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편이 고등부 교사를 할 때 학생이었던 E1,

남편이 청년부 담당 교역자를 할 때는 E1이가 목자(리더)가 되었다.

그리고 초등부 교사도 하던 E1는 우리 채윤이의 담임 샘, 또 찬양팀 샘이었다.

남편이 매우 아끼는 후배이며 동료인 J강도사님과 E1이가 결혼했다.

E1이는 E2, E3 두 딸의 엄마가 되었다.

그 어마어마한 세월과 사건들이 이렇게 짧게 정리되다니!

속절 없다.

 

**

E1네 가족이 집에 왔다.

배터리 충전 따로 안 해도 에너지 무한 발산인 E2, E3 자매가 쿵쾅쿵쾅.

두 사내 아이를 키우는 아랫집으로 인해층간소음의 피해자로 사는 우리집이다.

쿵쾅쿵쾅 다다다다, 오늘은 제대로 복수해주었다.

꽃친 다녀와 피곤한 채윤이가 조용히 한 잠 하시고, 그새 눈이 부어 나오더니

층간소음을 잡아주었다.

실바니안 패밀리를 가지고 E2와 소꿉놀이를 해주니 조용해졌다.

 

***

채윤이 아빠가 고등부에서 가르친 E1이 자라서 채윤이의 선생님이 되었었다.

채윤이가 고등부가 되어 E1의 아이와 함께 놀아주는 모습을 본다.

이것이 세월이다.

지난 세월과 앞으로 올 날들을 오가며 목회자와 신학자와 설교자로 사는 이야기.

성대모사, 추억 꺼내기..... 로 데굴데굴 뒹굴며 웃기.

 

****

그래서 오늘의 메뉴는 '세월 찜닭'이다.

세월은 속일 수가 없다.

두 시간이면 웬만한 손님 식사 준비가 뚝딱뚝딱이었는데,

닭 두 마리 찜하고, 도토리묵 무침, 해물파전 만드는데 하루 종일 걸린 느낌이다.

실제 하루 종일 걸리진 않았다.

E1이가 목자하던 시절. 목자모임을 할 때 매번 12명 목자의 식사를 뚝딱 만들곤 했는데.

세월이 가면서 돌이켜 회복할 수 없는 것들이 쌓인다.

그리워하고 추억할 뿐이다.

E2, E3처럼 귀여운 아기였던 채윤이를 추억하고,

E1과 목자라 불리던 다른 청년들과 울고 웃던 시절을 추억하고.

지금보다 훨씬 건강하고 에너지 넘치던 내 몸을 추억한다.

 

질 수 없다. 결심했어.

 

내일이면 다시 어제가 되고 말,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 찜닭 졸였던 짭짤한 냄새가 바람에 스치운다.

 

 

 

'음식, 마음의 환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향육사  (2) 2016.12.17
초록 흰죽  (0) 2016.08.22
내게 봄과 같아서  (4) 2016.03.25
치킨맛 공룡 열 마리  (7) 2015.11.12
짜황  (0) 2015.08.2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