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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윤이 학교를 보내고 보니까 대학교육까지 다 받고도 왜들 그렇게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지를  조금 알 듯 하다. 단적으로 말하면 학교에서 내 준 숙제를 하다보면 '글을 위한 글'을 쓸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작년 1년 내내 일기숙제를 하면서 '채윤아! 글씨는 좀 틀려도 돼. 말이 좀 안 돼도 되는데 솔직한 니 생각을 쓰는 게 제일 중요해. 좋은 글은 니 생각이 드러나야 하는 거야' 귀에 딱지가 앉도록 잔소리를 해댔다. 잔소리가 반복되니 이제 좀 의식되나보다.

지난 주말 효행일기 숙제를 하면서 쩔쩔맨다. 이건 1학년 때부터 늘 있었던 숙제였고, 웬만큼 잘 써서 학기말에 효행일기 상도 받아왔었다. 헌데 1학년 때는 '부모님 손 잡아보고 일기 쓰기' 하는 식으로 좀 구체적인 주제를 정해서 숙제가 나왔었다. 헌데 이번 숙제는 '제목 정하고 효행일기 쓰기' 란다. 예) 부모님 어깨 주물러 드리기, 이불 깔아 드리기.....등등 이런 식으로 알림작에 적혀 있었다.
주말 내내 신나게 놀고 주일 저녁에 되어 숙제를 하려고 폈는데 지 생각에도 뜬근없이 엄마 어깨를 주무른다든지 하는 게 좀 그런지 엄청 난감해 했다. 그 찰나 아빠가 재활용 쓰레기 버리러 나가면서 '채윤아! 이것좀 들어 줘.같이 갔다 오자' 하니까 야멜차게 '싫어' 한다. 아빠가 '야! 너 이거 하고 효행일기 쓰면 되잖아' 하니깐 어쩔 수 없이 따라갔다 왔다.

그리고 나서, 일기를 썼는데 대충 잘 쓴 것 같았다. 그런데 한 바닥을 다 써 놓고 '이건 아니란다' 이건 뭔가 '효행일기'가 아니란다. 말하자면 정말 효도도 아니었을 뿐 더러 효도의 마음으로 한 게 아니니까 지가 보기에 주제가 '재활용 쓰레기' 정도가 되면 딱 좋을 일기가 된 것이다. 어떡하냐고 징징거리길래 '괜찮다'고 달래도 마음에 들지 않는 지 다 지워버렸다. '그러면 사실 그대로 써. 니 마음 그대로 쓰면 돼. 꼭 효도를 잘 한 것만 쓰는 게 아니야. 잘못 한 것도 써도 되는거야' 했더니 다시 쓴 일기가 저거다.

효행일기스럽게(?) 써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일기가 못내 맘에 안 들어했지만 엄마 보기에는 이게 앞으로를 위해서는 더 나은 일기라는 생각이다. 애들이 거의 자동적으로 학교에서 원하는 스타일의 글쓰기를 파악하는 것 같다. 그러다보면 너나 할 것 없이 비슷하게 글 쓰고 비슷하게 생각하는 게 되지 않을까 싶다. 난 채윤이가 삶을 담은 글쓰기, 자신에게 정직한 글쓰기를 했으면 좋겠다. . 옆 동네 블로거 용주형제의 블로그 제목이 '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이다. 참 좋은 말이다. 내 글도, 채윤이의 글도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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