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되어 연애하기(..) 31

 

 

젊은 시절 여성학자 오한숙희 선생의 글을 읽다 충격 받은 적이 있습니다. 어느 책 어느 페이지에 있는지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아내는 더 이상 섹시하지 않다이 한 문장입니다. 남편의 일기장에 적힌 글을 보고 잠이 오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저 역시 저자 못지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는 사랑과 행복으로의 초대, 결혼’을 그리는 꿈 많은 크리스천 청년이었고, 오한숙희 선생은 나름대로 평등하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결혼했는데 배우자가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으면 어떡하지? 마침 그때 새로운 다른 남자가 눈에 들어온다면? 이런 상상을 해보곤 했는데, 설마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 믿고 싶었습니다. ‘아내는 더 이상 섹시하지 않다이 말은 결혼 후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걱정을 해보죠? 이제는 제가 경험자로서 말해줄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아내는(남편은) 더 섹시하지 않습니다. 여친처럼, 남친처럼 섹시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고장 난 브레이크처럼 멈출 수 없는 격정적인 스킨십 질주? 이런 것 거의 없습니다. ‘네 살이 내 살, 내 살이 네 살수준입니다. 그러나 속단하지는 마십시오. 스쳐 닿는 살결이 더 이상 짜릿하지 않다고 하여 사랑이 없는 건 아니거든요. 아내가(남편이) 섹시하지 않으면 불행할 거라는 선입견도 넣어두시고요. 케미의 끝이 모든 것의 끝은 아닙니다.

 

케미를 일으키는 사랑을 말하는 에로스는 인간 안의 본능적인 욕망이고 강력한 에너지입니다. 프로이트(Freud)는 에로스(eros)를 죽음의 본능인 타나토스(thanatos)와 대비되는 삶의 본능으로 말합니다. 이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주는 부정적인 사례들이 많습니다. 옛 애인을 찾아가 사랑의 이름으로 폭력을 행사하거나 심지어 살인을 저지르는 일, 거절당한 사랑의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있습니다. ‘첫사랑이란 말에 (나이 지긋한 분들까지도) 너나 할 것 없이 눈빛이 아득해지는 것은 미완의 에로스 에너지의 긴 여운일 것입니다. 수많은 노래의 주제가 사랑, 이루지 못한 사랑인 것도 같은 이유겠지요. 확실히 우리 문화는 짧게 끝나고 마는 에로스에 지나치게 집착합니다. 알면서도 또는 정말 몰라서 품는 로맨스에 대한 환상도 어마어마하지요. 나자연을 열심히 읽으신 독자라면 케미의 끝이 진짜 사랑의 시작이란 것 정도는 아시겠지요? 영화든 소설이든 내로라하는 러브스토리는 모두 진짜 사랑이 시작되기 직전에 끝난다는 것도 알죠? 사실을 말하자면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유시진 대위가 살아 돌아온 해피엔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둘이 사는 일이 진짜 이야기죠. 드라마 종영이후, 2년 지속되는 일상 속에서 서로 더 이상 섹시하지 않을 때, 그때가 진짜 사랑의 시작이지 말입니다.

 

그래서 드라마는 망상일 뿐이고, 에로스는 아무 가치가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에로스를 저급한 인간의 사랑으로, 아가페만이 신적인 사랑이라며 떼어낼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두 가지 외로움에 대해 말한 적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연결되고 싶은데 그렇지 않은 현실에서 오는 첫 번째 외로움은 결코 하찮은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통해서보다 근원적인 목마름으로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외로움은 하나님을 향한 갈망입니다. 같은 맥락으로 에로스적 갈망과 신적인 사랑의 연결고리를 찾는 것이 사랑의 성패를 좌우한다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아내는 더 이상 섹시하지 않다는 말을 케미가 끝났다, 에로스 사랑이 끝났다라고 읽는다면 이제 새로운 사랑이 등장할 때라는 뜻입니다. 에로스라는 꽃이 졌다고 슬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열매를 위한 자연의 순리와 같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혼 후 아내가(남편이) 더 이상 섹시하지 않을 때 사랑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오늘 여러분의 지질한 연애일상 역시 더 큰 사랑과 연결되어 있음을 환기시키기 때문입니다. 연애에 관련된 좌절, 슬픔 같은 것들을 어디로 가져갈 수 있는지 알려줍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소개팅으로 털린 영혼은 스타벅스 앉아서 네 친구에게나 털어놓으렴. 내가 너의 지질한 연애사까지 신경 쓸 수는 없지 않니아니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 단기선교 말고 네가 가장 아파하는, 상실감을 느끼는 그 얘기를 먼저 해보자꾸나. 너의 온 삶의 에너지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내가 안단다.’ 그분은 우리 영혼 안에 물처럼 오시는 분이라 상처받아 손상된, 우리 영혼 가장 낮은 곳으로 흘러오시는 분입니다. 여러분의 로맨스(또는 로맨스가 부재하는 현실조차) 이미 거룩하여 그분과 닿을 끈임을 잊지 말고 일평생 사랑을 배우며 살기로 합시다. 아내가, 남편이, 애인이 더 이상 섹시하지 않을 때, 그 좋던 친구의 결점이 크게 보여 부담스러워질 때는 전에 몰랐던 다른 사랑의 차원으로 들어갈 때입니다. 몰랐던 곳입니다. 막막하지만 한 걸음 내디뎌보는 모험심이 필요하고 용기도 필요하지요. 그렇게 우리는 아가페 사랑을 향해 나아갑니다.

 

 

[QTzine] 2016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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