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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SS 영혼의 친구

땡땡 언 사골국물, 녹을 날이 있겠지요

larinari 2012. 4. 6. 21:37

 

 

1.

사골을 끓여서 한 번 먹을 양만큼 담아 얼렸다. 시어머니께로 가는 사골이었다. 두통 때문에 냄새에 예민하셔서 당신 손으로 끓이면 입맛이 떨어져 드실 수 없다고 하셔서 언젠가부터 어머니께 사골이 생기면 내가 갖다 끓여서 인건비를 사골국물로 떼고 다시 갖다드리는 시스템이 생겼다. 물론 내가 자발적으로 그러겠노라 한 것이다. 나는 사골 끓이는 게 쫌 재밌는데다 최대한 어머니가 뭔가를 하시고, 뭔가를 나눠주셔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자유로와지셨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어머니를 위하고, 자발적이었던 일이었는데 이번엔 좀 껄쩍지근한 마음으로 주고 받는 형국이 되었다.

 

2.

며느리 편에서 보자면 유달리 요구가 많으신(당신편에서는 전혀 그 반대로 생각하고 계시는) 어머니가 신혼 초부터 기사로, 같이 살 때는 김치담그는 도우미 아줌마로, 어머니의 대리 주치의로, 하시라도 말씀을 들어들어야 하는 상담자로 많은 역할을 요구하셨다.
어머니과 관계맺기 1단계 시절에는 '거절하지 못함에 대한 자괴감'에 힘이 들었다. 마음으로는 어머니의 요구가 과하다 여기면서 '안돼요'를 적재적소에 꽂질 못해 '어...' 하다가 불려나가고 '어...' 하다보면 운전하고 있고 그랬다. 이건 뭐 내가 자발적으로 섬기려고 한 것도 아니고 어쩔 수 없이 끌려다는 것이니 내 몸만 괴롭지 하다못해 효도를 했다는 어떤 고차원적인 기쁨조차 잘 느낄 수 없었다.

 

3.

부단히 괴로워했다. 겉으로는 착한 며느린데 속으로는 항상 부글부글 끓고 있다는 것, 통합되지 못하는 내 정서 때문에 말이다. 그럴 때 남편이고 누구고 '아니, 그렇게 하고나서 힘들면 처음부터 못한다고 하던지!' 이러면 진짜 돌아버릴 것 같았다. 그게 되면 이렇게 고민하겠냐고! 하면서... 마음의 여정을 하면서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되었다. '두려움이냐, 사랑이냐' 사실 어머니의 과한 요구에 거절하는 못하는 것은 내가 착해서도 아니고, 사랑해서도 아니고 두려움 때문이라는 것이다. 착한며느리가 되지 못할까봐 두려움, 부모님조차 제대로 공경하지 못하는 말 뿐인 신앙인이 될까 두려움, 남편의 인정과 칭찬을 잃을까봐 두려움.... 기타 등등이다. 그렇게 이름을 붙이고 나서는 거절을 하고 못하고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지만 훨씬 마음이 자유로와지고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4.

어머니를 수 많은 병원에 모시고 다니면서, 어머니의 끝없는 이야기를 들어드리면서 정말 사랑하게 되었고, 사랑해 드리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어머니의 만성두통과 불면증은 사랑받아야 나으실 거라는 확신이 생긴 것이다. 내가 다니던 가톨릭의 기도피정에 모시고 다니고, 가끔 야외로 모시고 나가 하염없이 시간을 두고 어린시절 상처 이야기도 들어드렸다. 매일 매일 통화하며 어머니가 하루를 지내며 누구를 만나서 얼마나 훌륭하게 살아내셨는지 들어드리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읽기 쉬운 치유에 관한 책을 사다드리고 급기야 어머니의 병이 마음의 문제임도 인식시켜드리고 상담받는데 까지 모셔갈 수 있었다.

 

5.

작년 이 맘 때 아버님께서 갑자기 암선고를 받으시고 두 달이 채 되지 않아서 천국에 가셨다. 아버님의 짧은 투병기간 동안, 돌아가신 이후에 어머님의 선택과 행동에 많이 실망이 됐다. 다시는 어머니를 마주할 수 없을 만큼 어머니의 인격과 신앙에 실망스러워졌다. 아버님을 그리며 매일매일 우시는 것조차 슬픔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만큼이었다. 마음으로 애를 쓰지도 않았지만 몸이 어머니를 향해서 움직이질 않았다. 어머니로부터 멀리, 거리를 두고 싶기만 했다. 다시는 예전처럼 어머니를 사랑하게 될 수 없을 것만 같다. 아버님을 잃고,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 당하시고, 마음 붙일 교회도 없는 최악의 상황에서 어머님의 말씀과 행동 역시 최악으로 치달으시는 것 같아 짧은 전화 통화 조차도 버거웠다.

 

6.

그럴수록 담담해지고 차거워지는 내 마음이다. 그 동안 나는 할 만큼 했다는 생각과 함께 마음도 몸도 전혀 움직이지 않는데 어머님께 다가가 사랑해드릴 수가 없다. 있는 그대로 인정했다. 어머님이 몹시 섭섭해하실 뿐 아니라 내 마음을 더 얼어붙게 만드는 언사도 서슴치 않으셨지만 그저 어머님과 선을 긋고만 싶다. 기회가 있으면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말씀 드리고 입에 발린 격려나 칭찬은 한 마디도 내지 않았다. 어머님이 가장 힘들 때 가장 기대고 싶으실 내가 이러고 있는 게 죄송하긴 하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없는 걸 하겠다고 나설 힘이 이젠 내게 없다.

 

7.

어머님께 말씀 드렸다. 어머니를 사랑하는 마음 여전해요. 제가 행동이 달라졌어도 어머니에 대한 마음까지 달라진 건 아니예요. 그리고 괄호에 다음 말을 괄호에 넣었다. 그러나 다시 예전처럼 어머님께 다가갈 수 있다는 보장은 없어요. 지금으로선 그럴 수 없다는 생각이 더 강해요. 그러나 이제껏 어머님을 사랑하고 섬기면서 제 힘으로 못했어요. 정말 모르겠고 길을 잃을 때마다 성령님 그 분이 신비롬게 안내하시고 그 손 잡고 왔어요. 혹, 그 분께서 다시 제 손을 잡고 끌어가신다면 회복될 수 있을거예요. 어머니, 여기까지예요. 지금은 여기까지예요.

 

8.

사골 한 그릇 한 그릇에 그 전 같은 따스함이 없는 걸 어머니도 아실 것이다. 따스함은 없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겠다는 실낱 같은 의지 함 줌은 있다. 어머니 뿐 아니라 관계며 삶의 모든 문제에서 힘겨울 때마다 '주 안에 있는 보물을 나는 포기할 수 없네'라며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곤 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저 사골에 담았다. 나의 노래를.... 주 안에 있는 보물을 나는 포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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