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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마음의 환대

사람을 요리할 수는 없다

larinari 2008.11.19 10:40

네 식구 밥이 아니라 손님이 한 사람이라도 함께하는 식탁이면 긴장이 되고, 신경이 많이 쓰이던 시절이 있었는데.
장을 보기도 전에 메뉴를 정하는 과정에서 긴장할 만큼 긴장하고 에너지를 소진할 만큼 소진하곤 했었죠.
언제부턴가 여럿이 먹는 식사준비도 아주 쉽게 느껴집니다.
불과 한 두 시간 만에 저 무섭게 생긴 핏물 흐르는 등뼈 8키로가 맛있는 찜으로 되는 과정이 내가 한 일이라니...
이건 할 때 마다 대단한 창작행위다. 하면서 실실 웃음이 나오기도 합니다.



남편의 사역이 청년부로 바뀌고 두 주가 지나갔습니다.
목장모임 할 때와는 또 다른 느낌과 부담으로 식사준비를 합니다.
지난 주에는 청년부 행사가 있어서 돕느라고 오징어 20마리를 손질해서 불고기 양념을 했지요.
지난 주나 그 지난 주나 처음 도전해보는 음식양인데 참 이렇게 손쉽게 뚝딱 되다니....
요리의 신이 이제는 내 손에 찰싹 달라붙었구나. 싶습니다.


'할 수 있는 게 밥 밖에 없어서....'
우리 교회 어떤 목녀님이 오래 전에 하신 말씀입니다.
초창기에 젊은 목원들이 많았던 목장이었는데 가정교회는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는데 나는 보여줄 것도 없고 할 수 있는 게 밥하는 것 밖에 없어서 밥만 열심히 했다고 하셨습니다. 생각해보니 할 수 있는 게 밥 밖에 없습니다.
목장할 때도 그랬습니다. 사람들의 어려움이 가슴으로 밀려들어 뭐라도 돕고 싶은 마음 간절한데.... 삶으로 보여주기는 커녕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럴 때 정말 기도 밖에는 해줄 수 있는 게 없지만 '기도해줄께' 하는 말조차 공허하게 들릴 만큼 힘든 상황에서는 그 말도 내기 어렵습니다.그렇지만 밥은 할 수가 있습니다. 요리는 오징어 20마리 아니라 50마리라도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길에 접어들어 무력하게만 느껴지는 것은 사람은 요리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지요. 사람을 변하게 하는 건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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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Comments
  • 프로필사진 진지남 2008.11.19 13:40 목회의 부르심은 내가 받았으니까
    당신은 사모란 지위로부터 자유하라... 했는데...
    미안합니다.
  • 프로필사진 larinari 2008.11.19 15:00 미안해 하셔야 합니다.
    헌데 어쩌겄습니까?
    목회로 부름받은 건 당신이지만,
    내 반쪽이 목회로 부름을 받았으니 어찌 자유로울 수 있겄습니까?
    힘내시구랴.
  • 프로필사진 hayne 2008.11.19 14:48 사모건 목녀건 엄마건
    일단 요리를 잘한다는거, 거기다 요리를 좋아한다는건
    매우 큰 장점인거 같아. 본인에게나 주변인이게나..
    양이 정말 장난아니군..
    나 전에 오징어 10마리 껍질까서 불고기 만들다 그 이상은 못하겠다 생각했는데..
    50마리까지 넘본다고라?
    저 파란색 그릇은 우리집 깍두기 담는 그릇 크기네..
  • 프로필사진 larinari 2008.11.19 15:00 껍질 벗기는 건 초반에 포기했구요.ㅋ
    저 파란색 그릇은 저희집에 있는 모든 그릇을 통틀어 젤 큰 놈이죠.
  • 프로필사진 BlogIcon forest 2008.11.19 15:46 일단 엄청난 일감을 슥슥 해내는 모습에 박수를 보내고
    의연히 대처하는 모습에 또 한번 박수를 보냅니다.

    맛있게 먹어주는 청년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나눔도 맛있게 나눠주는 멋진 청년들이 되었으면 더할 나위없는 기쁨이 될 것 같아요.
    두 분의 사역도 맛있고 기쁨이 넘치시기를...^^
  • 프로필사진 larinari 2008.11.19 16:38 감사합니다.
    적응해가면서 신나고 맛있고 기쁨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생각나시면 기도도 한 번씩 쏴주시고요.^^
  • 프로필사진 BlogIcon 털보 2008.11.19 18:22 우리 앞으로 모임을 가져도 단식 모임을 가짐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마구마구 들게 합니다.
    꼬르륵 모임이랄까.
  • 프로필사진 larinari 2008.11.19 21:54 먹을 거 없는 모임은 저는 모임으로 안 치는데요.
    반대표 백만 21표 입니다.ㅋ
  • 프로필사진 BlogIcon 털보 2008.11.19 23:14 허거덕, 저 많은 음식을 하시고도... 반대의 기력이 남아 있으시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08.11.19 23:36 신고 저한테는 요리가 창작활동이라니깐요.

    매일 밤 12시 마다 따박따박 신선한 글이 올라오는 창작활동에 비하면 뭐 이 정도는 뭐 새발의 핍죠. ㅎㅎ
  • 프로필사진 BlogIcon 해송 2008.11.19 23:19 신고 청년부를 맡으니 더 일이 많아지나요?
    근데 청년들은 라면이면 최고로 알텐데 처음부터 너무 고급(?)으로 길을 들여 놓으시는 거 아녜요?

    우리 예지 아빠도 청년부를 맡고 있거든요.
    벌써 3년째인데 아마 내년에는 다른 부서를 맡지 않을까?하는데....
    처음에는 50여명 출석했는데 지금은 200여명이나 츨석한데요.
  • 프로필사진 larinari 2008.11.19 23:22 실시간이요~ㅎㅎㅎ
    우와, 예지아빠께서는 사진만 잘 찍으시는줄 알았더니 사역도 진짜 잘하시나봐요. 초짜 청년부 도사님 이 댓글 보시면 부러워 하시겠어요. 지금 저희는 좀 쫄아있는데...

    저게 보기만 그렇지 그렇게 고급이 아니예요. 만들기도 쉽구요. 할 수만 있다면 최고급으로 대접해야죠.헤헤
  • 프로필사진 hs 2008.11.20 23:13 예지 아빠가 명성교회에서 2년간 있었잖아요.
    그때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나 보더라구요.
    지금의 교회에서는 특별한 이벤트성 행사를 안 했었는데 예지 아빠가 간 뒤로 뮤지컬등 여러가지 행사를 몇번 했는데 모든 교인들의 반응이 아주 좋았대요.
    직접 하는 청년들도 좋아하고...
    또 임원단 MT인가 뭔가도 몇번씩 가고 산곡기도원 같은데서 수련회도 하더라구요.
    그래서인지 많이 부흥을 했어요. ^^
    아마 JP전도사님께서는 그 분야에서도 뛰어 나시리라 저는 믿습니다. 아 멘~! ^*^
  • 프로필사진 larinari 2008.11.21 15:17 축복해 주시고 아멘까지 해주시니 정말 잘하게 될 거 같은데요.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인 만큼 기대도 많고, 꿈도 많고, 그 만큼 두려움도 많아지는 것 같아요. 이렇게 응원해주시고 기도해주시는 분들 계시니 자신의 힘은 빼고 그 분의 힘으로 할 수 있을 거예요. 일단 200명 부흥을 목표로 하라해야겠어요.ㅎㅎㅎ
  • 프로필사진 나무 2008.11.25 11:22 와우~~ 대단! 사모님의 탁월함을 볼때마다 놀라고 왠지 작아지는 제자신 ㅎㅎ
    음식 잘 못하는 저도 사모 될 자격있겠죠~^^; 마니 배워야겠다 박소윤! ㅋㅋ
  • 프로필사진 larinari 2008.11.25 23:47 음식하고 사모하고 무신 상관이어요?
    음식하고 상관없듯 사모자격 있는 성품이나 기질도 따로 없지만.... 사모님처럼 둥글둥글하고 처음 보는 사람도 무장해제 시키는 좋은 성품 앞에 오히려 제가 작아져요.
    저는 요즘 다시 생각해보니 사모로는 완전 부적격이예요.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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