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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름이 이야기

삶처럼 글쓰기

larinari 2008. 3. 20.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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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윤이 학교를 보내고 보니까 대학교육까지 다 받고도 왜들 그렇게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지를  조금 알 듯 하다. 단적으로 말하면 학교에서 내 준 숙제를 하다보면 '글을 위한 글'을 쓸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작년 1년 내내 일기숙제를 하면서 '채윤아! 글씨는 좀 틀려도 돼. 말이 좀 안 돼도 되는데 솔직한 니 생각을 쓰는 게 제일 중요해. 좋은 글은 니 생각이 드러나야 하는 거야' 귀에 딱지가 앉도록 잔소리를 해댔다. 잔소리가 반복되니 이제 좀 의식되나보다.

지난 주말 효행일기 숙제를 하면서 쩔쩔맨다. 이건 1학년 때부터 늘 있었던 숙제였고, 웬만큼 잘 써서 학기말에 효행일기 상도 받아왔었다. 헌데 1학년 때는 '부모님 손 잡아보고 일기 쓰기' 하는 식으로 좀 구체적인 주제를 정해서 숙제가 나왔었다. 헌데 이번 숙제는 '제목 정하고 효행일기 쓰기' 란다. 예) 부모님 어깨 주물러 드리기, 이불 깔아 드리기.....등등 이런 식으로 알림작에 적혀 있었다.
주말 내내 신나게 놀고 주일 저녁에 되어 숙제를 하려고 폈는데 지 생각에도 뜬근없이 엄마 어깨를 주무른다든지 하는 게 좀 그런지 엄청 난감해 했다. 그 찰나 아빠가 재활용 쓰레기 버리러 나가면서 '채윤아! 이것좀 들어 줘.같이 갔다 오자' 하니까 야멜차게 '싫어' 한다. 아빠가 '야! 너 이거 하고 효행일기 쓰면 되잖아' 하니깐 어쩔 수 없이 따라갔다 왔다.

그리고 나서, 일기를 썼는데 대충 잘 쓴 것 같았다. 그런데 한 바닥을 다 써 놓고 '이건 아니란다' 이건 뭔가 '효행일기'가 아니란다. 말하자면 정말 효도도 아니었을 뿐 더러 효도의 마음으로 한 게 아니니까 지가 보기에 주제가 '재활용 쓰레기' 정도가 되면 딱 좋을 일기가 된 것이다. 어떡하냐고 징징거리길래 '괜찮다'고 달래도 마음에 들지 않는 지 다 지워버렸다. '그러면 사실 그대로 써. 니 마음 그대로 쓰면 돼. 꼭 효도를 잘 한 것만 쓰는 게 아니야. 잘못 한 것도 써도 되는거야' 했더니 다시 쓴 일기가 저거다.

효행일기스럽게(?) 써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일기가 못내 맘에 안 들어했지만 엄마 보기에는 이게 앞으로를 위해서는 더 나은 일기라는 생각이다. 애들이 거의 자동적으로 학교에서 원하는 스타일의 글쓰기를 파악하는 것 같다. 그러다보면 너나 할 것 없이 비슷하게 글 쓰고 비슷하게 생각하는 게 되지 않을까 싶다. 난 채윤이가 삶을 담은 글쓰기, 자신에게 정직한 글쓰기를 했으면 좋겠다. . 옆 동네 블로거 용주형제의 블로그 제목이 '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이다. 참 좋은 말이다. 내 글도, 채윤이의 글도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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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Comments
  • 프로필사진 신의피리 2008.03.20 21:48 나 담주 설교실습해야되는데, 도통 다른 숙제들 땜에 진척이 없다. 묵상도, 연구도, 이도저도 된 게 업네. 이럴 때 어떤 설교를 해야 하나? 알켜 줘.
  • 프로필사진 larinari 2008.03.21 09:39 대신 환상을 보여주셨잖아.ㅎㅎㅎ
    잘 할 수 있어. 올라오면 내가 잘 들어줄께.
    그러면 정리가 잘 될거야.
  • 프로필사진 BlogIcon 털보 2008.03.20 22:17 그게 어쩔 수 없는 거 같아요.
    속박과 자유를 번갈아 가며 배운다고 할까나.
    속박을 배우고, 그러다 자유를 갈망하면서 속박을 벗어나고... 인생이 그런 사이클의 반복인 듯.
    사회가 원하는 걸 하다가 내가 원하는 걸 갈망하며 그걸 벗어나고, 그러다 보면 또 사회와 어느 정도 절충하게 되고, 그러다 답답하면 또 자유롭게 나가고... 에구, 인생살기 힘들다, 초딩 때부터.
  • 프로필사진 larinari 2008.03.21 09:41 그 아슬아슬한 경계를 넘나들면서 자기 생각, 자기 글이 만들어지는 거겠죠? 어느 속박과 자유 어느 한 쪽에 자리를 깔고 앉아 일어날 줄 모르는 것보다는 긴장 속에 넘나드는 좀 피곤한 인생에 걸어야겠어요.^^
  • 프로필사진 BlogIcon 해송 2008.03.20 22:26 신고 채윤이가 힘들여 쓴 글.
    난 너무 재밌고 잘 쓴단 생각이 들어요.
    엄마의 가르침대로 솔직한 마음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 늘 웃음을 머금게 하거든요.
    아주 구여운 느낌도 들고....^^
  • 프로필사진 larinari 2008.03.21 09:42 어디 편찮으신가 했어요. 제일 바쁘신 때로군요.
    그러고보니 바쁘실만 해요.ㅎㅎㅎ
    건강 유의하시면서 일하세요~^^
  • 프로필사진 BlogIcon ♧ forest 2008.03.21 00:08 저 효행일기에 검자 표시있는게 아주 맘에 안드네요.
    읽어보지도 않은 것 같은 느낌.

    아이의 갈등에 대해 한마디 해주면 더 좋았을텐데...
    "채윤이가 아주 솔직하게 썼네. 선생님은 솔직한 내 마음을 알게 되서 그게 더 기쁘단다"라고.
  • 프로필사진 larinari 2008.03.21 09:44 제 말이요. 작년 1년 동안 채윤이가 일기를 그렇게 열심히 이쁘게 썼는데 선생님이 한 마디를 안 해주시더라고요.

    저희 올케 언니가 초등학교 선생님인데 주로 저학년만 맡아요. 일기교육을 젤 중요하게 생각한다면서 매일 매일 일기장 검사를 하고 모든 애들한테 메모를 남겨준다는 거예요. 다음 날 또 써와야 하니까 애들이 학교 있는 동안 검사를 해야하고, 그러다보니 쉬는 시간, 점심시간도 없이 검사를 해야한다네요.
    어쩌다 한 번 선생님의 메모가 빠지면 애들이 '선생님! 왜 내 일기장에 편지 안 써줘요?' 하고 따지기도 한대요. 정말 부러웠어요. 또 이게 보통일이 아니겠구나 싶기도 하구요.

    작년 1년 내내 제가 그런 메모 한 마디 기다리다가 지쳐버렸죠.^^;
  • 프로필사진 BlogIcon 김용주 2008.03.25 12:28 복상 연재 들어가면서 꼭지 제목 정하느라 고심하다가 연재글의 성격마저 바뀌었지요. 거품이 좀 빠졌다고나 할까요. 이렇게 동네방네 소문내시면 제 삶과 글이 더 고달파집니다.ㅜㅜ
  • 프로필사진 larinari 2008.03.25 20:39 '글처럼 살기'를 지대로 하면서 글을 시작하셨네요.^^
    필자가 고달플수록 독자들은 더 좋은 글을 보게 되는 거?
    ㅎㅎㅎ
    더 소문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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