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 지도자 과정을 1박 2일 마침 피정과 함께 마쳤다. 작년 11월 말의 계획이 방역 상황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다. 더는 미룰 수 없어서 모두 하루 이틀 전에 무증상자 검사를 받고 코로나 바이러스 음성 확인을 받고 모였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이 번거로움과 불편함조차 기도라 여기며 실행했다. 딱 일주일 전 주말의 일이다. 그러고는 무기력하게 한 주를 보냈다. 안 자던 낮잠까지 자면서 나른하고 몽롱한 시간이었다. 약간의 우울감까지 있어서 몸과 마음이 바닥에 딱 붙어 있었던 것 같다. 

 

연구소 단톡에 마음을 나누다 보니 괜한 무기력과 우울이 아니었다. 지도자 과정 1년을 위해서 전력질주 했던 것이다. 결승 테이프를 끊고 나서는 운동장 바닥에 드러누워 꼼짝 못 하는 시간 같은 것이었다. 집중하여 다 쏟아붓고 숨을 고르는 시간. 오늘 아침에야 몸과 마음이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이다. 지도자 과정 1년을 1박 2일 여정에 담아 나름대로 진한 시간을 보냈다. 본질을 생각하는 의미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 했고, 재미와 즐거움 역시 포기하지 않으려 돈과 에너지를 아끼지 않았다. 그 행위 자체가 목적인 것, 지금 하는 행위 그것 외에 목적이 없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가 맞다면 행복한 시간을 보낸 것이다. 

 

 

 

연구소 2년은 공동체, 성장하는 공동체, 여성 공동체 가능성의 실험이다. 연구원 다섯 명은 5벤저스다, 어벤저스다. 늘 새로운 아이디어로 어제의 생각이 헌 것이 되는 게 내 장점이자 병인데. 그 새로운 생각을 구현해내는 사람들이 네 명의 연구원이다. 연구소와 연결된 사람들을 물질이든 영적으로든 꼭 필요한 방법으로 돕겠다는 마음 하나로 아이디어가 샘솟고, 아이디어는 금세 프로그램이 되고 작품이 된다. 1박 2일 피정은 그 결정체였다. 그래서 누린 순간순간의 기쁨과 감동은 말로 풀어낼 수 없다. 그 순간 자체가 목적이었기에 충분히 누린 것으로 족하다. 

 

페미니스트 심리학자인 앤 윌슨 섀프는 우리가 사는 사회에 이름 붙이기를 '중독 사회'라 하였다. 개별 알코올 중독자나 여타 중독 행위자가 드러내는 과정과 특성을 고스란히 지닌다는 뜻이다. 지금 이 시스템 속에서 권력이나 영향력이 주로 (백인) 남성에 의해 행해지기 때문 '백인 남성 시스템'이라고도 부른다. 우리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배워왔고, 동참하고 있는 시스템이다. 가부장적 시스템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규칙과 답을 정하는 더 높은 힘과 권력이 있다. 완벽하게 논리적으로 합리적이며 객관적인 것은 가능하며 백인 남성 시스템은 그것을 알고 있다는 신화가 전제된다. 모든 중독이 동반 의존자라는 가동력자가 존재하는 것처럼 백인 남성 시스템도 '반동 여성 시스템'과 함께 간다. 앤의 제시하는 대안은 백인 남성 - 반동 여성이 아닌 '생동하는 과정 시스템'이라는 제3의 길이다. 답이 있고, 설명하고 가르치는 자가 있으며, 통제가 가능한 개인과 사회가 아닌 '과정'을 사는 개인과 사회이다.

 

처음 책으로 읽으면서 아하, 참 좋구나! 했지만, 구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연구소와 지도자 과정 여정 속에서 가능성을 보게된 것이다. 백인 남성 시스템에 대항하는 방식이 아니다. 생동하는 과정 시스템을 '신생 여성 시스템'이라고 했는데, 나는 그저 '전혀 새로운 접근'이라고 읽는다. 주류가 되지 못한 여성적인 것, 여성적인 방식 말이다. 옳고 그름, 맞고 틀림, 정통과 이단, 나와 너를 가르고, 잘하고 못함을 서열화하는 기존의 방식이 아니니 얼마나 생소한가. 생소하여 설명 또한 불가능하지만, 가능성을 경험한 것만은 분명하다.

 

역설적이게도 가능성 만큼이나 불가능성도 체감했다. 경험해보지 않은 방식이기 때문에 믿을 수 없는 것이다. 아니 믿고 싶지만 믿기 위해서도 최소한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아프게 마주한다. 답을 정하는 사람이 있고, 따르기만 하면 되는 통제 가능한 방식은 얼마나 편하고 경제적인가. 자본주의와 성과주의, 아니 그냥 백인 남성 시스템에 길들여진 우리에게 자기 힘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하나님 형상을 담은 나, 이미 수용되었다는 것을 수용하는 것은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 것인지.

 

지도자 과정은 '상처 입은 치유자' 양성 과정이다. '상처 입은 치유자란, 자기 치유와 성장 여정을 이웃을 위해 내어 주는 사람입니다.'라고 정의하고 시작했었다. 결과가 아닌 과정, 즉 여정을 내어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갈수록 새롭게 체험한다. 메이크업 끝낸 얼굴이 아니라 시작도 하기 전의 맨 얼굴을, 짝짝이 눈썹이 조화로와지는 것과 생기 없던 피부가 물광이 되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줘야 하는 '과정' 말이다. 그래서 상처 입은 치유자는 상처 위에 또 새로운 상처를 더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도 시작할 사람이 누구랴.  

 

 

 

같은 재료로 같은 작품을 만들었는데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이것이 생동하는 과정 시스템의 아름다움이다. 내가 내 마음에 심은 단 하나의 씨앗이 있을 뿐이다. 그것은 그 자체로 옳고, 맞고, 선하고, 아름답다. 여섯 사람이 여섯 개의 작품을 만들었다. '상처 입은 치유자' 여섯이 여섯 개의 길을 냈다. 우리는 모두 과정 위에 있었다. 과정의 순간순간은 다른 것을 목적하지 않았다. 그러니 행복했다. 여섯 개의 마음에 심긴 씨앗은 전혀 다른 여섯 개의 나무나 꽃으로 자랄 것이다. 그것을 믿는다. 나도, 이분들과의 연결로 또 하나의 씨앗을 심었다. 이 역시 또 하나의 생명이 될 것이다.  

'정신실의 내적여정'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벼랑 끝에 서 있는  (2) 2021.03.24
상처 입은 치유자들 2nd  (0) 2021.03.21
상처 입은 치유자들 1st  (0) 2021.03.06
소설, 소울  (2) 2021.02.12
아무것도 너를  (0) 2021.01.18
중년을 위한 치유 글쓰기  (1) 2021.01.0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