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

사모라는 이름 본문

JP&SS 영혼의 친구

사모라는 이름

larinari 2011.11.17 10:02

새로운 사역지로 옮기는 과정에서 여러 신선한 경험을 했습니다.
사역자를 뽑는 과정에 담임 목사님이 전혀 관여를 하지 않는 것이 그렇고.

부부가 함께 가서 인터뷰를 하는 것도 그러했습니다.
인터뷰에서 다섯 분 목사님이 던지는 질문에 다시 한 번 놀랐습니다.
자소서와 이력서를 꼼꼼히 읽고 치밀하게 준비한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신선하고 놀랐던 건 저를 부르시는 호칭이었습니다.
'채윤이 어머님'이라고 하시는 겁니다.

네? 저, 저요? 채윤이 어머님이요? 

또 '정선생님' 이라 부르며 질문을 하기도 했습니다.
다른 자리도 아니고 목회자 청빙을 위한 인터뷰 석상인데

'사모님'이라는 손쉬운 호칭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잔잔한 충격이었습니다.

어릴 적에 '사모의 사자는 죽을 사자란다' 하던 엄마의 모습이 잊히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피하고만 싶었던 늦깎이 목회자 사모가 된 지 어언 6년.

'당신은 목회자 사모가 아니라 내 아내다.

목회자 사모로 살지 말고 내 아내로 살면서 남편이 나를 사랑하면 된다'

남편이 일관되게 말하지만 '사모'라는 이름이 주는 중압감은 어쩔 수 없습니다.

청년들이 '사모님, 사모님' 하면서 불러주고 다가올 때면
'아, 호칭 자체가 문제가 아니구나. 사모님이란 말이 참 따스하구나'
싶기도 해서 호칭 자체에 대한 과도한 민감성이 줄어든 것은 사실입니다.

아, '사모님'보다는 '사모'라고 해봅시다.

'님' 떼고 '정신실 사모'라 하면 한결 느낌이 살아납니다.

한국교회 안의 독특하고도 비상식적인 메타포를 잘 살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불편한 지점도요.

같은 사모님들 끼리 '정신실사모' 이렇게 부르면 불편하고 의아했습니다.
부하직원은 '김부장님'이라고 부를 것을 상사는 '김부장'하고 부릅니다.

사모님의 '님'은 그때의 '님'과는 다른 '님'이 아닐까 생각하거든요.

차마 목사님 욕을 할 수는 없고(주의 종을 욕하다 벌 받을까봐)

목사님의 여자는 상대적으로 흠잡고 비난하기 딱 좋은 존재일 것 같아요.

그런 용도로 사모가 사용되는 걸 많이 봤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근 20년을 교회에서 언니 동생으로 지내던 후배가 '정신실 사모' 하면서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보고 뒷목을 잡았던 적이 있습니다.

교회의 어떤 사안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한 시점이었습니다.

우리가 함께 먹은 밥이 몇 끼이고, 함께 한 수련회가 몇 번이고,

연애의 격랑에서 밤늦도록 통화하며 울고 웃었던 나날이 얼만데.

소개팅 후 배우자 확신을 위해서 나눈 얘기며 기도가 얼만데

그 모든 일상을 지우는 한 마디.

'정신실 사모'가 현기증 날 정도로 혐오스러웠습니다.

근 20여 년 교회 동생으로 종필아 종필아 했던 남편에겐 더 없이 깍듯해지고,

심지어 과하게 존중하는 태도였으니까요.

살아 있는 풍성한 관계를 지우는 호칭은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것일까요. 

 

이러나 저라나 한국교회 '사모님'이란 용어는

너무 많은 비상식적과 비합리적 기대와 뒤틀린 신앙의 편견들로 얼룩져 있습니다.

우리 청년들이 '사모님'에서 '사'를 빼고 만든 이름 '모님'이란 말을 만들었습니다.  

우리 아그들이 '모님'이라는 보통/고유명사로 불러줄 때 크게 위로가 되었었지요.

새로 가는 교회에서는 '사모님'이라는 호칭을 아예 쓰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이렇게 얼룩진 호칭으로 괜한 굴레를 씌우지 않겠다는 의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남편이 한 사람의 신앙인이 아니라

오직 '목회자'의 정체성만으로 일상을 살아가려 한다면

얼른 목회의 자리를 빨리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과 교회를 함께 망치는 일입ㄴ다.
저 역시 '사모'의 정체성 때문에 기도하고 사랑해야 한다면

'내가 가장 불쌍한 자로구나' 하면서

그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있어야 한다 믿습니다.

 

 

'JP&SS 영혼의 친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애 전환기 가족피정 이야기1_셀카로 미리보기  (13) 2011.12.11
첫 사역  (2) 2011.12.10
사모라는 이름  (9) 2011.11.17
돼지 몰러 나간다  (0) 2011.11.09
금단현상  (0) 2011.11.06
작별인사  (0) 2011.10.17
9 Comments
  • 프로필사진 hs 2011.11.17 13:30 우리 딸은 어떤 생각을 할까? 생각해 봤습니다. ㅋ

    요즘에 무얼 하고 지내시나????????

    참으로 오랜만에 온 거 같네요.
    이일 저일로 차분한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답니다.^^
  • 프로필사진 larinari 2011.11.17 17:12 집사님!(이렇게 불러드릴 날도 얼마 안남았네요^^)
    오랜만에 뵈니 더 반가워요.
    잘 지내시죠?
    저도 요즘에 블로그 관리를 통 못했어요.

    저희는 토요일에 이사라 집안이 정신없네요.

    소희사모님은 정말 어떤 생각을 하실까요?
  • 프로필사진 33클럽 짱마더^^ 2011.11.17 14:31 신실언니~~~~!!! 내가 이렇게 백만년 불러줄께~~~!!!! ㅋㅋㅋ 잘지내 모두? 잘지내......모두..........
  • 프로필사진 larinari 2011.11.17 17:13 땡큐땡큐!!!
    백만년 동안 불러줘.
    이뻐~ 와우... 이뻐!ㅎㅎㅎ
  • 프로필사진 iami 2011.11.17 16:39 신임 교역자 면접을 동료 선배 부교역자들 다섯이 한다는 게 신선하군요.
    더 많이 부대끼면서 함께 일할 사람들이기 때문에 사람을 잘 보고, 잘 고를 것이란
    철학이 느껴지네요.
    그 교회 가선 사람들이 너무 사모 대접 안해줘 서운할지 모르겠는데요.^^
  • 프로필사진 larinari 2011.11.17 17:15 선임 교역자들이 얼마나 치밀하게 인터뷰 준비를 하셨는지 깜짝 놀랐어요. 아직 그 쪽으로 가지 않았는데 교회의 여러 철학들에 잔잔한 위로와 감동을 받게 되네요.
    막상 가면 또 그리움과 부적응으로 힘든 날들을 보내겠지만요.

    코스타 가시는거죠?
    가시기 전에 한 번 뵐라고 했는데 그게 그렇게 안되네요. 건강히 잘 다녀오세요.(부럽부럽부럽부럽.... 저는 결국 이번에도 국제선 뱅기 타보는 프로젝트 실패ㅜㅜㅜㅜㅜ)
  • 프로필사진 mary 2011.11.18 11:25 새로운 곳에서는 그 '사모 혹은 사모님'이라는 이름의 독특하고 비상식적인
    중압감을 떨쳐버리고 정말 새로운 이미지를 갖게 되었으면 좋겠네.
    그 곳은 그게 가능할 것 같은 느낌이야.
    평신도에게도 그런 호칭들이 있쟎아. 나두 최근에야 갖게 된 생각이지만 그 호칭들이
    평신도를 비상식적으로 우쭐거리게도 뒤틀리게도 이중적이게도 부자유스럽게도 만들 수 있다는게 참 슬프더군.
    이건 왠 조화?
    ㄴㄷㅁ엔 이런 호칭이 없다는게 정말 맘에 들거든.
    새로운 친구들, 좋은 동역자들과 행복한 모님의 길을 걷게 될거야^^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11.12.09 12:18 신고 저는 집사님이예요.ㅎㅎㅎㅎ
    담임 목사님 사모님은 권사님이구요.

    신선한데 또 툭툭 사모님 소리가 나오고 적응이 잘 안되더라구요. 생각해보면 상식적인 일인데 당황스러운 일이 한 둘이 아니네요.

    감사해요. 또 새롭게 열릴 만남과 배움에 대해서 기대하며 지낼께요.^^


  • 프로필사진 2019.02.27 14:48 비밀댓글입니다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