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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여정

야곱의 상처입은 엉덩이

larinari 2014.09.03 14:40

 


계속 컨디션이 안 좋더니 어제부터 정식으로 몸살감기다. 남편이
'병원에 꼭 가' 하고 나갔다. 그러면 괜히 걱정을 끼치고 다시 걱정하는 말을 들으며 애정을 확인하고픈 유치한 마음으로 안 가고 버티기 일쑤다. 어제는 여유있게 앙탈을 작당할 처지가 아니었다. 진통제라도 먹어야 살겠기에 내 발로 병원에 가 약을 받아왔다. 약 먹고 잠시 눈을 붙이니 거짓말처럼 두통도, 눈이 아픈 것도, 근육통도 가시는 것 같았다. 그렇게 어제 이후로 약발 리듬에 기대어 지내고 있다. 약기운 오르면 잠시 빨래도 돌리고, 약기운 떨어지면 다시 침대에 코를 처박고 엎드렸다가 베개를 머리에 올리고 압박을 했다가, 잠이 들었다가. 환자놀이 하기에 딱 좋은 날씨다. 아침에 페북을 열었는데 강준만의 신작 <싸가지 없는 진보>에 대한 두 줄 짜리 평을 보고 빵터졌다. '강준만은 책 좀 그만 내고 자기성찰의 시간을 좀 갖길' 이란다. 거기다 댓글을 달았더니 '언니는 자기성찰 그만 하고 책 좀 더 내세요' 란다. 순간적으로 환자놀이를 잊고 빵터져버렸다. 감기몸살까지야 모르겠지만 최근 나를 못살게 구는 것이 애매한, 어설픈 자기성찰의 덫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던 차였다. (내가 성찰적인 삶을 잘 살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자기성찰'에 함몰되어 있다는 뜻이다) 개인적인, 신앙적인, 교회적인, 국가적인 모든 이슈를 통해 자기성찰의 길만 찾으려는 내가 좀 미친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게 제대로 가는 건가 싶기도 하고. 무엇보다 참 외롭다고  느낀다. 이 와중에 읽던 책의 글귀는 나를 두 번 죽이고 있다.


얍복강가에서 형 에서를 만나러 가기 전날 두려움에 휩싸인 야곱은 밤새도록 누군가와 씨름을 하였다. 융 심리학적 해석은 야곱의 자아(Ego)가 가장 심원하고 깊은 자기(Self)와의 싸움을 했다는 것이다. 이 싸움 끝에 겨루던 자는 야곱의 엉덩이 뼈를 치고 떠난다. 때문에 야곱은 다리를 절게 되었다고 한다. 이 사건에 대한 존. A. 샌포드의 해석이다.


여기서 우리는 자아가 자기(Self)에게 상처입은 것을 볼 수 있다. 무의식과의 깊은 만남은 상처를 남긴다. 그런데 그 상처를 통해 무의식의 생명과 에너지가 흘러들게 된다. 야곱의 상처 입은 엉덩이는 그가 지금 하나님과 만남으로써 얻게 된, 그가 감당해야 할 신성한 상처를 표상한다. 그러나 내면의 요구가 무엇인지를 의식하게 됨으로써 자아가 그 상처를 보살필 수 있는 한, 그것은 신경증적이고 극심한 상처는 아니다.
(나를 털썩 주저 앉힌 건 이 부분부터이다)
이런 식으로,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계속해서 내적인 삶과 관계를 맺어야만 하는 운명이다. 그들은 매일 그들의 꿈의 의미를 찾아야 하든지, 아니면 기도나 명상을 하든지, 아니면 그들 삶의 필요한 부분을 스스로 치유하는 다른 형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들은 그들 안에 있는 신성한 힘에 의해 상처받은 적이 없는 사람들이 사는 방식으로는 활력 있는 삶을 살 수 없다. 그러한 사람의 그의 상처를 무시하며 다시 병에 걸리고 만다. 즉 상처가 더 악화돼서 그에게 해를 끼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상처가 보살핌을 받게 되면, 그것은 새로 됨과 생명의 원천으로 밝혀질 것이다. 그것을 통해 새로운 삶의 차원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고, 의식의 지평이 확장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신성한 상처다.
<융 심리학과 치유> 중.


엉덩이 뼈의 골절로 찔룩찔룩 걸어가는 야곱의 모습이 내 모습 같다. 얍복강을 건너야 하고, 그 너머에는 두려운 에서 형이 기다리고 있고, 챙겨야 할 식솔은 많다. 하나님과 씨름하여 얻은 것이 형으로부터 보호해주시겠다거나 무찔러주시겠다는 약속도 아니고, 고작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이름이 바뀌는 것이었다. 그느무 이름이 뭐라고 .그리고 찔룩찔룩.... 아, 하나님은 늘 이런 식이셔!  야곱은 찔룩찔룩. 나는 크르릉 크르릉, 코 푼 휴지로 성을 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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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Comments
  • 프로필사진 아우 2014.09.06 08:36 내적인 삶과 관계를 맺어야만 하는 운명이라...거 참 애닯네. 글드래도 신성한 상처를 잘 보살펴주면 새로운 삶의 차원이 있다니까 고고싱 하는 걸로?! 확장된 의식으로, 가만 앉아서도(?) 많은 이들을 감화하는 언냐가 될 줄로 믿슙니다. 고로, 일단은 상처 많이 받으시길~!^^ 이거 완전 덕담임. 나 때리지 마!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14.09.06 11:49 신고 나 이러다 마담 프루스트 될 것 같지 않아? 비밀의 정원 차려놓고?ㅋㅋㅋ 알아주는 아우들 있어서 털고 일어나 씐나게 고고씽 하기로 했음.
  • 프로필사진 BlogIcon @amie 2014.09.07 22:55 신고 나 언니 글 다 읽는데 왜 이 글을 놓쳤을까요? 영광스럽게 언급까지 되었는데! 최근에 저는 그닥 친하지는 않은 (하지만 좋아했던) 부부의 송별회에서 눈물이 나오는 바람에 굉장히 당혹스러웠어요. 평소 제 이미지가 있잖아요. ㅋㅋ 왜 울었을까. 아마 사람들도 의아해했을 거에요. 하지만 가장 의아한 건 바로 저 자신이에요. 내면에 대체 뭐가 있는지 탈탈 다 꺼내서 삭제도 하고 밑줄도 긋고 그러고 싶은데 살면 살수록 이상한 게 자꾸 튀어나와서 슬프네요.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14.09.10 20:44 신고 평생 내면 탈탈털기만 하면서 산다해도 다 털어지지 않는 것이 우리 속일 거야. 튀어나온 것, 그것을 붙잡고 들여다볼 필요는 있지. 괜히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가장 단서를 많이 가지고 있고, 그나마 다루기 쉬운 놈이라 탁 튀어나온 걸 거야. 그거 잘 붙들면 줄줄줄 달려 나올 수도 있어. 나도 실은 속에 튀어나온 놈이 도대체 뭔지 정체를 모르겠어서 끙끙거리다 아프고 그랬네. ^^ 이제 몽타쥬 완성해가는 중.
  • 프로필사진 BlogIcon 3jin 2014.09.24 01:52 이 글이 생각나서 또 잠들기 전에 찾아왔어요.ㅋ
    그런데 10번을 읽어도 밑에 융 심리학 밑줕이 뭔 말일까.. 생각해봅니다.
    왜냐하면 저 환도뼈 아웃 상태이거든요ㅋㅋ
    아, 하나님 지팡이를 의존하는 이스라엘로 살 수 있을까요 ㅠㅠ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14.09.24 09:32 신고 상처받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
    하나님 지팡이에 의존할 때 내게 실질적으로 오는 힘은 그것 같애.
    거절당해도, 비난받아도, 실패해도 상처받을지언정 내 존재를 상하게 하지는 못할 거라는 믿음 말이야.^^
  • 프로필사진 BlogIcon 한강 2014.11.26 10:14 상처입은 사람이 강한 이유를 찾았어요 내적성찰이란 key를 갖고있으니..어제 누구 좀돕다가 왕창 상처입어서 패잔병처럼 끙끙대며 아팠는데 이 글에서 해답을찾고 다시 봉사하러가야겠네요^^어려울때 사전처럼 펼처보고 힘을얻으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엊저녁 커밍아웃한후 봇물터진듯하네요~~ㅋㅋ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14.11.27 15:25 신고 김영봉 목사님이 쓰신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아프다> 책 제목이 생각나요. 그런가 봐요.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상처받고 아픈가 봐요.
    덕분에 저도 이 글 다시 읽었어요. 한강 님 댓글을 읽고 다시 읽으니 쓸 때는 쓸쓸하고 외로운 마음 컸는데 나름 다시 위로가 되네요. (자화자찬 같기고 하고...ㅎㅎㅎ) 감사해요.
    이왕 터진 봇물 흘러흘러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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