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에서 더블베이스를 전공하고 있는 사촌형아의 정기연주회가 성남아트센터에서 있었습니다. 성남 아트 센터는 딱 작년 이맘 때 현승이에게 슬픈 기억을 남긴 장소지요. 우리나라 클래식 음악회는 대부분 8세 이상 입장가 입니다. 이 규정이 여섯 살 현승이 연주회 내내 로비에서 몸을 꼬며, 자판기 캔음료수나 마시며 눈물을 머금고 기다려야 했습니다.
'얘는 으른(어른) 같은 애라 들어가도 꼼짝 않고 있을 애예요' 하시며 화나 나신 할아버지 할머니 스텝들과 싸워보기도 했지만 결국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럴 때마다 할아버지는 '야, 현승아. 너 몇 살이니 하면 여덟 살이라고 대답해 알았지?' 하십니다.ㅋㅋㅋ

암튼, 작년의 아픈 기억을 간직한 채 어제 또 형아 학교의 정기연주회에 가게 되었습니다. 며칠 전부터 할아버지는 '이번에는 컸으니까 여덟 살이라고 하고 들어가면 돼' 하셨습니다. 두 아이를 데리고 가는 차 안에서 엄마도 살짝 백색 거짓말을 하면 어떨까 싶어서 현승이가 '엄마, 나 못 들어가게 하면 어떻게 해? 누구하고 밖에 있어?' '하길래... '음... 거짓말을 하면 안되지만 현승이는 들어가서 떠들지 않고 잘 들을 수 있으니까 그냥 여덟 살이라고 할까?' 했더니 '거짓말이잖아. 거짓말은 안되잖아. 나 그냥 밖에 있을거야' 합니다. 그래서 알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창 밖을 바라보던 상대윤리 누나가 논쟁의 시동을 걸기 시작합니다.

현승아! 너가 여덟 살이라고 하는 거는 거짓말이긴 하지만 속이는 거짓말을 아니잖아.
(이 때 운전하던 엄마가 '속이는 건 속이는 거지' 합니다)
아, 속이는 거긴 하지만 그 사람을 나쁘게 하는 거짓말을 아니잖아. 니가 밖에 남아 있으면 할머니나 할아버지나 고모나 누가 너랑 같이 있어야 하니까 그냥 여덟 살이라고 하고 들어가자. 그럼 모두 볼 수 있잖아.

(느리고 어눌하고 차분한 말투로)싫어. 거짓말이잖아

야, 거짓말이긴 하지만 나쁘게 하는 건 아니잖아. 그냥 여덟 살이라고 하자.

(처음과 같은 톤으로) 그래도 거짓말은 나쁘잖아.

(살짝 스팀이 들어오기 시작) 야, 니가 안 들어가면 어른 중에 한 사람이 못 들어가는데 그건 너무 그렇잖아. 그리고 일곱 살은 못 들어가게 하는 건 떠들까봐 그러는데 너는 안 떠들고 잘 들을 수 있잖아. 그러니까 여덟 살이라고 해!

(변함없는 톤) 싫어. 왜 자꾸 거짓말을 시켜.

(한 톤 높아지면서) 야, 김현승. 너 할머니 할아버지나 고모를 좀 생각해봐. 외손주가! 아들이 연주회를 하는데 너 때문에 밖에서 못 들어가고 있는 사람 마음을 생각해 보란말얏! 너만 생각하냐? 진짜. 김현승....씨....

(아까랑 같지만 누나의 흥분으로 한결 차분하게 느껴지는 톤으로) 거짓말은 나쁘잖아. 그리고 왜 자꾸 화를 내고 그래?

(완전 복장 터지는 톤으로) 너가 자꾸 말을 못 알아듣고, 말대꾸 하니깐 내가 짜증이 나고 화가 나고 그러잖아. 그러니깐 여덟 살이라고 하면 우리 모두 편하잖아~~~~!

(변함없는 톤) 거짓말은 나쁜거잖아.

(완전 뚜껑 열리기 직전) 아나, 얘 말귀를 못 알아들어. 엄마, 누구 말이 맞는거야? 말좀 해봐.

(참고로 엄마는 누구편도 들 수 없는 입장이고, 현승이 손을 들어줘야겠지만 심정적으로는 채윤이가 이겼으면 좋겠고... 그러나 내 손에 피 묻히기는 싫은 아주 비겁한 모드)
음.... 너희 둘 다 일리가 있어. ^^;;;

협상 결렬!을 선언하는 한 마디.
(아주 열받지만 포기하는 듯한 말투로, 그러나 한 마디 한 마디 분노를 가득 담아서)
그래, 김현승 너는 그냥 끝날 때까지 밖에서 혼자 있어라.

(마지막까지 같은 톤) 그래. 알았어. 혼자는 안 있고 할아버지랑 있을거야.

상대윤리양, 너무 빨리 흥분하신 관계로 절대윤리군의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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