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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실의 내적여정

성격은 부끄러운 게 아니야

larinari 2019. 8. 25. 16:48



내 입으로 수십 수백 번 말함으로, 수십 수백 번 발설한 말로 내가 바뀌는 경우가 있다. 그 경우는 마이크 잡는 강사가 얻는 가장 소중한 선물이기도 하다.  내 입으로 수백 수천 번 하는 멋진 말이 다른 사람의 귀와 마음을 훔칠지언정 나를 바꾸지 않는다면 그것처럼 독이 되는 것이 있을까 싶기도 한데. 이런 경우는 마이크 잡는 사람을 지옥으로 보내는 치명적인 특급열차이다. 그런 의미로 강의를 마치고 집에 오면 늘 조금씩 두렵고, 조금 공허한 마음이 되곤한다. 특급열차가 눈 앞에서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십 수백 번 발설함으로 조금 나아진 내 존재의 구석이 있으니 위안 삼아 떠벌여본다. 지난 주 연구소가 기획한 첫 번째 특강으로 [성격유형 사용법 : 신앙 여정에서]라는 이름의 강의를 했다. 오래 전부터 마음에 있던 말들이었다. MBTI나 에니어그램이 개인의 성장은 물론이거니와 신앙여정에서 아주 중요한 이정표 역할을 함에도 잘못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는 생각이었다. 에니어그램 내적여정 세미나를 진행하면서 가끔 '모 선교단체에서 가르친 에니어그램으로 상처 받은 분들 에프터 서비스를 우리 연구소에서 하는 거냐' 농담을 하기도 한다. 


선물이 되는 지점, 독이 되는 지점의 경계를 오래 고민해왔고, 그 부분을 나누려는 강의였는데 생각 만큼 잘 전달하진 못한 것 같다. 그러나 적어도 삶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는 것으로 자위고 있다. MBTI와 에니어그램을 몰랐으면 지금의 가 없을 것 같다. MBTI와 에니어그램을 몰랐다면 이렇게나 다른 남편과 화평하며, 아니 오히려 다름을 기뻐하며 20여 년 살 수 있었을까. (MBTI는 결혼하고 풀타임 일하면서 직장서 제대로 알게 되어 전문과정 교육을 남편과 함께 받았다.) 이런 도구들이 아니었다면 나도 모르는 내 성격이 가진 어두움이 아이들을 덮치고 옭아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을까. (물론 지금도 온전히 알아차리고 있는 건 아니다.)


지난 주일에 꽃다운 친구들 가족 모임이 집에서 있었다. 1기 가족의 모임이었다. 그러니까 채윤이는 1기, 현승이는 현재 4기로 일 년의 청소년 방학을 누렸고 누리고 있다. 1기 모임이지만 공교롭게도 '꽃친  다둥이 가족'이라 불리는 모임이었다. 남매, 자매가 둘 다 꽃친에 참여한 가족들이다. 부모와 함께 온 아이들 여섯은 모두 1기, 3기, 4기 꽃치너들이었다. 현승이와 올해 함께 하는 4기 친구도 있다는 것. 어른은 어른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각각 신이 났다. 그 중 특히 1기 채윤이는 우리 집에 처음으로 이 가족들을 초대한다는 것에 한참 전부터 들떠있었다.


문제는 현승이, 아니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문제인 현승이다. 저녁을 먹는데 아이들고 어른들이고 낄낄깔깔인데 유일하게 긴장한 표정의 현승이. 꽃친 4기에서 별칭 '머쓱타드'로 불리고 있다. 언제 어디서든 뭔가 어색하고 머쓱한 아이이다. 안다. 낯선 곳은 너무 낯설고, 긴장되는 곳에선 너무 긴장 되며 주목받는 것의 부담이 너무 부담인 아이이다. 그래도 그럴 줄은 몰랐다. 저녁 먹고 아이들은 채윤이 방에 몰려가 떠고 난리가 났는데 뒷정리를 하는 내게 다가왔다. (소곤소곤)"엄마, 나 밖에 나가도 돼? 방에 못 들어가겠어. 제발." 결국 음식 쓰레기 봉지 하나 들고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사라졌다. 


현승의 부재를 확인한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다들 놀라고 살짝 당황. 이 정도로 '머쓱타드'였나. 걱정들을 하시는데 현승이 걱정도 있는 것 같고 부모 걱정도 하셨다. 엄마 아빠 괜찮냐? 다행히 엄마 아빠는 괜찮다. 조금 속상한 면이 있지만, 현승가 그렇게 이상한 애가 아니라는 변명을 할까 하는 마음일 땐 심장박동도 빨라지고 한 구석 저릿하기도 했지만 괜찮다. 아파트 주변을 혼자 빙빙 돌 생각을 하면 짠하기도 했지만. 결국 손님들 출발하신 후 혼자 집으로 걸어들어 오는 걸 목격 당하고 말았다. 


외향형 엄마로서, 사람 앞에 서서 말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은, 아니 잘만 해내면 에너지 팍팍 받는 외향형 엄마로 내향형 아들을 본다. 내게 가장 자연스러운 에너지 흐름과 정반대로 방향이라면 내향형 아들 마음이 어떨지 조금 이해가 된다. 닦달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생겨먹은 제 마음의 모양을 받아들이고 좋아할 때 변화도 가능하다고 내 입으로 말하고 다니니까, 내 말에 내가 설득된 면도 있다. 남편이 말한다. "속상하긴 하지만 나는 현승이 이해가 돼." 내향형 아빠로서 충분히 이해 할 것이다. "나도 그래, 나도 이해해 나도 그런 적 있어." 외향형이지만 감정형이 나도 어쩐지 현승이 같이 굴었던 청소년 시절이 있었던 것 같다. 감정형으로서 사람과 관계에 대한 신경쓰임이 늘 과다하여 오히려 다가가지 못하고, 숨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 저런 내 생긴 모양을 부끄러워 할수록 아이에게서 발견되는 내 모습이 화가 나고 두 배로 수치스럽곤 했는데. 나를 더 많이 닮은 채윤이를 볼 때도 비슷한 매커니즘이었다. MBTI를 알지 못했다면, 에니어그램을 알지 못했다면 그 매커니즘을 보는 눈을 얻기 어려웠을 것이다. 혹 가지게 된다해도 시간이 더, 더, 더 많이 걸렸을 것이다. 머쓱타드 현승이가 꽃친 쉼표식에서 '덕밍아웃'이라는 덕질 공개를 했다. 3년 전에 채윤이도 똑같은 것을 했었는데, 발표하는 태도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현승에게는 저 앞 마이크를 들고 선 건 자체가 대단한 용기이며 도전임을 안다. 


현승이도, 채윤이도, 종필도 나도 내 생긴 마음의 모양을 부끄러워 하지 않을 수 있게 해 준 MBTI, 에니어그램. 

참 고마운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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