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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토요일 남편과 함께 가야하는 모임이 있었습니다. 점심식사 모임인데 채윤이가 학교에 가는 토요일이었습니다. 정확히 시간이 정해지지 않았고 애들을 데리고 가는 건지 아닌지를 몰라서 남편에게 전화로 물었습니다. 남편이 시큰둥했습니다. 뭐 나중에 알아보겠다는 식이었습니다. 통화할 때가 금요일이었는데 당장 내일인데 언제 알아보겠다는건지.... 전화로다가 짜증을 냈습니다. '나는 애들을 어떻게 할 지 대책을 세워야 한다. 채윤이를 수민네 부탁을 할 지, 아니면 기다려서 데려갈 지 결정을 해야 미리 부탁을 할 수 있는 거 아니냐' 하고는 서로 기분 나쁘게 전화를 끊었습니다.

사실 남편은 그 시간 동료들이 수업 마치고 다들 집으로 돌아간 시간 학교에 남아 과제와 학교 신문 만드는 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순간적으로 마음에서 확 올라오는 뜨거운 것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전화를 끊고 집에서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일단 확~ 짜증내는 방식은 나나 남편을 모두 기분 나쁘게 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확~ 짜증이 난 건 분명한 일이었습니다. 남편의 상황도 모르는 게 아니면서 그렇게 짜증이 날 일이었나? '여보! 정확하게 좀 알아봐줘요' 할 수는 없는 일이었나 하고 생각을 해봤습니다.

가만히 생각하니 남편에게 난 화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여러 (밝힐 수 없는) 이유로 채윤이를 그 모임에 데려가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실은 채윤이뿐 아니라 저 자신도 썩 즐거운 모임이 아니었습니다. 탁 까놓고 말해서 채윤이를 데려가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채윤이를 데려가고 싶지 않은 마음도, 그 이유도 마치 제 마음 밖에 나가서 들여다 보듯 객관적으로 보였습니다. 남편에게 시간을 정확히 알아봐달라며 딴지 걸기 시작한 건 단지 시간을 알아봐 달라는 게 아니라 '내가 낼 모임때매 불편하니 내 맘을 알아달라. 당신 때문에 가야하는 모임이니 나한테 조금이라도 미안하게 생각해라' 이것이었던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통화를 할 수 있겠냐고. 전화가 왔길래 그랬습니다. '여보! 아까 미안해. 실은 내가 채윤이를 거기 데려가고 싶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애. 아까는 잘 몰랐는데 지금 알았어. 채윤이는 수민네 부탁하고 안 데려가는 걸로 할께. 마음 편히 숙제하고 이따가 봐'

전화를 끊고 한참있다 남편이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아까 전화해줘서 고마워' 하고요. 그리고 저녁에 올라와서 그랬습니다. '정신실 정말 많이 발전했다' 그 말에 참 고무가 되었습니다. 남편은 바로 전화를 해서 사과한 용기를 칭찬한 것이겠지만 이 에피소드가 기분좋게 기억이 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습니다. 제가 제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아주 짧아졌다는 것입니다. 확~ 올라온 짜증의 분명한 이유를 아는데 걸리는 시간이 짧아지고, 그렇다면 그로 인해서 불필요하게 피해를 입은 남편에게 내 상황을 설명하고 사과하는 것도 아주 자연스럽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이런 게 잘 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제 감정을 객관화하는 훈련에 시간이 참 많이 걸렸습니다. 요즘에 겨우 이 정도 하고 있는 것이지요. 결혼 초만 해도 이런 식으로 갈등이 유발되었다 하면(주로 제 편에서 이런 식의 갈등제공을 하곤했죠^^;;) 내가 잘못했든 어쨌든간에 말 안하고 버티기. 최대한 심리적으로 남편을 고립시켜서 괴롭히기. 가장 최악의 경우에 관한 상상의 나래를 펴기....등등의 원초적 본능대로 해결했다죠. 정말 남편의 맘은 커녕 제 맘도 제대로 모르고 살았었어요. 내가 느끼는 걸 잘 인식하는 거 참 중요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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