하더니 차차 너무 좋아하고 선망하는 것입니다. 이 선생님을 만나고부터 피아노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고 듣고 치는 수준이 달라졌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선생님을 롤모델로 삼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중을 가겠다는 것입니다. 나름대로 자신의 진로를 선택한 것인데 그러지 마라 할 수도 없고, 그간 소신이 있기에 그래라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기도하고, 미루고, 현실적인 고민을 하는 과정에서 작년 이 맘 때 즈음 결정을 했습니다. 채윤이의 의지가 확고했고, 마음의 고민들이 자연스럽게 해소되면서 된 일이지요. 그리고 채윤이가 참 열심히 해왔습니다.




끝없이 놀아야 하는 놀이의 신인 채윤이가 놀 시간이 없어서 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루에 다섯 시간 씩, 아니 조금 과장해서 어쨌든 밥 먹으면 피아노 앞으로 가는 1년을 보냈습니다. 지난 여름 에어콘도 없이 무더위와 싸우면서도 내내 열심히 쳤습니다. 예중에 합격을 해도 안해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위해서, 아직 어린 나이에 저렇게 매진해보는 경험이 소중할 거라는 생각조차 들었습니다. 그리고 늘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열심히 하되, 합격해도 좋고 못해도 된다. 이래도 좋은 일이고 저래도 좋은 일이다.'




입시를 얼마 앞두고 중요한 콩쿨이 있었습니다. 내심 좋은 성적을 거두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는데 그러질 못했습니다. 생각보다 마음의 좌절이 컸습니다. 해피 해피 채윤이는 금방 털어버리고 연습을 하는데 말이죠. 그러면서 '되고 좋고 안되도 좋다'는 말을 거두어 들이기로 했습니다. 궁극적으로 그렇게 믿는다 할찌라도 감정을 보니 정직한 말이 아니더군요. '되도 좋고 안되도 좋다'라고 말하면서 성숙한 믿음을 가졌다 뻐기도 싶었던 것 같아요. 입시 결과가 나오면 어떤 결과이든지 지금과 같은 마음으로 글을 쓸 수 없음을 알기에 '바로 지금'의 마음을 흔적으로 남겨 놓습니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뽀뽀하는 언니 손.
이 우리 채윤이 손이 되었어요. 저 손가락에 쌓인 땀과 시간이 우리 채윤이를 더 아름다운 사람으로 자라게 할 것을 믿어요.
오늘은 채윤이 손에 뽀뽀를 한 번 해줘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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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Comments
  • 프로필사진 신의 피리 2012.10.18 23:02 실망이라는 감정이 싫어서 애써 믿음이라는 허공의 세계로 도피한 건 아닌지 싶네. 실패해도 낙방해도 좋다 라는 말이 도리어 느슨한 마음. 책임없는 행동이 되는 건 아인지 싶고. 깊은 좌절과 절망, 무책임이라는 나만의 뿌리깊은 죄를 느끼며, 잠든 당신과 채윤이를 위해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12.10.20 10:38 신고 그러게.
    실패와 고통 같은 것들을 맞닥뜨리기 두려워서 '믿음이라는 허공의 세계'로 도피하는 습관은 뿌리가 깊은 것 같아. 깊어도 너무 깊어.
    좀 인식하고 내 자신에게 정직해졌나 싶으면 어느 새 고개 드는 자기기만.
    이런 일로 다시 한 번 정신을 차리게 되는 것 같아.
  • 프로필사진 BlogIcon 뮨진짱 2012.10.19 00:38 신고 우리 채윤이
    열심히 노력했으니, 꼭 좋은 결과 얻었으면 좋겠어요!
    정말..! 저도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12.10.20 10:39 신고 고맙다.
    어떤 결과든 궁극적으론 채윤이에게 좋은 결과가 될 것을 믿으며!
  • 프로필사진 BlogIcon 털보 2012.10.19 08:45 좋은 결과가 있기를 비는 마음 하나 추가요.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12.10.20 10:40 신고 영월 동강의 정기를 받으신 신령하신 털보님의 기원이 큰 힘이 될 거예요. 감사 드려요.^^
  • 프로필사진 forest 2012.10.19 10:51 <더라꾸떼이션>을 <왕십리>로 알아들은 타코로 미루어 짐작컨데
    <곱고 하얀>을 <뽀뽀 하는>으로 알아들은 건 아닐까요? ㅋ

    예전에 왕십리역까지만 운행하던 5호선의 마지막 역이 왕십리였어요.
    그때 왕십리역에만 가면 영어로 <더 라스트스테이션 이즈 왕십리>을 나름 해석해서
    왕십리 역을 더라꾸떼이션이라고 하더군요.ㅋ
    그래서 우리는 그때부터 왕십리역이 더라꾸떼이션이었지요. ㅋ

    채윤이에게 처음으로 찾아온 시험결과네요.
    저도 그 어떤 결과든 채윤이가 행복하기를 바랄게요.^^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12.10.20 10:43 신고 채윤이가 돌 전 부터 보던 <벅스라이프>가 영어로만 대사가 나오던 거였는데요. 말을 하기 시작한 어느 날 부터 '개미 영화(벅스 라이프를 그렇게 불렀)'에 나오는 말이라며
    '합뿌드 뻬이빨!' 하는 거예요.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하고 채윤이 아빠랑 열심히 영화를 뒤졌어요. 결국 찾아냈죠.
    Hopper's afraid of birds. ㅋㅋㅋㅋ
  • 프로필사진 mary 2012.10.19 12:47 그렇챦아도 때가 됐는데.. 하고 있덩 참인데.
    김정과 머리가 꼭 같이 가라는 법은 없는 거니깐.
    어찌보면 채윤이한테 첫번째 관문일텐데. 좋은 결과 있기를.
    바뜨, 바라는 결과가 안나온다고 절대 실망할 일은 아니라고,
    이 엄마 힘주어 말할 수 있으므니다~~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12.10.20 10:55 신고 mary님이 그냥 대충 말씀하셔도 맞는 말씀인데
    힘주어 말씀하신다면 확실히 맞는 말씀입니다.ㅎㅎㅎ
  • 프로필사진 iami 2012.10.19 16:09 lari님은 책으로도 글로도 블로그로도 보니 그리 그립지 않은데^^,
    채윤이는 오래 못봐 보고 싶군요. 사춘기 소녀라서 낯을 가릴지도 모르겠지만요.
    장난꾸러기 아가씨가 내년이면 벌써 중학생이 된다니, 흠~ 세월 참 빠르네요.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12.10.20 10:57 신고 제가 요즘 그 생각 자주한다니까요.
    뭣도 모르는 신혼 초에 저희 집에 처음 놀러오셨을 때,
    해인이 기원이가 딱 지금의 채윤이 현승이 나이더라니까요.
    아, 이렇게 세월이 가는 거구나. 싶어요.
    입시 마치면 챈이의 영원한 '서쉐석 목짠님' 합정동으로 한 번 뫼실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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