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극장을 통째로 빌려서 스타워지 에니메시션을 보고난 이후.
아빠를 시작으로 우리 집에 스타워즈 중독 바이러스가 돌아다니더니 급기야 네 식구 모두 감염되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완전 넷 다 스타워즈 폐인이 되다.

스타워즈가 처음 나왔던 1977년은 물론이고 그 이후에도 성인이 될 때까지 영화를 쉽게 볼 수 는 환경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빠나 엄마나 그 재밌다는 스타워즈의 세계를 모르고 살아왔다. 이번에 본 스타워즈 에니메이션 <클론의 전쟁>도 사실 영화는 너무 보고 싶고 아이들을 어떻게 할 수는 없고해서 찾은 영화였다.
그걸 보고 나서 아빠의 기억 저 편에 있던 스타워즈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나고 거기 나오는 알투, 쓰리피오등의 로봇이 현승이와의 대화 속에 살아나오면서 다 지나간 영화 더듬기는 시작되었다. 총회 때문에 일주일 집에서 쉬는 아빠, 운동회 때문에 숙제도 비교적 가벼웠던 채윤이 이런 게 맞아 떨어져서 한 일주일간 지나간 스타워즈 빌려보기로 네 식구가 폐인이 되었다. 넷이 모였다 하면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어떻고 다쓰 베이더가 어떻고 광선검이 어떻고....

혼자 침대에 누워 책이라도 보고 있으라치면 어느 새 아빠와 아이들 둘이 스타워즈 얘기로 정신이 없는데 가만 듣고 있으면 30년의 나이 차이을 넘어서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친구 셋의 대화로 들릴 뿐이다. 가끔 어른 둘이 대화를 할 때는 스타워즈에서 건져올린 더 심오한 철학을 논하기도 한다.(심오하다고 얼마나 심오할까?ㅋ)

홈 씨어터는 커녕 TV도 없는 집에서 쬐만한 컴퓨터 모니터에 넷이 달라붙어 앉아 오징어 구워놓고는 스타워즈에 심취하는 맛. 이 궁상맞은 기억은 우리들만의 추억으로 얼마나 멋지게 자리잡아가고 있는지.
 

재미가 없으면 견디질 못하는 여자와
의미가 없으면 견디질 못하는 남자가
함께 영화를 보려니 그 중간지점을 찾아내기가 어려운 일인지...
그 중간지점을 찾아준 것은 둘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이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영화를 고르다 만난 픽사영화들은 둘 사이의 중간지점은 물론 네 식구
모두를 열광케 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으니....
기회가 없어서 그렇지 영화를 제대로 좋아하고 영화평을 제대로 해보고 싶은 아빠는 최근에 <박찬욱의 오마주>를 보면서 영화와 글을 연결시키고 싶은 꿈틀대는 본능을 캐치했나보다.
나중에 형편되면 가정용 프로젝터를 꼭 사고 싶다는, 그리고 제대로 보고싶은 영화들을 보고 영화설교 같은 것도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하셨다.


픽사영화와 더불어 우리 아이들의 '보고 또 보고' 친구인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들이다.
아이들에게 좋은 영화 DVD를 많이 사주고 그걸 보고 또 보면서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하고 싶다는 아빠는 마트에만 가면 DVD 주변을 서성거리다 엄마한테 한 소리 듣기 일쑤다.
MBTI로 분명 N, 직관형일 듯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상상력은 채윤이 같은 감각형의 아이들에게는 정말 새로운 상상의 세계를 열어주는 듯 하다. 픽사영화와 함께 아이들이 몇 번씩 반복해서 보는 영화들이다.

무엇보다 이런 영화들이 식구들만의 비밀스런 은어를 만들어 쓰게 하고, 30년의 세대 차이를 넘어서 풍성한 대화를 하게 한며 세대공감을 자연스럽게 일구어 낸다는 것이 참으로 좋지 아니한가. 이런 류의 세대공감이 가능해진 것은 다름아닌 부쩍 자란 현승이 때문일 수도 있다. 어느 새 영화자막을 대충 읽기도 하고 그 어눌한 말투로 영화의 등장인물과 대사와 스토리들을 줄줄 꿰기도 할만큼 자란 현승이 덕에 넷의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해졌으니 말이다. 
현승이가 자라서 우리와 이런 공감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이 반가운 만큼 삼춘기를 맞은 채윤이가 언제 사춘기에 돌입하여 자기만의 세계로 들어가 식구들을 따시킬지 모르는 일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넷이 이렇게 킬킬거릴 수 있는 시간이 우리 생에 얼마나 될까 싶다. 기나긴 인생에 오늘같은 꿀같은 시간이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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