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어나기 한 시간 전 딸 채윤이가 제 블로그에 글을 썼다. '엄마'라는 제목으로 내게 쓴 편지이다.

 

엄마! 곧 있으면 엄마가 깨어날 시간이야. 엄마의 짧은 잠 끝엔 기나긴 슬픔이 기다리고 있겠지. 난 한 번도 그 시간을 엄마와 함께 해주지 못했어. 엄마가 그 어두운 세상에서 혼자 힘들어하는 걸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 요즘 열 시에 일어나면 마음이 불편한 이유가 이건 가봐. 엄마가 기나긴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는 편하게 잠을 자고 있었기에.

오늘 친구들이랑 밤새 수다를 떨고 다섯 시가 다 돼서야 잠자리에 들었어. 집에 있으면 이 시간에 깨어 있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인데 말이야. 잠을 자야 하는데 곧 깨어날 엄마를 생각하니 그럴 수가 없네.

 

오늘은 글조차 쓸 수 없겠구나, 하며 눈을 떴다. 며칠 동안 눈 뜨자마자 따뜻한 차 한 잔 들고 키보드에 앉으면 글이 흘러나왔다. 글이 고여 있는 가슴의 통증이 있다.  물 흐르듯, 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고름이 흐르듯,이다. 찐덕찐덕한 고름이 자연스럽지도 아름답지도 않게 찌질찌질 흐르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흐른다는 것. 아침에 써놓은 글을 오후에 읽으면 별 생각이 다 든다. '엄마가 죽어도 글이 써지는구나. 비정하다, 비정해' 살아내야 할 하루가 끝나간다는 안도감에, 어쩌면 아침에 짜낸 고름 덕에 말짱한 생각도 스치는지 모르겠다. 아니, 그 생각조차도 말짱하긴 한 건가. 

 

오늘 아침엔 환부에 글이 고이지 않았다. 서늘한 가슴도, 고통스런 그리움도 아니고 텅 빈 기상이었다. "글도 쓸 수 없겠구나. 하루를 어떻게 보내지?" 몸부림도 눈물도 없이 죽은 듯 누워 있었다. 곁에는 아침마다 하는 미친년 의례에 사제로 동참하는 남편이 있다. 몸부림과 울음이 끝날 때까지 가만히 안아주고는 "됐어, 이제 일어나. 울었으니 됐어" 하고 선언한다. 정말 사제의 말처럼 힘이 있다. "나가서 글 써" 하는 말은 거실로 파송하는 선언이다. 그 루틴도 없이 멍하게 누워 있는데 잠결에 습관처럼 안아주며 남편이 말했다. "세 번 울었어. 정신실 자다가 세 번 울었어." 그 말 또한 묘하게 안도감을 주었다.

 

울어 흘려보내지 못한 눈물이 고여 있다 고름이 되는가. 흘려보내야 한다. 가는 감정 붙들고, 오는 감정을 막는 것이 아프게 되는 지름길이다. 그렇게 배웠고, 배운 대로 가르치고 있다. 실은 어젯밤엔 잠을 잘 잤다. 잠이 드는 것도 수월했다. 자면서 꾸는 꿈은 굳이 프로이트의 말을 빌지 않아도 일종의 해소라는 것을 안다. 흘려보냄이다. 꾸고 나서 잊어버린 꿈처럼 밤에 세 번 운 것이 도움이 된 것 같다. 텅 빈 느낌이었지만 다른 말로 하면 가벼움이다. 눈을 뜨며 마음에 울린 '글을 쓸 수도 없겠구나'는 숨 쉴 공간이 생겼다는 말이기도 하다.

 

노트북을 켜는 대신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열었다. 구독하는 블로그에 새 글을 보니 채윤이가 쓴 글이 있다. 제목은 '엄마'. 채윤이가 밤새 깨어 보내주는 에너지로 내가 잘 자고, 자면서 감정을 흘려보냈을까. 그럴 것이다. 채윤이 뿐 아니라 글을 읽고 슬퍼해주는 분들, 손을 모아 함께 애도해주는 마음들이 흘려보내 주는 에너지일 것이다. 미친년 글쓰기 행위가 어떻게든 아침 첫 숨을 내쉬는 노력이라면 연결된 많은 이들의 인공호흡 같은 공감이 있다.    

 

엄마, 나는 요즘 엄마를 엄마라고 부를 때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 내가 엄마를 부를 때마다 엄마는 할머니가 떠오르지 앉을까. ‘엄마’라는 이 단어가 지금의 엄마한테 너무 아픈 말이진 않을까. 그러면서 어쩌면 엄마의 슬픔의 깊이를 조금 헤아릴 수 있는게 아닐까 싶어. 나한테, 그리고 엄마한테 ‘엄마’는 결국 같은 존재니까. 나에게 엄마만이 채워줄 수 있는 자리가 있듯이 엄마도 그럴 거라고 생각해. 그래서 나는 눈물이 나와. 할머니를 그리워하는 손녀의 눈물도 있지만 할머니를 떠나보낸 엄마를 향한 눈물도 있는 거 같아. 절대 내가 공감할 수 없는 감정은 아닐 테니까.

 

결혼하고 처음, 남편과 함께 하는 삶이 참 좋다고 느끼면 0.001초도 지나지 않아 두려움이 밀려왔다. 이러다 남편이 죽으면 어떡하지? 행복과 죽음에 대한 공포가 그렇게 함께 왔다. 아이들 태어나고 자라면서 한 해 한 해 지날 때마다 "휴우, 나와 남편이 우리 애들 이 나이까지 살았어" 비합리적인 안도감이다. 채윤이가 중학교 1학년이던 12월, 비합리적인 안도감이 도를 넘었다. 한참 사춘기였던 채윤이에게 올라오는 분노의 바닥에는 "너는 엄마 아빠가 살아 있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냐? 무엇이 결핍이냐?" 아이와 큰 충돌을 겪고, 12월 아버지 추도식을 지내고는 내가 알겠는 나의 비합리적 공포가 무서워 기도 피정에 갔다. 4박 5일 침묵 기도 속에서 아버지 장례식을 제대로 치르고 나왔다. 영적 여정에서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그렇다고 그 두려움이 사라졌다는 것은 아니다.

 

엄마의 죽음을 아버지의 죽음과 떼어 생각할 수 없다. 동시에 아이들 앞에 사는 내 죽음을 상상하지 않을 수 없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별의별 육아원칙을 생각했고 책을 썼고 강의도 하지만 무의식적 원칙은 '아버지 없는 아이로 키우지 않는 것'인지 모른다.  단순하고 쉽지만 결코 내 힘으로 지켜낼 수는 없는 원칙. 현승이 중학교 1학년을 지내며 "다 됐어! 이제 둘 다 그때의 나보다 컸어. 나도 잘 살아냈으니 잘 살 거야." 다시 안도했다. 한 해 한 해 지나며 "현승이가 중3이야. 벌써 2년이나 더 쌓였어."  "채윤이가 성인이야. 엄마 아빠 죽어도 슬프지만 잘 살아낼 수 있어." 의식화 하진 않았지만 무의식에서는 여전히 존재하는 두려움과 안도감이다. 

 

엄마를 잃고 미친 여자처럼 지내는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는 딸의 마음. 상상조차 못 해봤다. 그 엄마를 위로하려면 '엄마' 하고 불러야 하는데, '엄마'라는 말을 가장 아프게 겪는 엄마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마음은 상상도 못했다. 그러면서 제 엄마에 대한 마음을 비추어 엄마의 엄마를 향한 그리움을 다시 공감하고. 우리 엄마, 우리 엄마의 딸, 나의 딸, 내 딸의 엄마, 내 딸의 엄마의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죽을 것 같이 고통스러운 이름이다. 과거 현재 미래를 한 칼로 베어내는 이름이다. 아니 그냥 우리 엄마 얘기를 하고 싶다. 엄마 얘기를 더 더 많이 하고 싶다. 우리 채윤이는 아직 엄마가 있으니, 엄마가 떡볶이도 해주고, 엄마랑 같이 쇼핑도 하고, 긴 긴 얘기도 나눌 수 있으니. 우리 엄마 얘기를 써야겠다. 고름을 짜내고 짜내서 엄마 얘길 해야겠다.

 

엄마, 요즘 나는 ‘나의 하나님’이 아닌 ‘엄마의 하나님’을 찾아. 나는 늘 엄마만큼 기도하지 못했고, 엄마만큼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했어. 그래서 나의 하나님보다 엄마의 하나님이 더 빨리 기도를 들어주실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엄마가 지금은 쉽게 부를 수 없는 엄마의 하나님께 내가 기도할게.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이것뿐이야.

 

엄마 때문에 하나님께 가는 길이 막혔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고 싶은데 엄마가 주입한 하나님이 떡하니 산처럼 막고 있다고, 내 힘으론 넘을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엄마 앞에서는 불신앙을 연기했다. "기도 혀, 기도 밲이는 없다" 이 말이 싫어서 기도하지 않는 척했다. 주일에 물건을 사고팔아 주일성수를 밥 먹듯 어기고, 성경도 안 읽고, 아이들과 가정예배 드리지 않으며, 말씀으로 가르치지 않는다고. 실은 엄마에게 배운 하나님을 버리면서 그분께 더욱 가까워졌는데. 결국 엄마가 가르쳐준 예수님 사랑으로 예수님 사랑에 가 닿게 되었는데 엄마가 알아듣게 설명하지 못했다. 나도 엄마처럼 매일 기도하고, 매일 말씀에 목마른 삶을 살고 있다고 고백하지 못했다. 엄마의 딸의 딸 채윤이가 엄마의 하나님께 기도하는 저 신앙은 엄마의 엄마에게서 온 것인데. 엄마가 천국에 있든, 깊은 잠에 빠져 있든 어디서든 채윤이의 저 기도를 알았으면 좋겠다. 이게 다 엄마 덕분인 걸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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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larinari 2020.03.28 10:08 신고

    채윤이 글은 '새벽에 쓴 글이라 부끄럽다'며 금방 비공개로 바꿨다. 그럼에도 엄마 글에 인용하는 것을 허락해 주어 인용할 수 있었다.

  2. BlogIcon ㅅ ㅣㄴ ㅐ 2020.03.29 01:43 신고

    난 한번도 말한 적이 없는데 언니가 내 맘을 여기다 써 놓은 줄 알았어요..
    저도 정말 그 맘 때문에 셋째 볼때마다 눈물이 났었는데...
    채윤이에게도 고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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