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 현실 같은 꿈을 꾸면서 깼다. 마지막 시간처럼 동생 전화로 엄마랑 통화한다. "누나, 엄마가 아무래도 안 되겠대. 누나 도착할 시간까지 시간이 안 되겠나 봐. 하고 싶은 말이 있대" 마지막 통화 때 그랬던 것처럼 쉬익쉬익 숨 찬 호흡소리가 들린다. "왜애? 엄마 무슨 얘기 하고 싶어? 보고 싶다고? 사랑한다고?" 그새를 못 참고 내가 먼저 떠들어댔다. 까불거리면서. 잠을 깼다. 가슴 부위에 아픈 침을 여러 방 맞은 것처럼 얼얼하다. 찔리는 순간의 날카로운 통증이 지나고 오래갈 만성 통증이 된 것 같다. 그 두꺼운 통증에 잠이 깼다. 왜 까불었을까? 가만히 기다렸어야지. 왜, 왜. 엄마 무슨 말하고 싶었어? 다시 잠들게. 하고 싶었던 말 해 줘. 그럴수록 잠은 멀어지고 가슴에 남은 통증과 함께 정신이 말똥말똥. 화가 나서 벌떡 일어났다. 6시 30분.

 

팽목항 예배에 간 적이 있다. 예배 마치고 은화 엄마 등 가족들과 대화 시간이 있었다. 아직 딸의 몸을 찾지 못해 정신이 반쯤 나가 있는 은화 엄마가 질문을 받고 많은 이야기를 했다. 주로 세월호 인양 작업에 관한 내용이었다. 인양, 안전한 인양에 목숨 거는 이유는 딸의 몸을 찾기 위해서이다. 목까지 찬 질문이 하나 있었다. 인양을 위해서 날씨가 어때야 하는지, 배 주변으로 안전망을 어떻게 설치해야 하는지 이런 질문 말고. "은화는 어떤 아이였어요? 어떤 딸이었어요?" 이게 정말 묻고 싶었다. 세월호 인양에 대한 열정은 딸의 몸에 대한 열정이고, 뼈 한 조각으로 남은 몸에 집착하는 것은 은화라는 존재를 향한 열정 아닌가. 묻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때 물었어야 했다. 

 

엄마에 대해 누가 좀 물어봐 줬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장례식도 못한 장례는 어떤 장례인지. 엄마 죽고 난 이후의 시간은 어떻게 살아지는지. 엄마를 어떻게 사랑했고, 어떻게 미워했는지. 뭐든 엄마에 대해 말을 좀 시켜줬으면. 아무도 묻지 않는다. 내가 은화 엄마에게 그랬던 것처럼 용기가 나지 않는 걸까? 죽음 같은 비극은 입에 올리지 않고 멀리 쫓아버리는 것이 나은 거라서? 그렇다면 엄마 얘기 말고 그냥 엄마 잃은 사람('아이'라고 쓸 뻔 했다)으로 조금 불쌍히 생각해주면 어떨까. 

 

엄마가 죽었는데 우리 엄마에 대해 묻지도 않고 무심히 돌아가는 세상이 서럽다. 엄마가 죽었는데 개나리가 피고 활짝 핀 목련이 달빛에 아름답다니. 치과에 가서 접수를 하다 이렇게 말할 뻔 했다. "저의 엄마가 돌아가셨거든요" 엄마가 존재했었다는 것, 그리고 사라졌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 엄마에게 미안하다. 미안함을 달래고자 쓴다. 그리움에 압사하지 않으려 쓰고, 부재하는 엄마의 존재를 확인하려고 쓴다. 아니 그냥 쓰기라도 해야 살 수 있어서 쓴다. 

 

장례식 마치고 쓴 '세상에서 가장 긴 장례식'이 다음 메인에 걸렸었다. 블로그 하루 유입자가 3만 명에 가까웠다. 모르는 이들의 댓글 몇 개가 달렸다. 기가 막힌 댓글도 하나 있었는데 엄마의 죽음을 욕되게 하는 것 같아 바로 삭제했다. 댓글이 욕은 아니었다. 기독교인이 사용하지 말아야 할 용어를 글에 썼다고 나무라는, 모르는 사람의 말이었다. 욕보다 더 모욕적이었다. 이런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쓰지 말아야 했고, 블로그든 페북에든 발행하지 말아야 했다. 아침마다 쓰는 이 글들도 누군가에게 뉴스, sns 타임라인, 여기저기 떠다니다 스쳐지나는 눈팅의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엄마의 죽음을 누군가 안다고 해도 내 맘 같으랴. 딸과 같으랴. 평생 엄마의 죽음을 가불하여 두려워 했던 딸의 마음과 같으랴. 위험을 무릅쓰고 쓴다. 

 

텐도 아라타의 소설 『애도하는 사람』에서 시즈토는 애도 여행을 다니는 사람이다. 모르는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신문에 난 죽음을 찾아 떠돈다. 경찰서에 잡혀가고 신원조회를 당하면서 이 이상한 일을 한다.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스스로도 자신의 행동을 이해시킬 수 없어서 "그냥 병으로 생각해주세요"라고 말하며. 그가 애도의 장소를 찾을 때마다 주변을 배회하며 죽은 이에 대해서 묻는다. 

 

그 사람은 누구에게 사랑받았습니까?
누구를 사랑했습니까?
누가 그녀에게 감사를 표현한 적이 있습니까?

 

어느 누가 시즈토처럼 내게 물어주겠는가. 당신 어머니는 누구에게 사랑받았습니까? 누구를 사랑했습니까? 누가 그녀에게 감사를 표현한 적이 있습니까? 내가 시즈토가 되어 내게 질문하려고 한다. 언제까지? 아침에 눈을 뜰 때 가슴의 통증이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아니, 최소 39년. (아버지 죽고 일기 쓰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그 맥락의 글을 쓰고 있다) 어쩌면 내가 죽을 때까지. 그러니 블로그에 오신 당신, 우리 엄마 죽은 얘기 듣고 싶으면 오시라. 죽음 같은 인생의 비극을 듣는 것이 싫다면 오지 마시라. 우리 엄마가 당신에게 특별한 사람 아닐지라도, 심심풀이로 대충 읽더라도 무심히 지나가진 마시라. 못 본 척하지 마시라. 애도의 마음으로 저 질문을 한 번쯤 마음으로 해주시라. 우리 엄마 아니라 당신의 엄마, 아니 모르는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게 될 것이다. 모든 죽음은 애도 받을 가치가 있다. 심심풀이로 읽은 글에 과한 요구인 듯 부담스럽다면, 하트라도 눌러주시든가. 영혼은 담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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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3.26 15:04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20.03.27 10:00 신고

      고마워요. 내밀한 고통을 쓴다는 것, 써서 아무나 보는 것에 내놓는 것 자체가 불경스러운 일처럼 느껴져요. 그럼에도 쓰고, 주목받고, 알아주는 말을 듣고 싶은 양가감정. 글이 내겐 이런 것이네요. 기도 힘입을 게요.

  2. BlogIcon pratigya 2020.03.26 19:04 신고

    언니~ 완전 멋진 우리 언니~~~
    언니 계속 써주세요. 언니가 맘껏 슬퍼하면 나도 그럴 수 있을 거 같아서 슬퍼할 자유가 생길 것 같아서요..
    어떤 삶을 사셨는지, 어떤 분이셨는지, 저도 만나고 싶어요.
    언니~ 우리 울면서 쓰다가 또 웃으면서 쓰고 또 울면서 쓰고 그렇게 계속 써요~~~

    • BlogIcon larinari 2020.03.27 10:01 신고

      그래, 쓰다 보면 알게 되겠지? 쓰다 보면 알게 될 거야!

  3. 2020.03.26 21:38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20.03.27 10:09 신고

      엄마 어디 갔을까? 천국이 어디이길래, 부활이 어떻게 된다는 거라는 거야. 천국 소망, 부활 신앙 다 잃어버린 것 같은 지금. 함께 느껴주시니 고맙습니다. 우리 엄마가 사랑받고 있다고 느껴져요.

      저 한때 엄마 돌아가셔도 슬프지 않겠다. 엄마 죽으면 울지도 않겠다 다짐했던 시절 있었어요. 아버지 돌아가시고 "이렇게 말 안들으면 엄마도 죽는다. 엄마 죽는 걸 보고싶냐. 엄마까지 죽으면 니들은 고아다" 이런 말 너무 많이 했거든요. 어떻게 저런 잔인한 말로 협박할 수 있을까. 사무치는 미움이 한 둘이 아니에요. 그런 엄마 충분히 미워할 수 있어서, 엄마가 오래오래 살아 충분히 미워할 시간을 줘서 다행인 걸까요?

  4. 2020.03.26 21:48

    비밀댓글입니다

  5. BlogIcon SJ 2020.03.26 23:53

    갈 수만 있는 거리에 있었음 사모님 꼭 안아주러 달려갔을텐데.. 글로만 소식 접하며 넘 맘이 아리고 먹먹하고...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 같은 순간에 또 '언어'가 아니고는 구구절절 표현할 길이 없을 것 같아 이렇게 꾹꾹 눌러 씁니다. 한 번도 뵌 적이 없지만 늘 글 속에서 너무도 생생하게 만나뵈었던 어머님. 사랑스러운 모습은 말할 것도 없고, '원망'같은 깊은 감정의 또아리를 풀어내는 그 순간에도 저는 농도 짙은 사랑을 읽었던 것 같아요. 충분히 슬퍼하시고, 마음껏 애도하시길 마음으로 빌어요. 그러다보면 '존재'가 없이 '기억'만으로도 담담히 살아갈 수 있는 날이 오겠지요.. 그 어느 때보다 신실님 어깨 감싸안아 주고싶은 하리니한겨리혜리니 맘 드림.

    • BlogIcon larinari 2020.03.27 10:15 신고

      감사해요! 글로, 글에 담긴 마음으로 이미 안아주셨어요. 곧 얼굴 볼 수 있다는 소식 들었어요. 드디어 혜린이를 안아볼 날이 오는 거예요! 하린이 한결이는 이제 제가 안아서 번쩍 들어올릴 수 없겠지요? 곧 봐요!

  6. 박정원 2020.03.31 10:39

    선생님..
    어머니 돌아가신 후로 선생님 생각 하루도 나지 않은 날이 없어요. 어떻게 지내실까.. 내겐 엄마의 부재의 연속인데 세상은 이렇게 잘도 굴러가네...하시면서 울고 계실까? 그래도 글은 쓰고 계시겠지...글로써 아픔을 토로 하고 또 선생님의 토해낸 글들로 읽는 사람들에겐 위로와 위안을 주겠지.....

    정말 그러고 계셨네요..
    그런데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 읽기 싫어져요. 저의 곧 다가올 일을 보는 것 같아서요,
    그런데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 더 읽고 싶어져요. 한 사람이 죽음을 통해 어떻게 다시 일어서고 새로운 사람이 되는지 보고 싶어져요.
    아픔을 통한 성숙에 대해 사람은 참 이기적이에요.
    나는 경험하기 싫고,
    내가 극복하고 싶은,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을 타자를 통해 대리만족만 하고 싶어하니까요.

    무슨 말이 위로가 될까 너무 조심스럽습니다.
    열심히 쓰세요 선생님.
    선생님이 잘 하시는 방법, 선생님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열심히 쓰세요.

    선생님이 쓰신 글 꾹꾹 읽으며 같이 눈물 삼켜 드릴께요.

    • BlogIcon larinari 2020.04.01 00:06 신고

      선생님, 고마워요! 결국 혼자 겪어낼 수밖에 없는 상실이고 아픔이지만 내가 한 발 앞서 잘 걸어가 볼게요. 어서 얼굴 보고 과정 시작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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