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브♥갓♥메일_목적이 이끄는 연애 14   

                                                                    <QTzine> 2009년 2월호

은혜에게
존경하는 장로님이 한 분 계셔. 사회적으로나 교회적으로 저명한 분인 만큼 주례 부탁을 자주 받으시나보더라. 그 분이 쓰신 책에서 이런 얘기를 읽은 적이 있어. 결코 주례를 보지 않으시는 커플이 있는데, 이렇대. 함께 사계절을 지내보지 않은 커플(즉 교제한 지 1년 미만의 커플)인데, 예외가 있다는 거야. 1년 미만의 짧은 시간 동안 교제했다 하더라도 헤어짐을 고려할 만큼 심각하게 싸운 적이 있다면 오케이래. 길게 교제하지 않았거나, 싸워보지 않은 커플의 결혼식을 집례하는 것은 주례자로서 책임 있는 태도가 아니라는 거였지. 그러니까 오랜 연륜을 통해서 그런 커플은 깨질 확률이 크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어. 주변에 보면 만난 지 몇 개월 안 돼서 초고속으로 결혼에 골인하고도 잘 사는 부부들도 없지 않다만 장로님의 지혜에 백번 동의한다. 그런 의미에서 너희 둘이 대판 싸운 소식이 그리 나쁘지는 않구나. 싸움 후에 피차 연락두절 상태라니 답답하고 속상한 마음 말할 수 없겠지만 소망을 가져라. 앞뒤 문이 꽉꽉 막힌 것 같고 서로가 닿아 만날 지점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선생님이 확신컨대 잘 싸운 싸움은 결국 더 깊은 소통을 열거야. 지금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 거냐고? 그래. 부채질인 걸 알지만 이게 선생님의 솔직한 마음이란다.

네가 물어온 여러 질문 ― 먼저 전화를 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기다려야 하는 건지, 누가 잘못을 했든 남자가 좀 먼저 풀어줘야 하는데 계속 저러고 있는 건 너무 쪼잔한 게 아닌지, 시한을 두고 기다려봤다가 연락이 안 오면 이번에 끝내는 게 낫지 않겠냐는 것 등 ― 에 대해서는 일단 노코멘트다. 사실 잘 생각해 보면 그에 대한 답은 이미 은혜 안에 있어. 네 표현대로 앞뒤 문이 꽉꽉 닫혀서 빛이 들어올 틈이 없는 마음에서 온갖 상상을 다 하게 될 거야. 결혼을 하고 10년이 된 부부 사이에도 잠시 갈등이 불거져서 냉전이 시작되면 오만 가지 상상으로 소설 한 편을 출간하게 되는데 너희야 오죽하겠니. 커플들에게 있어 싸우고 나서 서로 차갑게 보내는 시간처럼 고통스러운 순간은 없겠지만 힘들더라도 혼자서 너무 많은 상상의 나래를 펴지는 않으면 좋겠다. 그 상상이라는 것이 대개 지금 곁에 있지도 않는 J에게 다 하지 못한 얘기를 따져 묻거나, 다 하지 못한 너 자신의 입장 변호를 해 보거나, 아니면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최악의 상상을 하는 것이 대부분인 것 같은데 말이야. 그렇다고 지금 같은 상황에서 차분하고 냉철하게 자기반성이나 하라는 얘기도 아니야. 그저 지나친 생각의 널뛰기로 일을 더 부정적으로 만들지는 말자는 얘기야.  


동굴 입구에서 기다리거나 잡으러 들어가거나

J가 보여주는 지금 모습이 네가 책에서 읽었다는 '남자들은 힘들 때 자신만의 동굴로 들어간다'는 표현에 들어맞는 것 같기도 해. 은혜는 이렇게 선생님과 메일을 주고받으면서 너의 얘기를 밖으로 내보내지만 어쩌면 J는 문제를 혼자 안고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 같으니 말이야. 지금 은혜의 얘기는 그렇게 동굴로 들어가 버린 J가 실망스럽다는 얘기잖니. 흔히 말하는 이해심이 많아서 웬만한 갈등은 알아서 먼저 탁탁 풀어주면 좋겠다는 거지? 더 큰 바램은 J의 마음이 태평양 같이 넓어서 웬만한 일은 싸움도 되지 않았으면 한다는 거 아냐?

어찌 보면 지금 은혜는 싸움의 내용보다 싸우고 나서 남자답게(?) 먼저 나서서 풀어주기는커녕 감감무소식으로 잠수 타고 있는 것이 실망스러운 것 같구나. 글쎄다. 남자고 여자고 간에 이런 경우 상대방이 먼저 손 내밀어 주길 바라는 마음은 같지 않을까? J 역시 은혜가 먼저 손 내밀어 주길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고, 설령 동굴로 들어갔다 한들 거기서 안 나오겠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갈등을 해결할 방법을 찾고 있는지도 모르는 거 같아. 네가 읽었다는 책의 요지는 사랑하는 방식이 남자와 여자가 다르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거지, 거기서 제시하는 방식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된다는 뜻은 아니었을 거야. 그러니까 지금 J의 행동을 '동굴로 들어갔다'는 식으로 일반화하기보다는 너와 J 둘 사이에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 대해서 집중하는 것이 좋을 것 같구나. 모든 남자가 그런 것처럼 J도 동굴로 들어갔다고 치자. 동굴로 들어간 어떤 남자는 시간만 주면 스스로 털고 나올 때까지 기다려 줘야 할 것이고, 또 어떤 남자는 숨어들어간 동굴로 찾아들어가 손잡고 함께 나와 줘야 하지 않겠니? 아니면 대부분의 남자들은 그 두 가지 마음을 다 갖고 있지 않을까?


문제는 너와 J 사이에 어떤 방식의 해결이 제일 적절하겠냐는 거야. 이 부분에 대해서 선생님이 딱히 답을 주기는 어렵다. 중요하지만 극히 평범한 원칙, 즉 둘이서 반드시 솔직한 대화를 하렴. 되도록 대화 없이 얼렁뚱땅 관계를 회복하지는 말아라. 만약에 너희가 부부라면 가급적 잠자리에 들기 전에 화해를 해라. 이 정도? 싸움의 해결방식은 너희 둘만의 방식이 있을 것 같아. 남들이 모르는 너희 둘 만의 은밀한 사랑의 대화가 있듯이 말이야. 실타래처럼 끝없이 풀려나오는 상상을 접고, 서운한 마음은 가라앉히고 사랑의 언어보다 더 중요한 싸움과 화해의 언어를 찾기 위해 기도하며 고심해 보기를 바래. 둘 만의 이 언어를 찾아내는 것이 진정한 사랑의 길로 가는 길목일지도 몰라. 그래서 잘 싸웠다는 거다. 갈등이 불거지지 않고는 두 사람의 가장 약한 부분에서 나오는 언어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을 배울 수가 없거든. 그러니 주변에 도통 싸움이 안 되는 남친과 사귀는 애들을 부러워하지 말고 잘 싸우고 잘 화해하는 남친이 최고의 남친인 줄 알거라. 물론 잘 화해하는 것이 이제 너희에게 남겨진 숙제이긴 하지만 잘할 거라 믿어.


동물농장이거나 쥐라기 공원이거나

설교에서 들은 예화란다. 어떤 예비부부가 평소 존경하는 선배 부부를 찾아갔대. 가서 결혼생활에 대한 조언을 해달라고 했다는구나. 그랬더니 선배가 하는 말이 '결혼생활은 더도 덜도 아니고 동물농장'이라고 하더래. 결혼하기 전에는 자기 안에 이렇게 날카로운 발톱과 동물적 본능이 숨어 있는지 몰랐다는 거야. 것도 가장 사랑해서 같이 있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던 여인에 대해서 말이야. 선배의 얘기에 도통 수긍을 할 수 없었던 예비부부가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돌아갔단다. 그리고 몇 년 후. 다시 그 선배를 만나게 되었대. '결혼은 동물농장'이라는 말을 해독을 못했던 그 후배가 선배한테 그랬대. '선배님! 결혼이 무슨 동물농장이에요? 제가 살아보니까 완전 쥐라기 공원이던데요!'^^

아무리 행복하다고 하는 부부라 할지라도 결혼생활을 해 본 사람이라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얘기야. 교제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너와 J사이에 이렇게 심각한 기류가 흐르는 날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니? 우리 모두 온전하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에 아주 가까이에서 오래 볼수록 바닥이 드러나게 돼있지 않냐. 또 내 바닥 드러나는 생각은 안 하고 남의 바닥만 나무라게 생겨먹다 보니 내 속에 숨어 있던 늑대 이빨, 곰 발바닥이 다 드러나는 거지 뭐. 이것이 결혼의 현실이란다. 무섭지?ㅎㅎㅎ


잘 싸우고 얻는 것

서두에 얘기한 장로님의 주례 원칙에는 이런 깊은 뜻이 있을 거야. 드물게 '우리 부부는 싸움을 몰라요' 하는 부부가 있는데 그런 얘기 들으면 살짝 부럽기도 하지만 솔직히 믿어지지는 않아. 아마 '싸움'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의 문제가 아닐까. 결국 어떤 식으로든 갈등은 있게 마련이지. 단지 싸우지 않는 것만이 지상 목표가 되어 외면의 평화만 유지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유익을 주는 게 부부나 연인 사이의 다툼이야. 특히 연애 기간에 잘 싸우고 잘 화해해 본 경험 없이 결혼하면 더 문제가 되는 것 같아. 연애 기간의 싸움은 '정 안 맞으면 헤어지면 된다'는 비상구가 있는데 결혼은 막다른 골목처럼 느껴지거든. 막다른 골목에서 쉽사리 해결이 안 될 때 대다수 부부가 선택하는 길이 뭐겠니?


은혜의 갑갑한 마음을 알면서도, 또 이런 얘기가 결혼에 대한 핑크빛 환상에 먹칠하는 것임을 알면서도 선생님이 불난 집에 부채질을 좀 했다. 기도하면서 지혜로운 화해를 준비해 보렴. 시간이 지나면 이쪽이든 저쪽이든 먼저 살짝 창문이 열릴 것이고, 따라서 나머지 창문이 빼꼼히 열리고 그러다 두 마음의 창이 다시 활짝 열릴 거야. 꽁꽁 닫혔다가 다시 열린 창문 사이에 부는 맞바람은 예전에 맛본 시원함과 비할 수 없을 거야. 그런 시원한 바람 맞아 봤냐? 그런 시원한 소통 해 봤냐? 안 맞아 봤으면 말을 하지마∼ㅎㅎ 힘내고 잘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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