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할 날은 다가오고,
집은 비싸고,
게다가 나온 집은 없고,
근심과 잔머리 굴리기로 휴가 이틀 까먹고 수요일이 되었다.
안되겠다. 떠나자.
떠나자! 신두리 해변으로!

낮게 드리운 구름처럼 묵직한 마음으로 출발했지만,
우리를 맞은 신두리 하늘은 뭉게뭉게 천진난만한 솜사탕의 향연이다.


뛰어 오르자규.
근심으로 키를 한 자라도 자라게 할 수 없다규.
엄마처럼... 이렇게 뛰어보라규.
엄마 얼굴을 봐. 엄만 말이지 굴욕 따위는 두렵지 않아.
키는 자라게 할 수 없지만 순간적으로 높아질수는 있다.ㅎㅎㅎ



벌써 2년 전 점프의 도를 깨우친 아빠는 이제 더 이상 뛰어오르지 않는다.
뛰어오르기 보다는 뛰어 내리는 포즈 같지 않냐는거지.
특히나 현승인 나로호에서 뛰어내린 우주인스럽지 않는가 말이다.


무사히 하강하신 아빠 기분이 별로 안 좋은 채윤이와 셀카로 기념촬영.
실은 뒤에 함께 뛰어내리신 우주인도 숨어 있다.


실내수영 4년 만에 바다수영의 도를 터득한 엄마는 도통 뭍으로 나올줄 모르고...
심심했던 아빠는 별의별 사진을 다 찍어 보는 것.
아, 우리 채윤이 각썬미.


몇 년 전에 처음 바다에 갔을 때,
밀려오는 파도를 보고는
'물이 와, 물이 와' 하면서 하얗게 질렸던 현승이.
그리고는 모래만 만지작거리다 돌아왔던 현승이가 이젠 제법 표정이 살아있다.
이 녀석... 물에 대한 공포를 없애달라고 하나님께 생떼를 쓴 엄마의 기도를 알까?


신두리 해변, 우리나라 최대의 사구라는데 정말 모래와 모래사장이 끝내준다.


채인징 파트너. 이번엔 아빠랑 모래성 만들기.


그러잖아도 한적했던 해변이 점점 물이 빠지면서
사람들도 어디론가 빠져나가고 더욱 한적해진다.



바닷게에서 놀며 잠을 자본 경험이 없어서
해지는 해수욕장을 느긋하게 즐겨본 경험이 거의 없다.
사람이 빠져나가고, 물이 빠져나가고, 햇볕마저 서서히 몸을 빼는 저녁 무렵 신두리.


그리고 그 해변에 나타난 해파리 아니고,
시퍼런 불가사리 한 마리.


갑자기 떠나는 휴가라 아무런 채비를 하지 못했다.
조개를 미리 사갖고 가면 팬션에서 구워먹을 수도 있다는데
그런 준비까지 할 여유가 없었다.
다행히 해수욕장 근처에서 노천 조개구이집이 있어서 맛있게 즐겼다.


우리 돌쇠 아버님.
쩍쩍 입벌리고 익어가는 조개는 많지만 배고픈 식솔들 거둬 먹이시느라 자기 입에는
넣어보지도 못하신다.
한 놈 익어서 입 벌리면 토끼 같은 마누라 입에,
또 한 놈 입 쩍 벌리고 먹어주쇼 하면 망아지 두 놈 입에...


그런 멋진 아빠 치켜 세웠더니 옆에 앉은 딸내미가 바로 자기 몫을
아빠 입에 넣어준다.
저 딸내미 앉으신 폼.ㅋㅋㅋ


두 놈 배불리 먹고 먼저 들어가 보겠다고 일어선 다음 칼국수 하나를 시켰는데...
주인 아줌마가 칼국수에 숨은 그림을 하나 띡 넣어 놓으셨다.
아빠의 사랑을 상징한다고나 할까?
크게 보고 숨은 그림 찾아보시기!


밤에는 해변에 앉아 허접한 불꽃놀이도...
그렇게 밤은 깊어가고,
밤새 다시 들어온 바닷물이 팬션 앞까지 들이쳤는지 새벽에는 파도소리에 잠을 설쳤다.


아침에 일어나니 하늘이 묵직하다.
아니나 다를까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결국 우리는 비오는 바닷가의 운치까지 만끽하게 된 것.


누군가 여행 가면서 왜 책을 가져가냐고 했다는데
우리 부부는 여행 가면서 칫솔을 빠뜨려도 책을 챙겨가자는 주의.
조그만 원룸 팬션이 아담하고 깨끗하긴한데 기대앉을 소파 하나가 아쉬웠다.
약간의 컴플레인을 하니 우리 돌쇠 아범께서 바로 밥상과 이불을 활용하여
독서하기 좋은 소파를 마련해 주셨다.
일고 있는 책은? <래리크랩의 깨어진 꿈의 축복>ㅎㅎㅎ


비 와서 나가지도 못하는 두 망아지.
큰 망아지는 엄마빠 따라서 독서삼매경.
큰 망아지가 저렇게 책에 빠져 있다면 그 책은 반드시 만.화.책이다.
위인전 좋아하고, 글씨 많은 거 싫어하는 채윤이에게 딱인
<만화, 안네의 일기>


빗방울은 좀 떨어지지만 그냥 오기는 아쉬워 다시 해변으로 나간다.
그 새 물은 또 멀리 달아나 있다.
아빠와 아들은 멀리 달아난 바다에게 인사를 하러 가고,
발에 진흙 묻는 게 싫었던 여자들은 모래에 글씨를 쓰면서 놀고...


디따리 큰 '정신실 하트'에 대한 답으로 새긴 제이피 하트.
하트를 선사받으신 제이피 께서는 '당신 쫌 불쌍해 보인다'


모두 돌아서서 주차장으로 향하는데 혼자 남아서 하트를 지우고 있는 넘.
일명 질투의 화신.
아나~ 결혼하면 나 때문에 서로 시기 질투하는 남자들 없어서 좋겠다 싶었는데...
결혼해도 이느무 인기는...ㅋ


마지막으로 제 멋대로 가족사진 하나.

가볍지 않은 마음으로, 큰 기대 없이 가 본 신두리 해수욕장에는
우리를 맞는 솜사탕 같은 하늘이 있었고,
놀기 딱 좋은 깨끗한 바다가 있었고,
아빠가 있고, 엄마가 있고, 딸이 있고, 아들이 있고...
언제 어디서나 공기처럼 우리를 감싸는 그 분의 사랑도 있었다.

'JP&SS 영혼의 친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물  (30) 2009.09.19
고백  (14) 2009.09.04
비상! 비상! 비상!  (12) 2009.07.17
더 큰 사랑을 힐끗 보게 한 당신의 사랑  (39) 2009.07.14
The Wounded Healer  (4) 2009.06.26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