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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얼굴을 가진 리뷰

사람 담금질

larinari 2009. 7. 16. 11:27



딱히 의식이 수면 위에 올리진 못했으나 예전부터 안희정이라는 사람이 궁금했었다.

아마도 일단 그이 가끔씩 화면에서 볼 때마다 느껴진 그의 강한 내향적 포스 때문이었으리라.

노무현 대통령 서거 직후 그가 카메라를 향해서,
'이명박 대통령, 대한민국 검찰, 조중동! 당신들이 원했던 게 진정 이거였습니까?' 하고 내뱉을 때도 사실 강한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너무나 절제된 그러나 결국 감출 수 없는 떨림으로 그저 마음을 무너지게 했다고나 할까?

저 사람은 누굴까?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저 사람. 배울만큼 배운 사람, 알 만큼 아는 사람이 그 누가 인생을 '측근'으로 살고 싶겠는가? 노무현 대통령으로 인해서 감옥을 사는 것조차 감내하고도 여전히 '측근'인 저 사람을 도대체 누굴까?

대통령 서거 후 미공개 동영상에서 안희정씨의 출판을 축하 메세지를 전하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메세지를 전하다 울먹하며 말을 못 잇고, 결국 책으로 얼굴을 가리고는 눈물을 쏟아놓은 다음에야 말을 이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 '저를 위해서 그렇게 희생을 했는데 그 희생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질 않아요. 누군가 그렇게 희생을 했으면 그것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당연히 부담이 되는 것이거든요. 근데 이 친구는 그렇게 하지 않는 법을 아는 사람이예요'

그 영상을 보고나서 더 궁금해졌다. '자전적'이라는 분위기의 책들을 그다지 즐겨 읽는 편이 아닌데 얼른 이 <담금질>을 주문했다. 읽어달라고 기다리고 있는 책들이 줄을 서 있지만 얼른 집어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강한 사람이었구나. 광주항쟁을 접하면서 '이대로 두면 안되겠다(사람 죽이며 정권을 잡은 사람들)' 싶어서 대학생들을 찾아가 따라다니다 결국 중앙정보부에 끌려갔던 때가 고딩시절이었다. 강하고 강한만큼 뒤를 돌아보거나 타협을 하는 것, 또 자성을 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청년 안희정의 인간 담금질 이야기. 가장 쎈 '담금질'은 대학생 시절 잡혀가 고문을 받으면서, 결국 거기에 굴복하여 친구들의 이름을 대고 나왔던 그 때라고 여겨진다.

그 때 이후로 안희정은 깨닫는다.  자신이 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자신에 대한 실망, 자신이 대단한 줄 알고 달려왔지만 결국 별 거 아니라는 인식 끝에 방황하고, 나락에 떨어지고, 희망을 잃은 채 생각없이 사는 세월이 있었다. 그러나 결국 그로인해 가장 안희정다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후로 그 자신의 말대로 '양심 찾고, 의리 찾고, 돈이 안 돼도 함께 걸어가야 할 사람의 도리를 강조하는 길'을  걸으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아마도 그는 행복했을 것이다. 비록 가난했고, 고난이었고, 희생과 포기의 길이었겠지만.  '측근'일 뿐이었지만...
안희정에 대한 내 의문은 여기서 풀렸다. 그가 어떻게 '측근'으로 만족하고, '측근'으로 충실하게 일관되게 그 자리를 지키며 살 수 있는지 말이다. 결국,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아무리 훌륭해도 '나는 결국 대단하지 않다. 나는 내가 그렇게 싫어하고 비판하는 저 사람과 결국 본성상 크게 다르지 않다' 라는 뼈아픈 자각 없이는 정말 훌륭한 인격이 될 수 없다. 그 자각이야말로 측근으로서의 정치인 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무엇보다 하나님을 찾아가는 신앙의 여정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남편이 신학을 시작하기 직전에 느헤미야를 묵상하면서 그랬다. '여보, 여태까지 나는 모두들 느헤미야 같은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 헌데 생각해보니, 나는 성벽의 여기서 저기까지 한 구역을 맡은 벽돌 쌓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이름 없는 한 사람의 노역꾼. 그거면 되지 않을까?' 자신의 길에 확신을 가지고, 지금 자신이 하는 벽돌쌓기 단순노동이 무너진 하나님의 성을 쌓는 일임을 잊어버리지 않으면서, 끊임없는 역사의식으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면, 그것이면 되지 않을까?


이렇게 쓰면 마치 내가 이 책을 다 읽은 것 같지만 사실 결정적인 부분은 아직 읽지 못했다. 그리고 언제 읽을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페이지 83 쪽에서 노무현 대통령과의 만남이 시작되는데 이 장의 제목만 보고도 울컥하여 차마 눈이 가는 한 걸음을 뗄 수가 없다. 언제쯤 이 슬픔이 내면에서 가라앉아 83쪽 페이지를 넘길 수 있을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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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Comments
  • 프로필사진 iami 2009.07.16 13:39 한때 좌희정 우광재로 불리던 이죠.
    어떤 속내를 지닌 사람인지 잘 모르지만,
    책 제목은 정말 잘 짓고 잘 어울리는 서체를 썼네요.^^
    쇠귀체라고도 하고 어깨동무체라고도 부르는 신영복 선생님의
    정갈하면서도 단호한 힘이 느껴지는 폰트잖아요.

    저도 이 책 사 봐야겠어요.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09.07.17 00:01 신고 오셨군요! ^---^
    언제나 오실까 했었어요.
    아, 저 글씨체 이름까지 알고 계세요?
    아닌게 아니라 이 책의 제목도 신영복 선생님이 지어주시고 책을 쓰도록 독려하기도 하셨대요.

    왕림하심을 환영하옵고 감사드리옵니다.^^
  • 프로필사진 뮨진짱 2009.07.17 00:45 호곡! 싸모님~ 저도 그 동영상 보구.. 읽고 싶었던 책인데!!

    사실 안희정님 얼굴을 보면서 걍..이미지가 강도사님과 너무 흡사하다 생각되어
    꼭 저의 이 느낌을 전해드리고 싶었는데 ㅋㅋㅋ
    포스트 읽으면서, 예수님 말씀이 생각나서 마음이 쿡쿡 찔리네용.

    사모님의 슬픔이 얼른 가라앉기를..♡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09.07.17 08:50 신고 봤구나.ㅎㅎㅎ 주일날 저녁에 뮨진짱 없어서 섭섭했떠.

    분위기는 도사님하고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아.
    내향성이 짙고 그러면서도 내면이 유들유들 하지만은 않은 느낌이랄까? 난 10년이 넘도로 남자취향이 변하질 않네.ㅋㅋㅋ
    사지말고 내꺼 빌려보도록해. 단, 책 읽을 시간 있을 때!^^ 오, 가만있지 뮨진짱 시작했나?
  • 프로필사진 forest 2009.07.17 18:52 저두 안희정씨 문재인씨 이런 분들이 참 궁금했어요.
    아무래도 저는 이 집에서 어떤 책을 읽느냐에 따라
    다음 책을 선택하는 것 같지요.^^
  • 프로필사진 larinari 2009.07.17 21:58 어설피 여의도에 입성해서 일하다가 온갖 모멸감을 느끼고 나왔대요. 그리고 나서 우여곡절 끝에 자신에 대한 환상을 깨고, 자신이 별 수 없는 인간임을 뼈저리게 배우고 난 후에 안희정씨는 지금의 안희정씨가 된 것 같아요.
    그걸 보면서 아무리 지저분한 곳에 있어도 소신을 따라 희생과 고난을 감내할 준비만 된다면 거기가 바로 내 자리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구요.
    저는 항상 꿈보다 해몽이라서 그게 문제예요. 83쪽 이후로 언제쯤 넘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일 끝나시고 좀 쉬실 때 가져가셔서 보세요.^^
  • 프로필사진 BlogIcon 해송 2009.07.17 20:45 신고 전 안 희정씨를 잘 모르지만 호감은 못 느끼고 있는데
    사람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별로 안 좋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드네요.

    제가 어떤 사람에 대한 선입견에 따라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좋게 또는 나쁘게
    생각해 버리는 경향이 있는데 고치도록 노력해 봐야겠습니다.

    안 희정씨에 대해서도 편견을 버리고 다시.... ^^
  • 프로필사진 larinari 2009.07.17 22:02 저는 그 사람의 정치행보는 잘 모르지만 누군가의 곁에서,그것도 그 누군가가 대단히 힘을 발휘해서 자신을 지켜주지도 못하는데 그 곁을 한결같이 지키며 고난받는 것이 꽤 마음이 끌렸었어요. 위에 우리 뮨진이 말처럼 분위기가 채윤이 아빠랑 비슷한 면이 있기도 하고요.^^

    정치적인 입장과 관계없이 사람들이 많이 가지 않는 길, 배고픈 길을 자처해서 가는 사람들에게서는 확실히 남다른 게 있다는 생각이 책을 읽으면서 들더라구요. ^^
    이젠 두 분이 살살 고덕산에도 오르실 수 있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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