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부분에 대해선 나도 할 말이 있네.

올 초 였을거야.
정은이가 아주 어렸을 적 가슴에 담고 있는 한을 토로하더군.
엄마는 맨날 "나는 객관적으로 말하는 거야"라고 하면서
늘 다른 애들 편만 들었다고.
창인이는 가만 두고 늘 나만 잘못했다고 혼냈다고.
엄마 아빠는 늘 내 편이 아니었다고.
그러면서 우는거야.
물론 그날 사소한 일로 아무 꾸중을 들었거야, 정은이가.

충격이었지.
어떤 상황 하에서 김영신은 늘 엄마로써가 아니라 객관적인 관찰자로
판단을 하려 했고,
그렇게 관찰자로서 판단을 한 상황에서 더 나아가
상대방이 잘못을 했는데도 아이에게 꾸중을 하니까
아이는 이중 3중의 압박을 받았던 것 같아.

다 큰 녀석이 엉엉 울면서 그 옛날 가슴에 맺혔던 이야기를
하는데
한 편으론 늦게나마 아픔을 고백하는 딸이 고맙기도 했지만
그 보다는 더 마음이 아팠어.


아이에게 양보를 가르치는 것은 언제나 옳지.
그런 면에서는 영신이나 신실이나 유철이 비슷한 것 같아.
그러나 나는 반성하게 돼.
유치원이나 초등학생 꼬맹이에게
나의 방법은 옳았나.

아주 어린 아이에게 엄마 아빠가 객관적일 뿐 아니라
늘 남을 생각하는 것을 먼저 가르쳐 주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먼저 어떤 상황에서도 엄마와 아빠가 자기의 기댈 언덕이란 사실을 알려주는 게 옳은가.

나는 양쪽 모두에 위험은 상존한다고 생각해.
양보를 가르치려다 아이에게 깊은 상처를 남겨
부모에 대한 신뢰에 깊은 금을 가게 할 수 있는 것도 위험하고
어떤 경우에든 자기 편을 드는 것도 요즘 치맛바람 휘날리는
역겹고 역겨운 아줌마들의 역겨운 자식을 만들 수 있다는 것도 위험하고.

잘 모르겠어.
과연 정은이 좀 더 크면 그 어린 시절의 상처가
진정한 부모의 자기를 향한 사랑이고, 더 큰 아이로 키우기 위한
부모의 애정이었다고 바뀔 수 있을까?
정은이의 경우는 잘 모르겠고..
채윤이의 경우는 신실이 정해 놓은 기준보다 좀 더 엄마가 낮아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보지만...
그 또한 잘 모르겠어.
내 생각이 올바른 것인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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