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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여정

엄마를 기다리며

larinari 2012.09.05 14:49

 


어렸을 적에,
정확히 말해서 중학교 1학년 이후다.
공부하는 게 힘들 때면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를 위해서,
오직 엄마의 명예를 위해서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대학으로 알고 있는 서울교대에 가겠노라고.


아버지 돌아가시고 고모들이 엄마를 무시했다.
무시해도 너~어무 무시했다.
아버지 추도식에 음식 많이 안차렸다고 엄마를 갈궜다.
갈궈도 너무 갈궜다.
돈을 너무 아낀다고 갈궜다.
엄마가 돈을 아끼는 유일한 이유는 나와 동생, 대학까지 가르쳐야한다는 일념이었다.


밤늦도록 공부하는 날엔
떡허니 서울교대를 간 나.
'역시 애들을 잘 키웠다.'고 엄마를 칭찬하고 부러워하는 고모들을 상상했다.


어쨌거나 다 늙어 천국을 몇 정거장 앞 둔 연세가 되어서도 고모들은 우리 엄마를 무시한다.
엄마가 원인 제공하는 면이 있다.
'푼수 이옥금여사'라 불리시는 분이니까.
그랬거나 말았거나 나는 이옥금여사의 딸이니 어쩌랴.


인공관절을 넣기 위해 수술실에 들어간 엄마를 기다린다.
수술에 대한 염려나 엄마에 대한 연민이 아니라 분노가 마구 일렁인다.
오래 묵힌 분노가 새삼스레 오르락 내리락 한다.



나는!
이 자리에서!
칼슘이 다 빠져나가 뼈가 주저 앉도록 열심히 살아온 우리 엄마,
그런 우리 엄마 인생에 경의를 표하지 않는 고모들을 고발하는 바이다.
아울러!
마흔 다섯에 낳아서 곱게 길러 시집 보냈으면 그만이지.
뭔 놈의 직장생활 한다고 지 딸까지 맡겨서 늙은 엄마 허리를 망가뜨린 나 자신을 고발한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뼈 속의 칼슘을 빨아다가 오장육부를 형성하고,
평생 엄마의 열정과 건강을 갉아먹으며
견고한 인생의 진을 쌓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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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Comments
  • 프로필사진 신의피리 2012.09.06 09:29 뼈속까지 개콘인 당신!
    당신 어깨 위를 누르는 책임감, 죄송함...
    함께 집시다!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12.09.06 09:39 신고 이 글이 마음에 걸려서 설겆이 하고는 얼른 들어왔어.
    '지울까?' 했는데 당신 댓글이 바로 전에 달렸네.

    수술실 앞에 혼자 앉아 있는데 나도 모르게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거야.
    고모들의 엄마한테 했다는 말 때문이었나봐.
    예전 일이 생생하게 떠오르면서 알 수 없는 분노에 사로잡히더라구.
    고모들이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분노였다는 것을 글 말미에서 알 수 있었어. 그리고 지금 다시 보니 확실히 엄마에 대한 미안함, 죄책감, 그런 것들이 분노로 올라왔나봐.

    가끔 생각지 않았던 글이 써질 때가 있어.
    어제도 그냥 폰을 꺼내서 그야말로 손가락이 쓰고 있었어.
    머리는 손가락을 못 따라가고....
    그러더니 저런 글이 포스팅 되어 있네.

    엄마 저렇게 된 이후로 자꾸 울컥울컥하는데 울 수도 없고,
    수술이 잘 됐다지만 그저 기쁘지만은 않고....
    자식된 죄인의 복잡한 심경인 것 같아.

    당신이 곁에 있어서 그나마 내가 의연하게 지낼 수 있을거야.
    고마워.
  • 프로필사진 손녀 No.2 2012.09.06 10:08 난 우리 고모가 너무 좋은데..
    울엄마와 작은엄마를 대하는 고모 모습을 보고, 우리 고모같은 시누이는 없다고 생각하며 우리 고모가 더 좋은데..

    저도 어릴적에 할머니를 대하는 고모할머니들을 보며, 뭣도 모르는 어린 나이었지만 무척 화가 났었지요. 그 자리에 안계셨던 아빠한테 주저리주저리 일렀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빠도 그분들에게 어찌할 수 없는 입장인데, 전해듣고 아빠 마음이 어떠셨을까 싶어요ㅠ.ㅠ

    고모!
    할머니 누구한테든 늘 그러시잖아요.
    '내가 신실이 안낳으면.. 저거(죄송!ㅋ) 없었으면 어찌 살았을까 몰라. 딸은 보물이여 보물. 무조건 딸이 있으야혀'

    모든 딸들이 부모님 소중하게 생각하지만, 감히 제가 말한건데.. 고모같은 딸은 찾아보기 드물어요~ 고모가 느끼는 마음의 짐의 무게가 할머니를 향한 사랑만큼일 것을 알기에 얼마나 무거울지...

    저도 어제 할머니 뵙고 나오는데, 수술도 잘되었고 계속 웃는 얼굴로 대해주셨는데.. 왜이리 눈물이 계속 나고 그러는지 잘 몰랐거든요. 아무래도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살면서 일년에 겨우 한두번 뵙는 죄송함과 아직도 저를 '울애기'라고 부르시는 할머니를 보니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엄마로서 느끼는 내안에 참고 눌러둔 설움이 올라와서 그랬는가봐요.

    고모! 외모도 비슷하고 키도 비슷헌디, 혈액형까지 같은 우리 고모!ㅎ
    오늘은 무거운 마음 내려놓고 평안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세요. 사랑합니데이~^^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12.09.06 10:42 신고 오늘 아침 먹으며 고모부랑 그런 얘기 했다.
    '지영이랑 지희랑 할머니 위해서 기도하고 마음 쓰는 거 보니까...
    어렸을 적 할머니 손에서 자란 그 정이 참 깊구나.'

    엄마가 복이 많으셔.^^

    함께 걱정하고 함께 눈물 흘릴 수 있으니 힘도 되고 위로가 된다. 그치?
    이제 병원으로 갈려고.
    가서 상황보고 해줄께.^^
  • 프로필사진 한숨 2012.09.06 23:08 조바심을 했는데 수술 잘 받으셨다니 안도의 한숨이 나옵니다.
    어제 친정엄마 모시고 병원가며 '설악산 단풍' 이야기를 했어요.
    내년에 두 분 어머니 모시고 넷이 차로 가면 좋겠다고.
    팥쥐같은 고모들까지 어쩌면 두 분 어머니 그렇게 닮으셨는지.
    어머님 차 안에서 찬송 부르시는 모습에 홀딱 반한 누가 얼른 깨끗하게 나으시기를 응원하고 있다고 말씀드려 주세요.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12.09.09 09:58 신고 감사 감사드려요.
    보이지 않는 응원으로 더욱 힘을 받으셨나봐요.
    재활치료가 힘들다고 하던데...
    엄마가 잘 견뎌내시고 내년 가을엔 설악산 꿈이 이뤄졌으면요.^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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