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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여정

수치심의 치유_후원의 추억

larinari 2019. 9. 30. 22:16


인생,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음을 알지만. 이렇게 시작해야 한다. 살다살다 내가 후원 요청하는 일을 하게 될 줄이야. 더 놀라운 것은 이렇듯 떳떳하고 당당하게 요청하게 될 줄이야. 몸에 흐르는 지역감정의 피, 충청도의 피 같다. 굶어 죽어도 아쉬운 소리 하지 않겠다는 왜곡된 기질 같은 것. 곧 죽어도 수염 쓰다듬으며 팔자걸음 걸으며 내 속의 양반 어디 가고 기쁘고 당당하게 후원 요청을 하고 있었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이 말은 이명박이 쓰던 말이라 왠지 코미디 같지만. 확실히 해봐서 알게 된 것이 있다. 후원자 명단을 보며 매번 새롭게 놀라게 되는 것이다. 후원하시는 분들이 여러 모로 내 예상을 빗나간다는 것, 더불어 적은 금액의 후원일수록 더욱 감동이 되며, 돈이 자본주의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 엑셀 시트의 정보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이 보인다는 것.


말 그대로 후원, 後援, 뒤에서 도와줌이구나 싶다. 한 분 한 분에게 황송하고 송구한 감동이다! 조용히 후원신청 하신 한 분 한 분, 무슨 말씀이라도 드리고 싶어 고심했다. 내담자들의 변화와 집단여정에서의 감동을 미주알고주알 알려드리고 싶은 마음. “저희가 뭐라고, 저희를 믿고 이렇게...” 머리 숙여 인사 드리고 싶은 마음이 컸다.


조용히 ‘이체’로만 말씀하시는 분들께 어떻게 연결될까? 고민 끝에 마음 품 많이 들여 선물 제작했다. 달랑 책갈피 하나이지만, 다섯 사람의 머리와 마음을 맞대고 깊은 애정과 의미 갈아 넣었다. 제가 한 음식 제일 맛있다고 누구보다 많이 먹는 느낌으로, 우리가 만든 걸 보고 보고 또 들여다보며 '예쁘다, 참 잘 만들었어' 하루에도 몇 번씩 셀프 감동이다. 카드까지 따로 제작하여 꾹꾹 눌러 쓴 손편지와 함께 발송했다.


이 과정에서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기억 저편으로 쫓아냈던(그렇다, 아마도 쫓아냈을 것이다.) 후원에 대한 기억이다. 중고등 시절 장학금 또는 후원금 명목의 돈을 몇 군데에서 받았었다. 학교에서 선생님 추천을 받기도, 이북 출신 아버지 덕에 이북 5도청의 장학회와 연결되기도 하였다. 선정된 가장 큰 이유는 아버지 없는 아이였을 것이다. 아버지 없는 아이가 공부도 웬만큼 하고 모범생이기도 했으니.


한 달에 한 번 직접 가서 받기도, 일 년에 두어 번 등록금 내는 때 받기도 했었다. 그때마다 성적증명을 내야 하거나 가끔은 후원자게 보낼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 사진, 바로 그 사진을 찍힐 때의 감정이다. 저 먼 곳으로 쫓아내고 숨겨뒀던,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수치심의 기억이다. 연구소 후원자들과 어떻게 연결될까 고민하며 생각했다. 


냉장고에 붙은 아프리카 어린이 사진 같은 걸로 연결되지는 말자. 아, 나 정말 그런 것 싫어하는 구나, 알게 되었다. 빈곤 포르노라고 한다. 후원받는 사람들을 선정적으로 다루는 사진 같은 것들. 지인의 집 냉장고에 붙은 아프리카 어린이 사진이나 선교사 가족 사진을 딱히 빈곤 포르노라 할 수 없지만, 생각해보니 참 불편했다. 


생각해보니 이 역시 내가 해봐서 아는 것이다. 후원자에게 보낼 사진 찍히는 심정을, 그 수치심을 안다. 나는 행복한 표정을 지으면 안 될 것 같은, 동정심을 이끌어낼 불쌍한 표정에다 감사의 표정까지 담아야 하는, 그리하여 후원자의 후원하는 손에 자부심을 불어 넣어줘야 할 것 같은 부담. 청소년기의 나는 사회복지사의 나는 카메라 앞에 서서 무의식적으로 모든 걸 고려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 순간 정말 수치스러웠다.


후원의 혜택 드려야 하는 내담자들을 어떻게 존중할 수 있을까, 많이 고민했다. 혜택의 방식과 모든 것도 우가 아니라 수혜자 자신이 선택하게 할 수는 없을까, 생각한다. 이런 글을 쓰는 것조차 대상화 하는 것 같아 조심스럽다. 후원의 혜택을 입으시는 분도, 후원하시는 분도 불필요한 수치심과도 우월감도 느끼지 않고 새털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연결되어 함께 성장하게 되는 플랫폼이 될 수 없을까. 사람에 관한 일은 시스템화 할 수 없음을 알기에 한 분 한 분 사려 깊게 분별하여 도우려 한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숨겨뒀던 수치심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그 감정을 다시 경험하며 잠시 휘청했지만 결국 사랑의 뜰채로 건져 올려 마주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중고등 때 학생증 사진을 보면 상상이 된다. 안 떨어지는 발걸음을 옮겨 후원금 받으러 가던 내 모습, 후원자에게 보낼 사진을 찍고 감사의 편지를 쓰던 표정과 마음이. 치유자로 사는 내가 명확하게 이름 붙여주고 안아주고, 보호하며 자존심을 지켜줄 수 있게 되었다. 


어릴 적 증명사진 첨부할까 하고, 들여다보다 다시 한참 울었다. 슬퍼서 안되겠다. 그 사진의 아이는 내가 혼자 더 들여다보고 만나주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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