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없다. 엄마 방에도, 김포요양병원에도, 김포우리병원 응급실에도, 일산병원 응급실에도 엄마가 없다. 엄마의 몸이 없다. 그 몸은 어디 갔을까? 엄마가 죽었다는 것은 엄마의 몸이 없다는 것, 여기 없다는 것이다. '여기'란 어디지? 여기, 내가 있는 곳. 나의 세상. 2주 정도, 그 이상 엄마를 보지 못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통화조차 하지 않고도 잘 살았다. 엄마와 별다른 연락 없이 한 달도 잘 살 수 있었다. 나의 세상이 굴러가는데 무리가 없었다. 엄마의 몸이 없어지자 세상이 이상해졌다. 엄마의 존재가, 몸이 없는 엄마가 내 세상을 장악했다. 엄마 생각만 하게 된다. 몸의 부재로 강력한 현존이 되어 버렸다.

 

2주 전, 3월 11일 수요일 아침 6시. 엄마의 몸을 안치했다. 두렵고 추운, 어둠을 끝을 향해 나아가는 느낌으로 달려가 아직 몸으로 여.기. 있는 엄마 몸을 만났다. 차가운 스테인리스에 누워 있기엔 아직 따스했다. 환자복을 입고 콧줄과 호흡기를 뗀 엄마 얼굴이다. 입관식에서 다시 만난 엄마는 눈을 너무 꼬옥 감고 있어서, 표정이 없어서 우리 엄마 같지가 않다. 맨질맨질 손을 얹고 쓰다듬기 좋았던 이마. 엄마가 너무 눈을 꼭 감고 있어서, 단정하게 누워 있고, 장례사들이 예의가 바른 통에, 너무 순순히 엄마 몸을 보냈다. 아아아아, 엄마아, 엄마아…… 절규했어야 하는데. 피를 토하며 엄마 몸을 안고 울었어야 했는데.

 

나는 엄마를 못 떨어지는 아이였다. 동네 사람들이, 교인들이 하도 예뻐해서 이 집 데려가고 저 집 데려가고 했다는데. 그래서였을 것이다. 내가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은 엄마였을 테니까. 엄마가 없으면 우는 아이였다. 우내미라고 놀림받았다. 일 년에 두 번 부흥회를 하면 강사 목사를 집에 모신다. 엄마가 교회 집사님들과 함께 식사마다 산해진미를 차려냈다. 엄마를 잘 떨어지는 동생은 이모집, 외갓집으로 보내졌다. 그런 경우 큰 아이를 보낼 테지만 나는 엄마 떨어져 한 밤이라도 보낸다는 것이 불가능한 아이였다.

 

세 살이나 되었을 어느 밤, 길가에서 택시 잡던 기억이 어릴 적 첫 기억에 가깝다. 큰 이모 집에 갔다 엄마 찾고 우는 통에 그 밤에 다시 집으로 돌아온 얘기. 초등학교 저학년 때 엄마가 서울인지 어딜 갔다. 서울을 가도, 외갓집을 가도 엄마 몸에 껌딱지처럼 붙어 갔을 것인데. 그날은 어쩐지 엄마만 갔다. 이제 다 컸으니 가능한 일이라고 나를 설득했을지 모른다. 엄마 없는 그 밤에 밤새 토하고 아팠다. 아버지가 당황하고, 다음 날 집에 온 엄마가 징글징글해했던 기억. 

 

심리학으로 말하자면 애착형성이 잘 되지 못한 것이다. 엄마가 눈에 없어져도 존재한다는 신뢰가 든든하지 않은 것이다. 사물의 영속성, 내 눈에 보이지 않아도 사물은 존재한다는 개념은 벌써 생겼을 테지만 엄마의 존재가 내 눈 앞에 사라져도 여전히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이 취약한 것이다. 머리의 문제가 아니라 가슴의 문제이다. 엄마를 더 사랑하거나 좋아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다. 어릴 적 집착과 좌절 때문에 자라서는 '차거운 딸'이 되었다. 그렇게 추구하던 엄마 몸에 스킨십도 없다고 늙어가는 엄마가 섭섭해했다. 

 

그 엄마의 몸이 여기 없다. 내 눈에 보여도 김포 풍무동에 있을 몸, 베란다에 앉아 햇볕을 쪼이고, 소파에 앉아 강아지 재롱을 보고, 다시 긴긴 낮잠을 잘 엄마가 있는 줄 알아서 잘 살았는데. 여기 어디에도 엄마의 몸이 없으니 유아기적 애착이 원초적 그리움이 한꺼번에 살아와 불안과 슬픔으로 살 수가 없다. "아이구 개운허다, 아이구 개운혀. 딸이 있응게 좋지. 손톱도 깍어주고" "얼라, 사모가 양말도 안 신고 맨발로 댕기네" "야야, 기도 밲이는 옶어. 사모가 기도허야 허는 거여" "여보세요, 정신실이여?" "미안허다, 복 받어라" 몸과 함께 목소리도 사라졌으니.

 

엄마가 몸에서 해방되기를, 찬송과 시편 23편과 자존심이 담긴 정신이 낡은 몸에서 해방되기를 얼마나 기도했던가. 하나님, 나는 괜찮아요. 나는 괜찮으니 엄마 영혼을 해방시켜 주세요. 저 몸에 담기기에 엄마 영혼이 너무 아름다워요. 한 달여, 타들어가는 심정으로. 아니 지난 몇 년, 늙어 부자유하고 짐이 되는 당신의 몸을 미안해하는 엄마를 보며 기도했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천국 소망이 빛을 발해야 하는 이 시점. 아기 적에 터득한 사물의 영속성 개념이 아니라 영혼의 영속성을 알아들어야 할 지금, 나는 다시 퇴행이다. 엄마 몸은 여기 없지만 어딘가에 엄마가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처음 엄마 떨어져 잤던 밤처럼 매일 어떤 감정들이 토악질로 나온다. 돌아가시기 전날 마지막 전화로 마지막 찬송을 불러드린 후에 내 인생 가장 어른스러운 말을 엄마에게 했다. "엄마, 가! 엄마 이제 가! 나는 잘 살게. 엄마 이제 편히 가!" 이럴 줄 몰랐지. 엄마 몸이 여기 없는 것이 이런 건 줄 몰랐지. 내가 어른이 된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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