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식구 밥이 아니라 손님이 한 사람이라도 함께하는 식탁이면 긴장이 되고, 신경이 많이 쓰이던 시절이 있었는데.
장을 보기도 전에 메뉴를 정하는 과정에서 긴장할 만큼 긴장하고 에너지를 소진할 만큼 소진하곤 했었죠.
언제부턴가 여럿이 먹는 식사준비도 아주 쉽게 느껴집니다.
불과 한 두 시간 만에 저 무섭게 생긴 핏물 흐르는 등뼈 8키로가 맛있는 찜으로 되는 과정이 내가 한 일이라니...
이건 할 때 마다 대단한 창작행위다. 하면서 실실 웃음이 나오기도 합니다.



남편의 사역이 청년부로 바뀌고 두 주가 지나갔습니다.
목장모임 할 때와는 또 다른 느낌과 부담으로 식사준비를 합니다.
지난 주에는 청년부 행사가 있어서 돕느라고 오징어 20마리를 손질해서 불고기 양념을 했지요.
지난 주나 그 지난 주나 처음 도전해보는 음식양인데 참 이렇게 손쉽게 뚝딱 되다니....
요리의 신이 이제는 내 손에 찰싹 달라붙었구나. 싶습니다.


'할 수 있는 게 밥 밖에 없어서....'
우리 교회 어떤 목녀님이 오래 전에 하신 말씀입니다.
초창기에 젊은 목원들이 많았던 목장이었는데 가정교회는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는데 나는 보여줄 것도 없고 할 수 있는 게 밥하는 것 밖에 없어서 밥만 열심히 했다고 하셨습니다. 생각해보니 할 수 있는 게 밥 밖에 없습니다.
목장할 때도 그랬습니다. 사람들의 어려움이 가슴으로 밀려들어 뭐라도 돕고 싶은 마음 간절한데.... 삶으로 보여주기는 커녕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럴 때 정말 기도 밖에는 해줄 수 있는 게 없지만 '기도해줄께' 하는 말조차 공허하게 들릴 만큼 힘든 상황에서는 그 말도 내기 어렵습니다.그렇지만 밥은 할 수가 있습니다. 요리는 오징어 20마리 아니라 50마리라도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길에 접어들어 무력하게만 느껴지는 것은 사람은 요리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지요. 사람을 변하게 하는 건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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