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 말고는 가르칠 게 없었습니다.


영화 [어느 가족]에서 튀어나와 심장에 꽂힌 한 문장이다.

'어느 가족'의 모양새는 엄마 아빠, 아이들과 할머니가 사는 가족이지만 알고 보면 가족이 아니다.

피 한 방울 섞인 것 없는 어른 아이 여섯의 집합이다.

본인들은 끝까지 아니라 우기지만 법적으론 유괴로 얻은 아이가 있고,

그 아이들에겐 도둑질을 가르쳐 생필품을 얻는다.

거주하는 집의 소유주이며 가족의 안정적인 수입원인 연금 수혜자인 할머니도 있다.

이 할머니의 행적도 그리 정상적이진 않다. 


교회에서 잘 쓰는 표현으로 '깨어진 세상의 깨어진 가족'이라고 하면 딱 어울리겠으나

알고 보면 사랑하는 아름다운 가족이다.

법의 잣대로 범죄자 집단으로 치부되어 그야말로 가족이 깨어지고 뿔뿔이 흩어지며 영화는 마친다.


제 집으로 돌아간 막내 유리가 그린 바닷가 파도 놀이 그림에 울었다.

깨어져 없어진 그 아름다운 가족이 그리워 내가 울었다.


모양새 그럴 듯한 역기능 가정과

일그러지고 보잘 것 없는 사랑의 가정 사이 

진정한 가정은 어디 쯤에 있냐고 '어느 가족'이 내게 묻는다.


부모교육 강의나 내적 여정 안내를 하면서 '나의 가족 이야기'는 피해갈 수 없는 주제이다.

수많은 가정을 만난다.

그럴 듯한 가족으로 보이고자 덮어 쓴 포장지 아래 질식하여 메말라가는 아이와 어른을 본다.

그럴 듯하게 보이는데 에너지를 소진한 부모가 자녀를 망친다.

아이의 바램이 어디 있는지에 쓸 관심과 에너지는 없다.

그런 엄마는 영화 속 유리의 엄마처럼 폭력의 화신이 되고 만다.

영화 속 유괴맘 노부요의 말처럼 사랑해서 때린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아이에게 도둑질을 시키고 양심의 가책은 없었냐는 형사의 질문에

좀도둑 아빠 오사무가 말한다.

그것 밖에는 가르칠 것이 없었습니다.

그렇다. 내가 없는 것을 줄 수는 없다.

내게 없는 것을 돈으로 사서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모가 아이를 질식시킨다.

자신이 줄 수 있는 것을 아는 부모는 얼마나 현명하고 지혜로운가.


그리하여 깨어진 가족의 좀도둑 엄마아빠의 자녀교육의 어떻게 되었나?

깨어진 가족을 깨트린 것은 아들 쇼타이다. 

도둑질 하다 일부러 잡히는 것으로 어느 가족을 끝낸다.

동생에게 도둑질 시키지 말라는 문방구 할아버지의 유언 같은 말 때문이다.

사춘기를 지내 어른이 되는 쇼타는 스스로 판단하게 된 것이다.

이상한 사랑의 가족을 잃을 수도 있지만 여기서 끝내야 한다고 용기를 냈을 것이다.

얼마나 잘 키운 아들인가.

얼마나 멋진 자녀교육인가.


폭력적인 정상 가정으로 돌아간 유리의 일상이 아프다.

그것이 현실이다.

유리가 그린 그림을 다시 보러, 

아니 그 행복한 바다 놀이 장면을 다시 보러,

깨어진 아름다운 어느 가족을 다시 보러 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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