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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킨십과 이벤트 말고 대화와 싸움으로

larinari 2014.02.21 23:46

 

 

 

청년 시절에 만난 어느 집사님 부부는 우리는 결혼하고 부부싸움을 해본 적이 없다. 이런 결혼을 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덧붙이시길 어려운 일이 있으면 밤이고 새벽이고 상관없이 전화하라고 상담해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젠틀하고 인자한 이미지의 남편 집사님, 그 곁에 고상한 자태로 앉으신 부인 집사님을 뵈면 아닌 게 아니라 설령 물을 베더라도 칼 따위를 꺼내 드실 분들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새벽에 그 집사님들께 상담 전화할 일은 없이 몇 년이 흘렀고 결혼을 했습니다. 그 사이 장로님 권사님이 되신 두 분의 초대로 몇 커플의 신혼부부가 댁에 놀러 가게 되었습니다. 결혼생활에 대해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들을 해주셨고, 다시 강조하셨습니다. ‘우리는 여태껏 부부싸움을 해본 적이 없다. 사랑하라고 부부로 맺어주셨는데 왜 싸움을 하느냐, 싸우지 않고 살아야 한다.’ 당부하셨습니다. 신혼여행 다녀오자마자 부부싸움 전과자 딱지를 붙인 부부는 괜한 자격지심으로 마음이 삐뚤어졌습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과 함께 , 싸우지 않고 사는 게 부부야?’ 하며 의기투합했었더랬지요.


싸움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의 문제이겠습니다. 목에 핏대를 세우고 옆집에 들릴 정도로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 몇 개 집어 던져 박살나 주는 정도가 부부싸움이라 한다며 저희 역시 결혼 15년 동안 단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습니다. 그릇이 날아간 적은 없지만,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보진 못했지만(, 아깝다!) 냉소하는 눈빛과 차분한 목소리로 조목조목 따져가며 비난의 칼날을 휘둘러 깊은 상처를 남긴 일은 부지기수입니다. 하루 이틀 서로 투명인 간 취급하며 지낸 적도 많고요. 이것이 제게 있어 부부싸움입니다. ‘와서 보라 우리의 결혼을!’ 제가 남편과 함께 쓴 결혼에 관한 책입니다. 과한 자신감 아닙니까. 이런 저희 부부, 지금도 여전히 간간이 갈등에 직면합니다. 결혼 15년 동안 꾸준히 싸운 덕분에 이제 웬만한 갈등도 한 두 시간 안에 툭툭 털어낼 수 있게 되긴 하였습니다. 한 번도 싸워본 적이 없다는 분들 앞에서 약간 주눅이 들긴 하지만 나름대로 당당하게 할 말도 있습니다.

 
남편과 연애를 시작하던 그 가을을 잊을 수 없습니다. 한동안 아침에 눈을 뜨면 이게 꿈인가 생신가 하면서 지냈습니다.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았지요. 서로를 향해 마음 졸이며 간직하던 설렘이 짝사랑이 아니었음을 확인하게 된 그 순간, 인생의 어느 시점 여기에 견줄 황홀함이 또 있을까요? 이것저것 다 무덤덤해지고 삶이 윤기를 잃어갈 때 한 번 씩 꺼내보게 되는 추억 속 한 장면입니다. 그때 참 좋았지요. 믿어지실지 모르겠지만 사실 저는 그때보다 지금의 남편이 더 좋습니다. 드문 일이긴 하지만 여전히 그때처럼 설레기도 하고요. (, 이런 얘기 동년배들에게는 안 합니다.) 그때도 좋아했는데 15년 지난 지금 서로를 더욱 사랑하게 만든 일등 공신은 싸움이었습니다. 폭풍처럼 싸우고, 폭풍이 지나고 제정신 돌아오면 대화하며 이해하고, 이해하다하다 안 되면 눈물 콧물 흘리며 기도하여 일궈낸 것입니다. ‘우리 사랑을 키운 8할은 잘 싸운 싸움이었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부부(연인) 사이 방귀를 트는 것보다 더 어렵고 값진 일은 내면에서 나오는 독가스를 오픈하는 일입니다. 이 자연스런 가스방출은 꽤나 성숙한 사람이라고 해서 피해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수술 후 장이 제 자리를 찾았다는 신호를 방귀로 가늠하여 식사를 허락하지요. 관심이 없거나 원거리에 있는 사람에게는 모르겠지만, 사랑하여 친밀한 사람에게는 어쩔 수 없이 내면의 독가스를 감출 수 없습니다. 독가스의 방출은 필연 갈등을 유발하기 마련입니다.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지요. 그러니 건강한 연인이라면 사랑을 시작하며 뒤집어쓴 마법의 보자기가 서서히 벗겨지면서 크고 작은 갈등을 피해갈 수 없을 것입니다. 거의 모든 연인이 싸웁니다. 데이트 시간에 늦는 것, 갑자기 몇 시간씩 연락이 안 되는 것, 간섭이 심한 것.... 싸우는 이유는 백 커플에 백 가지일 것입니다. 그리고 각자 다른 커플도 이런가? 왜 우리는 이렇게 힘들게 연해해야 하지?’라며 자괴감에 빠지는 것 같습니다. 아니면 동성 친구에게는 울며불며 힘든 연애에 대해 토로할 수 있으나 정작 갈등 유발자인 남친 여친 앞에 가서는 한마디 말도 꺼내지 못하고 속만 끓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싸우는 일은 슬프고 두렵습니다. 그래서 아예 싸움이 일어날 일은 회피해버리기도 합니다. 왜 그렇게 두려울까요? 그렇죠. 헤어짐이 두렵습니다. 갈등하여 마음이 조금만 멀어져도 헤어짐이 연상되니까요. 헤어짐을 두려워하는 연애는 건강한 연애, 진정한 의미의 사랑인 자기 확장으로 나아가기 어렵습니다. 좋은 연애는 절대 헤어지지 않을 것처럼 자신을 내어주는 열정과 몰입, 언제라도 헤어질 수 있을 것 같은 당당함이 균형을 이뤄야 합니다. 어렵죠? 원래 인생에서 정말 소중한 것들은 어렵고 복잡하답니다. 서로가 뿜어내는 독가스로 애정 전선의 기류가 안 좋아질 때, 그때가 사랑이 커지고 깊어지는 기회입니다. 어설픈 스킨십이나 이벤트, 선물 공세로 얼렁뚱땅 넘어가지 말고 대화로 돌파해야 합니다. 설령 대화로 시작하여 울고불고하는 싸움으로 끝나더라도요!

 

<QTzine>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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