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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사람

선생이고 싶(지 않)다

larinari 2015.05.18 11:30

 

 

 

"지금껏 살아온 삶을 돌이켜보며 사랑성장을 체험했던 기억(좋았던 때든지 어려웠던 때든지)을 돌아보십시오. 내게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고 성장하도록 도와준 사람을 떠올려보고 나눠보겠습니다."

 

에니어그램 집단여정 중에 나눔을 위해 던지는 질문 중 하나이다. 우리가 살아가며 '혼자'라는 외로움에 자주 빠져들곤 하지만 대개는 결정적인 사람 한 둘은 가지고 있다. 상황이 좋을 때 함께 했던 사람일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지금 지속되는 만남일 수도, 과거의 만남일 수도 있다. 이 질문을 던지며 내가 기대하는 바는 자신의 인생여정에서 '사랑'의 흔적을 찾게 되는 것이다. 상처만 받고 살았다고 여기지만 잘 생각해보면 받아들여진 경험이 있다. 질문을 받은 사람들은 예외없이 바로 그 사람을 떠올린다. 그리고 한 사람씩 그 이야기를 나눌 때면 절로 가슴이 뭉클해진다. 뭉클하여 울컥하다 또 다른 질문에 다다르기도 한다.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인 적이 있는가?' 그리고 소망한다.'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고 싶다'

 

사랑을 일깨워줬던 그 사람들을 찾아 일일이 인터뷰 해보지 않았지만 재미있는 것은 수혜자와 수여자의 기억이 다르다는 것이다. 사랑을 받았다고 사람은 기억하는데 대개 준 사람은 '내가 그때 그런 말을 했어? 기억이 잘 안나는 거 보니 깊이 생각했던 것 같진 않은데... 내가 그때 밥을 사줬어?' 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번 세미나에선 함께 참석한 두 분이 저 대사를 딱 읊어주셨다. 이 질문을 통해 확인하고자 하는 또 하나의 메시지이다. 사랑은 받는 사람이 '사랑'으로 느껴야 사랑이다. 준 사람이 '내가 너한테 어떻게 해줬는데!' 라고 울부짖어 봐야 소용이 없다. 대체로 '어떻게 해줬는데!!!!' 하며 준 것들은 공포의 배려이기 마련이다. 사랑과 배려로 '통제'하겠다는 (본인도 모르는) 불순물이 섞여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은 자연스럽게 흘러 넘쳐서 가 닿는 것이지 쥐어 짜내서 주는 것일 수 없다. (이 시점에서 온전히 자기 자신일 때의 이타심, 또는 융의 '자발적 희생' 원형에 대한 지상 강의를 늘어놓고 싶으나 일단 꾹 참고!)

 

글이나 강의, 대화를 통해 남다른 통찰력을 발휘하고 싶었고, 그것으로 사람을 변화시키고 말겠다는 꿈(도 야무져!)이 있었다. 그 꿈에 대한 집착이 클수록 불안했다. 누가 나보다 더 통찰력 있는 강의를 하나, 글을 쓰나 이글거리는 경쟁심과 질투로 혼자 가슴앓이를 하기도 했다(한다). 집착인데, 집착인 줄 아는데 잘 내려놓지 못했었다(못하고 있다). 다행히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사람들이, 내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있어 야무진 꿈은 자주 아작나고 있다. 강의든 글이든 상담이든 사랑이든 그렇게 힘이 빡 들어간 채로 제공하는 것은 자기만족일 뿐이라는 것을 아프게 배우는 중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선생이 되고 싶은 욕망은 은밀히 꿈틀댄다. 사랑이든, 가르침이든 내 그릇에 가득차서 넘쳐 흘러 넘치는 것만이 진정한 영향력이 될 수 있다고 내 입으로 강의하면서 내 마음은 그 반대로 흘러가는 것이다. 억압된 욕망은 과도한 자기비판의 칼날로 대체되어 이중 삼중으로 나를 괴롭힌다. '나만이 답을 알고 있는 태도로 강의한  건 아닐까. 내가 말하는 것을 다 살아내고 있는 체 하지는 않았나' '적게 듣고 많이 말한 것은 아닐까. 들어주면 될 것을, 너무 가르친 것은 아닌가' '고도의 교만을 겸손과 솔직함으로 위장하는 글재주를 부리는 것은 아닐까.'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날 건져내랴.  

 

지나친 겸손도 아니고 과도한 자기확신도 아닌 절묘하여 아름다운 지점에 설 수 있으면 좋겠다. 지난 금요일 우리 동네를 경유해서 출퇴근 하는 D와 아예 동네 주민인 Y가 지나가 들른 느낌으로 집에 왔다. 얘들이 손에 뭘 하나 씩 들고 왔다. 떡볶이 앞에 놓고 수다수다를 했다. 돌아가고 나서 들고 온 예쁜 꽃바구니를 들여다보다 생각하니 작년 이맘 때도 만나서 꽃다발을 받았었다. 아, 얘들이 스승의 날을 생각하고 온 거구나. 작년에도 올해도 우연히 그냥 놀러온 게 아니었구나. 선생이고픈 욕망을 용케도 잘 누르고 있는데 떡하니 받은 꽃바구니에 대놓고 뭉클했다. 마주앉아 수다를 떨다보니 몇 년 전 주일 파리바게뜨에서 딱 이 멤버로 앉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요원한, 또는 어려운 연애 얘길 했었다. 허허. 어느 새 그녀들은 예비엄마, 예비신부가 되어 있다. 어쩌다 이젠 아이를 키우는 얘기를 하염없이 늘어 놓았다. 역시나 가르치는 영이 충만한 나는 (게다가 기분까지 들떠서) 적게 듣고 많이 주절거렸다. 몇 년 전 파리바게뜨에서 커피를 마시던 날 우리가 우연히 만났었단다. 둘이 걸어가는데 내가 차 타고 지나가다 '야, 타!' 했단다. 그런 거다. 애쓰지 않고 만나고 그렇게 만나서는 그때 그때 살아가는 얘기를 하는 거다. 만남의 기회가 주어질 때 반갑게 마음을 나누는 거다. 그게 가르침이고 배움이고 사랑이다. 암튼, 고맙다.

 

(질투의 댓글이 달리지 않을까, 은근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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