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의 북한 방문기 제목이 <사람이 살고 있었네>였다. 어떤 곳이라도 그곳이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일단 안심이다. 헌데 요즘은 밤길에 제일 무서운 것이 사람이니, '사람'이라고 다 내게 '사람'이 아니기도 한 것이다. 코스타를 통해서 내게 와 의미가 된, 그 의미가 더욱 새로와진 사람이 있었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 두드리는 변죽이다.


페이스북에서 사진으로 몇 번 봤던 이수진 씨다. 황병구 본부장님의 부인이다. <와우 결혼>의 추천사를 부부가 함께 써 준 인연으로 페이스북 메시지를 주고받다가 이 분이 코스타에 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출국 비행기도 같았다. 어릴 적 같지 않고 많이 까다로워지고 편협해져서 계속 갈 사람, 여기서 보면 됐고! 할 사람이 금방 알아차려 진다. 도착한 날 저녁 시간부터 오랜 친구처럼 얘기가 통하는 게 감이 참 좋았다. 언젠가부터 내 또래 아줌마를 만나서 사는 얘기, 애들 키우는 얘기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줌마들 얘기를 주로 지켜보는 방식이고, 가끔 '너는 어떠냐?'하고 물어서 내 얘기를 조금만 꺼내도 '참 이상한 아줌마다' 하는 눈빛이 돌아오기가 일쑤라서 말이다. 이 아줌마도 어디 가면 나 같겠구나. 싶어서 한 번에 깊은 마음속 문까지 열렸나 보다.


보기보다 낯을 많이 가려서 강사들과 덥석덥석 인사하고 말을 걸지도 못했으니 수진 씨 아니었으면 꽤 외로웠을 뻔했다. 후반으로 갈수록 상담으로 바빠져서 긴 수다를 떨지 못했어도 어느새 '언니 동생' 되어 오래 사귀어 온 사람처럼 편안해졌다. 이 어여쁜 아줌마에 관한 이야기는 다시 만나 나눌 얘기도 많고, 블로그에 풀어놓을 썰도 많다.
 

 

 

애써 거부하지도 않으려고 한다. 한영교회를 떠나오면서 남편이 청년들에게 그랬다. '될 수 있으면 1년 동안은 연락하지 말아라. 새로운 목사님과 좋은 관계 만들고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 다시 연락해라' 나 역시 한영교회 아이들과는 정을 떼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이나 나나 그렇게 가슴을 열고 만나는 사람들이 있었을까 싶다. 3년간의 목회자가 아니라 오랜 선배이고 큰오빠 큰언니 정체성이 그들과 우리 사이에 있었지 않나 싶다. 애써 찾지 않지만, 그렇다고 자연스러운 만남을 거부하지도 않는다. 보고 싶을 때 찾아오면 만나고, 말 못 할 고민이 있어 연락이 반갑게 맞는다. 그런 의미에서 TNTer들과의 사랑은 끝나지 않은 것이다. 아니, 어떤 사랑이 물리적인 거리로 끊어질 수 있단 말인가.

1년간 어학연수를 가 있는 정윤이가 코스타에 참석했다. 1,000여 명의 사람들 중에서 그의 지난날을 아는 사람을 만나는 기쁨이란! 오가며 캠퍼스에서 자주 마주치는 정윤이는 익숙함이란 느낌을 일깨워 주었다. 익숙함이란 안정감이며 편안한 느낌이 아니겠나. 일정을 다 마치고 휘튼 캠퍼스 안에 있는 빌리그래엄 홀에 들러 찍은 사진이다.  

 

 

엘리트 신학생과 꿈이 아름답고 드높은 간호사였다. 이들을 처음 만났던 때는. 결혼을 앞두고 있었고, 남편이 신대원에 들어가서 만난 마음 맞는 동생이었다. 우리 아이들이 일곱 살, 네 살 때였으니 지금 이들 부부의 아이들인 하린이 한결이와 엇비슷할 때이다. 강 목사님은 나랑 비슷한 점이 많아서 잃었던 누나를 찾은 것 아니냐며 농담을 했던 적도 있다. 코스타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휘튼으로 달려와 주었다. 아, 맞다. 내가 페이스북을 가입한 이유가 저 아기, 미국으로 건너간 한결이를 보기 위해서였다. 어느새 많이 자랐다.

 

 

감정 표현에 인색한 남편이 칭찬해 마지 않는 후배가 전지성 강도사님이다. 정말 좋은 목회자가 될 것이라며 아주 그냥 대놓고 이뻐라 하신다. 울보 은혜 역시 우리 부부에게는 귀한 사람이다. 그 멀리 미국에 가서 이들 부부를 만날 수 있었다니. 게다가 돌쟁이 은슬이, 하드웨어는 엄마 소프트웨어는 아빠인 은슬이라 이틀 밤을 지내면서 꿈같은 시간이었다. 

 

 

반 하루를 함께 지내는 동안 생활 속 찍사인 승주사모님이 연실 사진을 찍었다. 찰칵찰칵, 난생처음 미국에 와 흔적을 많이 남기고픈 내게 고맙고 위로가 되는 소리였다. (대접받고 싶은 마음이 늘 충천하지만) 그것을 가장하기 위해서 먼저 대접하는데 익숙하고, (실은 찍히고 싶지만) 찍어주는 것으로 그 마음을 대신하는 내게는 이 부부들의 환대가 또 다른 새로운 기쁨이었다.

 

 

시카고 한복판에서 두 시간 남짓 기다려서 유명하다는 지오다노 피자를 먹었다. 사실 그 시간이 그리 힘들지가 않았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거기 함께 있다는 것이 내내 믿어지지 않아서 현실감이 많이 떨어져 있었기 때문인 듯. 이 모든 만남이 종합선물 세트처럼 내게 안겨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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