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에서 진행하는 '내적 여정 지도자 과정', 마음 먹은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이 종강을 맞았다. 계획대로라면 11월 말에 종강 피정을, 12월 첫 주에 수료식을 하고 마침표를 찍었을 것이다. 지도자 과정 개설은 나로서는 역사적인 한 걸음이었다. 하필 코로나 19와 함께한 큰 걸음이라 더욱 드라마틱한 행보가 되었다. 마지막 피정을 위해 쏟은 마음의 에너지가 얼마나 컸던가. 어렵게 구한 맞춤형 숙소며 포기하고 감수해야 할 것이 많았지만 어쩔 수 없이 연기했다. 그러고 보면 지도자과정 포함 연구소 프로그램들을 내내 취소, 연기, 취소, 연기... 하며 올 한해를 지냈다. 



종강 피정을 1월로 미루고 기약없이 텅 비어버린 12월 그냥 보낼 수 없어서 새 일을 도모했다. 이렇듯 예측할 수 없는 환경에 맞춰 진행하면서 더 좋은 지도자 과정 커리큘럼이 된 것 같기도 하다. 늘 만나던 목요일 오후에 줌으로 하는 책 나눔을 계획했다. 과제로 읽고 리포트 제출했던 책을 리스트에 올리고 투표를 거쳐서 선정했다. 안셀름 그륀 신부의 <아래로부터의 영성> 당첨. 안셀름 신부님 책 중 잘 알려지지 않은 ‘옛날 책’이다. 신의 한 수였다. 지도자 과정 수강자와 연구소 식구 합하면 11명인데, 모두를 위한 최적, 최선, 최고의 책이었다. 11명 벗들의 개인적 여정은 물론 개소 2주년 맞는 연구소의 방향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고 있다. 나로서는 정말 그렇다. "아, 이걸 하려고, 이걸 하다 연구소 시작했지!" 위로부터의 영성이 틀려서가 아니라 아래에서 시작하는 영성의 부재에서 오는 불균형에 숨을 쉴 수 없던 시절이 있었지. 당시에는 숨을 쉴 수 없는 이유조차 몰랐었다. 지금 여기의 일상, 지금 나의 생각, 느낌, 상처, 질병, 실패에서 하나님을 찾는 방향성 말이다. 보석같은 이 책을 발견하고 심장 쿵쿵거리며, 눈물 찍어내며 읽던 그때를 생각하면 놀라운 오늘이다.   

다시 심각해진 밖의 상황이 풍성한 영성의 샘물로 우리를 이끌었다. 더욱 고립되어야 하는 외적인 상황이지만 그로 인해 더욱 단단하게 연결되는 시간을 만들어가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아쉬움으로 선택한 시간이지만, 그간의 여정을 정리하기 위해 꼭 필요한 시간이었구나 싶은 것이 그분은 참 꼼꼼하신 분이다. 아름다운 그분의 꼼꼼하심을 우리는 ‘신비’라 부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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