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휴지걸이를 떼내고 얼기설기 수제품 휴지걸이로 교체.

심심해서 그냥 만들어봤다고 하는 현승이 작품입니다.

심심해서? 일 없으면 발바닥이나 긁어, 라고 말씀하시던 우리 엄마 목소리가 들리는데.

차마 그 목소릴 들려주지 못했고.

저게 뭐냐, 없어 보이게, 라고도 하지 못했고.

그냥 웃으면서 지켜보고 있노라니 여러 생각이 납니다.

 

현승이의 손길에서 아버님의 향취가 느껴집니다.

아버님은 수선의 손을 가지고 계셨고 뭐든지 고치셨지만 미학에는 도통 관심이 없으셨지요.

예를 들면,

우리 신혼집이 구옥이긴 했어도 당시로서는 흔치 않았던 샛노랑으로 도배한 예쁜 집이었습니다.

여름이 와서 현관에 발을 걸어야 했는데

심사숙고 끝에 파스텔톤의 야리야리한, 보기만 해도 왈랑왈랑 신혼 분위기 물씬의 발을 사서 걸었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길이가 짧네요.

그래도 뭐 예쁘니까.

어느 날 퇴근하고 돌아와보니

아버님 수선의 손이 다녀가셨나봅니다.

천도 아니고 폴리에스테르도 아닌 그 무엇이 야리야리 발 아래 덧대어 있는 겁니다.

창고에서 찾아내셨을 법한 자재를 손바느질로 얼기설기.......

아~번~니~~~~~임.

 

현승이가 서너 살때 하늘색 오리털 파카를 입었었습니다.

하도 침을 흘려대서 앞자락이 얼룩얼룩하긴 했지만 예쁜 파카였습니다.

그 안에 쏙 들아가서 침 질질 흘리던 오통통한 내 너구리가 그리워지네요.

파카의 지퍼가 고장났는데.....

또 어느 날 퇴근해보니. (퇴근이 문제였나? 당시 퇴근을 없앴어야 했나?)

하늘색 파카에 빨간색 지퍼가 한 땀 한 땀 흰색 실로 바느질 되어 있는 겁니다.

얼기설기 손바느질 말이죠.

아~번~님~~~~~~임.

 

그땐 참 속상했던 일인데 이렇게 그리움과 그리움으로 추억하게 될 줄이야.

피는 못 속인다는 말 이상이 느낌입니다.

한 사람의 이 세상을 다녀가고, 

삶의 방식과 향기가 그가 사랑하던 사람에게 흔적처럼 남겨진다는 것.

 

벚꽃이 피기 시작할 때니 다시 이별의 계절입니다.

하남 신안아파트 옆 개천길에 볒꽃이 흐드러지던 날 아버님이 암선고를 받으셨지요.

퇴원하시는 아버님이 뒷자석에 계신데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며 운전하다

옆에 앉아 시누이라 하릴없이 벚꽃 얘길 했었습니다.

 

수선의 손 아버님 돌아가신 이후로 주방의 칼이 늘 성이 차지 않습니다.

칼은 정말 기똥차게 갈아주셨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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