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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SS 영혼의 친구

아... 김장된다

larinari 2009.11.19 07:51


한 때 김치통 부여잡고 눈물 흘리던 암울하던 시절이 있었다.
눈물 없이 먹을 수 없는 김치 이야기..... 아, 휴일만 되면 긴장되던 그 시절이여...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슬픈 김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때는 바야흐로 2003년 5월.
위로 손녀 딸 셋을 보신 시부모님께 잠깐 외출하셨다가도 그 놈 얼굴 보고파서 서둘러 들어 오시도록 했던 그
손주놈이 태어난 지 딱 4주가 지난 토요일이었다. 그 손주놈을 낳은 며느리 조리원에서 2주, 친정에서 2주의
산후조리를 마치고 온 주말에 어머니는 김치를 하셨다. 두 종류의 김치를 대따 많이 하셨다.
아직은 산후조리중, 내지는 이제 막 산후조리를 마친 며느리와 함께 장을 봐서 김치를 하신 것이다.
아직 산후조리 중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며느리는 몸이 힘든 것보다 대접받지 못했다는 마음에 눈이 퉁퉁
붓도록 울고 말았다. 바로 며칠 전, 친정에서 산후조리를 마치고 오는 아침에 엄마가 울었었다.
'아이구, 내가 늙어서 우리 신실이 조리도 제대로 못혀주고.... 자꾸 물에 손대게 허고....'  엄마가 생각나서
더 많이 울었다.

그렇게 김치 시련은 시작되었다. 그 때 부터 시작해서 시어머님과 함께 살던 3년여의 생활은 휴일만 되면
김치 때문에 긴장을 해야했다. 쉴 만한 휴일이면 '김치하자' 하시던 어머니.

많은 눈물의 시간을 보내며, 김치 냉장고 쪽은 쳐다보기도 싫은 나날을 보내며 조금씩 어머니를 이해하게
된다. 열 아홉에 맏며느리로 시집 오셔서 대식구 살림을 꾸리시던 어머니는 쌀독에 쌀이 떨어져 가거나,
김치독에 김치가 떨어져가면 불안하신 거였다. 이제 그런 걱정 하나도 하실 일이 아님에도 마음은 아직
그 시절을 떨쳐내지 못한 것이다. 시간이 지나며 어머니을 이해하게 되자 늘 눈물을 삼키며 배추를 절이고,
달랭이 무를 다듬던 며느리도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어머니, 이제 어머니 김치 이렇게 안 하셔도 돼요. 어머니도 힘드시잖아요. 사서 드시는 게 어쩌면 훨씬 싸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흘러 가는데....
어머니께 한 번도 '어머니 저 김치 하기 싫어요' 말한 적이 없다. 그저 김치 하자 하시면 묵묵히 했고,  대신 밤에 남편의 품에서 울고불고 하였다. 휴일마다 김치 계획을 잡으시는 어머니와 살면서 '세상에서 제일 싫은 음식'이 김치가 되었고, 그럼에도 같이 아침 저녁으로 먹어야 하는 김치처럼 어머님와 얼굴을 맞대고 살아야 하는 현실.... '바보같이 할 거 다 하고 그렇게 마음만 다쳐서 그러냐? 그렇게 뒤돌아서 힘들거면 앞에서 못한다고 하지....' 이런 내 안의 목소리가 날 괴롭혔다. 그런 나를 향해 '이중인격자'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들릴 때 두 배로 견디기 힘들었다. 헌데! 어머님이 우리 침실을 엿보셨나? 내 마음을 읽어버리셨나?

한 집에 살다가 마주보는 현관으로 어설픈 분가를 하고 다시 하남과 덕소로 분가를 하는 사이 어느 때 부턴지 어머님이 김치 하자고 부르시질 않는다. 단지 같이 살지 않으니까라고 생각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어머님이 김치 담그기에서 며느리 열외시키기에 꽤 노력하시는 느낌이 든다. 심지어 김장도 친구분 하고 하신다. '어머니, 저 갈까요?' 하면 '바쁜데 뭘 오니? ' 하시면 다 해놓으면 가져가라신다. 이런 어머니를 보면서도 아직도 마음 그릇이 작은 며느리는 '가져가라'는 말씀에도 때론 귀찮아 투덜거렸다.

수년 전 목장모임을 하면서부터 어머님이 '이번 주에는 뭘해서 대접하냐? 김치는 있냐?' 라고 자주 물으셨다.
'그냥 뭐 한 가지 해서 먹었어요. 저는 여러 가지 안 하고 한 가지만 하니깐요 그렇게 힘 안들어요' 하면 '넌 참 어떻게 손님이 안 무섭냐?' 하시면서 희한하다 하시고, 일면 기특해 하시는 것도 같았다.
여름이 되면 열무김치를 담궈주시면서 '열무김치에 국수 말아서 모임을 해라' 하시고 겨울엔 신김치 주시면서
'돼지고기 넣고 김치찌게 끓이면 딴 반찬 필요없다'고도 하신다.

이젠 어머니 몸도 많이 안 좋으시고 김장 하시지 마시라고, 두 분 얼마 드시지도 않는데 사드시라고 말씀 드려보지만 어머님 마음 그게 아닌 걸 안다. 손님 오는데 김치 없으면 더 심란하다시며 니네가 우리보더 더 가져가라신다. 

여전히 어머니는 예전의 상처에서 못 벗어나시고, 그 때문에 김치에 대해서 자유롭지 못한 부분이 있음도 안다. 당신 몸이 그럴 수 없일 지경이라도, 다 드시지도 못할 김치를 하고 또 하시는 중독같은 선택으로 김치를 하시는 것도  안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가끔 수용해 드리기 어려운 꼬이고 꼬인 심리적인 요인들이 있다 할지라도 일정정도는 우리 가정을 향한 사랑임을 이제 난 알 수 있다.

현승이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김치를 담그고는 눈물로 밤을 지샜던 나는 김장 때가 되면 나름대로의 긴장이
되지만 이젠 아주 조금 사랑을 보는 눈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김장하는 날, 여전히 순간순간 마음이 경직되고 긴장의 순간을 맞닥뜨리지만  '아~ 어머니! 그렇게 콧물 많이 나오실 것 아까 소금 덜 넣고 마음껏 떨어뜨리실 걸 그랬어요. 근데 저는 제가 한 것만 가져갈께요.ㅋㅋㅋ' 하면서 함께 웃을 수도 있고, '이거면 충분해요. 어머니! 어머니 진짜 김치 욕심 그만 내셔야 어머니도 살고 며느리도 좀 살죠' 하면서 속에 있는 말을 할 수도 있게 되었다.

이번에 해서 가져온 배추김치, 백김치, 달랭이김치는 특별히 곱씹고 곱씹으며 먹을 예정이다.
곱씹다보면 한 두 번 입맛으로 느낄 수 없는 아주 깊이 숨어있어 쉬 맛볼 수 없는 어머니의 속깊은 사랑의 맛일 느껴질 것이다.

아, 긴장되는 김장 이젠 쉽게 된다. 아, 김장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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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Comments
  • 프로필사진 iami 2009.11.19 09:57 이곳 분들이 좋아라 하시는 일빠를 제가 차지!!
    일빠 욕심에 첫줄 등록시켜놓고 수정 키 눌러 쓰네요.^^

    아마 60대 이상 여성들에게는 김치와 김장에 관한
    모님의 묵상이 하나도 안 틀릴 거에요.

    저희도 이틀 전, 처제네랑 김장 담갔는데,
    저는 김치도 김치지만, 저녁때 씻은 배추쌈에
    김장속과 삶은 돼지고기 싸 먹는 맛이 끝내주더라구요.

    앗, 모님은 눈물, 콧물 흘리는 얘기 푸셨는데,
    저는 역시 먹는 타령이나 하다니..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09.11.19 10:29 신고 아학! 뉴페이스 일빠! ㅎㅎㅎㅎ
    첫줄 써 등록시키시고 수정키에 완전 쓰러졌어요.ㅋㅋ
    iami님 일빠 상으로 주문하신 커피에 덤으로 30g 더 드리겠습니다.ㅎㅎㅎㅎ

    어저께 어머니 감기 걸려서 콧물 줄줄 흘리시면서 김치 속 넣으시는데 저는 고무장갑 벗고 보쌈에 배추속에 싸먹느라고 정신이 없었어요. ㅋㅋㅋ
    김장이 끝났는데 배가 어찌나 부르던지요...

    채윤이는 오늘 아침 '엄마, 어제 그 하얀 김치좀 줘' 그래요. 그 햐얀 김치란 백김치가 아니라 절인배추죠.ㅋㅋㅋ 국에 말아서 그 절인배추 한 접시를 먹고 등교를 했어요. 아우, 채윤이 먹는 취향이 어찌나 아줌마 취향인지.ㅋㅋㅋ

    김장 때는 그 맛이 최고죠!^^
  • 프로필사진 forest 2009.11.19 10:55 하하... 수정 키~
    한 수 놓쳤습니다. ㅋ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09.11.19 11:16 신고 그니깐요.ㅋㅋㅋ
    iami님은 진정한 댓글계의 진정한 winner!
  • 프로필사진 forest 2009.11.19 10:57 김장 포스팅, 정말 공감 백배~
    정말 시어머님 입장에서 보면 참 예쁜 며느리네요.
    전 어찌나 툴툴거리면서 했는지, 얼굴에 다 쓰여있었는데 말이죠...ㅋㅋㅋ
    김장 뒤 보쌈, 이건 환상의 짝꿍이랍니다. 쩝~^^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09.11.19 11:14 신고 히야, 이젠 며느리 마음보다 시어머니 마음에 가까운 발언을 하시는데요...ㅋㅋㅋ

    그나저나 바빠서 아직 김장 생각도 못하시죠?
    김장 하시는 날은 사정거리 안에 있으니깐 불러주세요.
    배추 속 넣는 척 하면서 보쌈 좀 얻어먹에요.ㅎㅎㅎ
  • 프로필사진 yoom 2009.11.19 12:09 아...김장김치에 삶은 돼지고기..
    목탑니다..--;;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09.11.19 12:27 신고 아, 한 입 싸서 어떻게 입에 넣어주고 싶군하!
    ㅠㅜ
  • 프로필사진 입맛 다시는 굥 2009.11.19 16:34 으아~ 사진 보고 아 군침 돈다 했는데 ㅋㅋㅋ
    윰언니 댓글에 침이 질질....ㅋㅋ
  • 프로필사진 larinari 2009.11.22 19:07 ㅋㅋㅋㅋ
    사진이 아니라 윰언니 댓글에 침이 고이니?
  • 프로필사진 호호맘 2009.11.19 17:41 오늘 동네맘들이 애낳기전에 고기먹여준다고 고기부폐에 갔습니다.
    흐흐... 다들 불판에 김치를 익혀서 맛나다고 저보고 싸먹으라는거
    두눈에 힘을 팍팍 주며 사양했슴당...
    애낳을날 몇일앞두고 김장을 3일동안 하고왔는데 또 김치를 먹으라니...
    약간의 화도 냈슴돠~~ ㅋㅋ

    울 시엄니 시이모님하고 속넣으시면서 큰집아가씨네 시어머니 흉을 보셨습니당...
    "이상한 시어머니두있다구 두며느리가 다 만삭인데 불러다가 김장시켜가지구
    큰집애가 조산을 했잖아. 별난 시어머니두 다있다... "며 제~~앞에서 흉을 보시더군여...
    매년 김장때마난 나오는 이야기지만 올해는 저두 만삭인데... 우찌 내앞에서 그런 험담을....
    호야아빠에게 이야기를 했죠...
    "어머님 저도 낼모레 애낳으러가는 만삭며느리라구여..."라는 말이 입안에서
    계속 맴도는데 꾸~~욱 참았다구... 이모님앞에서 어머님 망신시키기좀 그렇구해서...
    내년에 또 그런 말씀하시면 그래야졍..."어머님 저두 그때 만삭이였잖아여~~"라궁~~ㅋㅋ
  • 프로필사진 larinari 2009.11.22 19:09 가끔 어머님들 그렇게 지금 당신이 하시는 말씀이 바로 당신을 두고 하시는 말씀인걸 너무 민망하게 밀고 나가시는 경우 있어. 인정! 나도 많이 겪었음.ㅎㅎㅎ
    할 수 있다면 그 자리에서 웃으면서 '어머나, 어머니 저도 만삭이예요' 이럴 수 있음 좋은데 그게 안된다는 거지. 문제는! ㅠㅠ
  • 프로필사진 2009.11.19 17:59 비밀댓글입니다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09.11.22 19:10 신고 하이고, 우리가 이것두 동병상련이었군요!^^
  • 프로필사진 BlogIcon 采Young 2009.11.19 20:57 신고 방금 밥먹었는데 또 군침도는 건..ㅠ
    하얀김치..김치 속..돼지고기..
    돼지고기..돼지고기...ㅋㅋㅋㅋ

    저희 목자모임할 때 먹었던 김치찜
    묵은지 고등어 김치찌게. 김치말이 국수...
    와우..다 사랑이 담긴 김치였군요 ^^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09.11.22 19:11 신고 맞어, 바로 그게 다 출처가 어머님이란다.
    친구분들 친척분들께도 얼마나 소문을 내놓으셨는지..
    '묵은 김치 많으면 우리 며느리 주라'고..ㅎㅎㅎ
  • 프로필사진 BlogIcon 뮨진짱 2009.11.19 21:50 신고 매일 먹는 김치에 한국 어머니들의 이러한 사연이 담겨있는줄 ㅎㅎㅎ
    김치 감사하게 먹겠습니다~ㅋ

    파김치 좋아하는 뮨진짱의 어머니는 늘 파김치를
    그렇게 손쉽게 담아주시는데...
    엄마한테 김장과 관련되 사연 있냐구 여쭤봐야겠어여 ㅋㅋ
    급 궁금해졌다눈~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09.11.22 19:13 신고 뮨진짱 파김치 좋아하는구나.
    나 예전에 파김치 진짜 좋아했거든. 그래서 엄마가 따로 해주고 그랬어. 어렸을 때는 머리부분은 못 먹고 엄마가 먹어주고 난 이파리 부분 먹고...
    결혼하고 시댁은 파김치, 갓김치 이런 걸 아예 안드시더라. 덩달아 나도 요즘은 파김치를 잘 안 먹게 된다는.
    -.-
  • 프로필사진 hs 2009.11.20 08:31 축하합니다.
    이제야 프로 주부가 되신 건가요?
    김장도 혼자 다 하시고.....
    주변에 보면 친정이나 시댁에서 가져다 먹는 분들은 결혼 1~20년이 돼도 김치를 못 담그는 주부들이 예상외로 꽤나 있던데.....
    남자들은 군대가서 적응하기 위해 힘든 것 처럼 여자들은 시집가서 새로운 가족들과 어울려가며 적응하는 것이 많이 힘들죠?

    김치 맛나게 많이 드세요. ^*^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09.11.22 19:14 신고 아니... 그러니까 제가 혼자 한 게 아니고 주로 어머니가 다 하시고 저는 동참만...ㅋㅋㅋ
    어머님이 김치냉장고 바꾸시는 바람에 어머니 쓰시던 큰 김치냉장고가 저희집으로 오거든요. 그래서 혼자 김치를 좀 해볼까 생각중이긴해요.ㅎㅎㅎ
  • 프로필사진 BlogIcon *yoom* 2009.11.20 11:58 신고 근데 모님 블로그 들여다 보다가 회사 일로 돌아가면
    하얀 화면이 너무 눈부신거 있죠..ㅋ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09.11.22 19:14 신고 이게 카페 포스팅에는 어울렸는데 김장 얘기하고는 쫌 아니고...기본적으로 너무 어둡지? 고민...
  • 프로필사진 2009.11.21 14:59 비밀댓글입니다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09.11.22 19:15 신고 딱히 보태신 것 없사옵니다.ㅎㅎㅎ
    염려 마시고용~^^ 감사한 마음 커요.
  • 프로필사진 hope 2009.11.29 20:26 주말이면... 긴장되는 김장ㅋ
    저도 '하필 주말이면..'이라는 말이 왜이리도 공감이 될까용? 뭐 아직 제대로된 김장파트너(?)를
    해 본 적이 없어요. 허나 늘 김장철이 찾아오면 죄인이 되는 듯한 이 내마음이란...
  • 프로필사진 larinari 2009.11.29 23:23 지나고나서 생각해보면 어차피 못한단 소리 못할 거, 적극적으로 달려들어 하고나서 남편 품에 안겨서 우는 게 실보다 득이 많은 선택인 것 같애.
    그렇게 시간을 지내다보니 어머님이 먼저 알아서 내 형편 알아주시는 날도 오더구만.

    그러나 같이 살면서, 그것이 일상일 때 그런 맘 먹기는 쉬운 일이 아니지. 힘 내. 토닥토닥...
  • 프로필사진 덕소아지매 2010.08.04 19:06 김장김치에 삶은돼지고기 아하 군침돈다.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10.08.09 12:14 신고 ㅎㅎㅎㅎ 덕분에 이 여름에 김장 김치를 다시 한 번 쳐다보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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