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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여정

안팎으로 초록

larinari 2019.08.04 22:10




아침에 눈을 뜨면 창 밖 앞산의 푸르름에 인사를 한다. 그 인사는 짧다. 이내 고개를 숙여 창가의 화분에게 굿모닝! 기나긴 굿모닝 인사다. 한 놈 한 놈 건강을 살핀다. 제 몫의 푸르름을 유지하는지, 잎은 탱탱한지. 그러며 어느 놈이 목이 마른지 알게 된다. 핸드드립 동포트(꼭지 부분 가늘어 천천히 물주기가 딱이다!) 목은 마른 것 같진 않은데 어쩐지 생기를 잃은 것 같은 녀석도 있다. 이유는 알 수 없다. 원인을 모르니 대응도 할 수 없다. 그저 소성케 되길 기도한다. 앞산 푸르름을 배경으로 잘 자라는 화초들 덕에 아침마다 생명의 기운을 받는다.


'바쁘실 텐데 어떻게 이렇게 화분을 잘 키워요' 집에 오신 분들이 빈말인지 아닌지 칭찬을 하신다. 화분이 울고 보채는 것도 아니고, 등원 하원 시간 챙겨야 하는 애들도 아니고, 세 끼 밥을 먹이거나 목욕시킬 것도 없으니 바쁘다고 돌보지 못할 애들은 아니다. 아침에 잠시 눈을 맞추고 가끔 사진을 찍어주면 되는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 집 화초가 잘 되는 것은 인정! 내 마음의 정원이라 여기고 싸구려 화분 몇 개라도 가까이 두고 돌보는 일상이 오래다. 어느 때부턴가 수월하다. 그다지 힘을 쓰지 않는데도 말이다. 나, 힘도 안 들이고 화초 잘 키우는 여자!


신혼 초, 노란 벽지 집에서 처음으로 화초를 들이던 때나 지금이나 죽어 나가는 애들은 비슷하다. 조금 줄었을 수도 있겠다. 잘 돌본다고 돌보지만 어깨를 축 늘어뜨리다 결국 고개를 푹 꺾어버리고 마는, 급기야 시들고 마는 애들은 어쩔 수 없다. 화초 키우기가 수월해졌다 느끼는 지점이 분명하다. 죽어 나가는 화초에 대한 과한 죄책감을 놓으면서부터이다. '에고, 또 죽였네! 난 정말 화초를 못 키워, 다 죽여!'에서 '죽을 놈은 죽고 말더라' 하는 마음이 되니 거짓말처럼 화초 잘 키우는 여자가 되었다.


변화의 방향이 밖에서 안인지, 안에서 밖인지는 모르겠다. 화초가 아니라 사람 관계에서도 다르지 않으니 말이다. 젊은 날부터 '관계의 실패자다'라는 자의식으로 살았다. 알고 보면 실패한 관계 하나 둘이다. 모든 관계를 다 잘할 수는 없구나! 불가능한 목표였구나, 깨닫게 되면서 과도한 힘이 빠져나간 것 같다. 착한 크리스천 강박에 대한 인식이 생겼다고 말해도 좋다. 가장 확실한 표현은 내 한계를 인정하게 된 것이다. 모든 사람과 좋은 관계일 수는 없어!


이렇듯 단순한 진리를 알아듣기까지 얼마나 기나긴 고통의 시간이었던가. 자기혐오의 시간이었던가. 자아팽창의 시간이었던가. 그 시간을 통과하며 관계에 대해 쓰고 강의할 수 있게 되었다. 관계의 실패자가 관계 강사가 되었다니! 관계의 실패자일 때나 관계 강사인 지금이나 실패하는 관계는 비슷할지 모른다. '에고, 또 실패했네, 역시 나는 관계의 실패자야'에서 '내가 애써도 안 되는 관계가 있더라, 잃을 사람은 잃을 수밖에 없더라'하는 마음이 되니 거짓말처럼 사람을 좀 아는 여자가 되었다. 


사람에게서 배워 화초를 잘 키우게 된 것인지, 화초를 키우다 사람을 배운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디 한 방향이겠는가. 안팎을 오가며 습득하게 되었겠지. 누가 뭐라 하지도 않는데 말라죽은 화분을 숨기고 싶었다.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누가 뭐라 하지 않는데 내 안의 내가 마구 비난을 퍼붓는 것이었다. 내가 사람인 줄 모르는 탓이었다. 단번에 예수님처럼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탓이었다. 이제야 사람인 줄 안다. 사랑과 미움을 동시에 가진, 희망과 절망 또한 한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죽고 싶지만 떡볶이도 먹고 싶은 사람인 줄 안다.


창밖이 저렇듯 푸른 산인데, 창가의 화초 또한 저렇듯 싱싱한 초록이라니! 

내 눈 앞의 풍경이라니! 토요일 오전, 나의 한가한 일상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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