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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멤버 0416

에로틱 파워

larinari 2019. 10. 5. 14:30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하루 종일 강의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란 걸 몸이 정직하게 말한다. 9월28일 토요일. 내적여정 하루 세미나 마치고, 평소 같으면 회식으로 긴장 풀 시간이지만 간단한 식사하고 서초동으로 향했다. 연구소 공식 일정도 아닌데 연구원들이 죄 서초동으로 출동이다. 몸이 안 좋아 집에 계시는 선생님은 아쉬워 어쩔 줄 모르시고.


서초역에서 나갈 수나 있을까 하면서 그저 사람 파도에 밀려서 떠나녔다. 파도에 몸과 마음과 목소리를 맡겨 흘러간다. 하루 종일 강의하느라 목을 썼는데 어디서 새힘이 흘러나와 검찰개혁! 검찰개혁! 외치며 춤추듯 걷고 있었다. 


인파와 구혹 속에서 귀를 의심하게 하는 구호를 들었다. 문재인 개새끼, 문재인 개새끼. 뭐라고? 200만 인파에 둘러싸인 섬같은 맞불(은 무슨!)집회 앞이었다. 우리는 인산인해지만 쌩목인데 빵빵한 스피커에 대고 어떤 여성이 외쳤다. 


법치수호-조국구속-문재인 탄핵


스피커가 선동하면 쌩목의 촛불들이 하하 웃으며 받아쳤다. 


검찰개혁! 조국수.호! 문재인체.


누가 어디서 시작했는지 알 수 없지만 외치는 소리에는 흥이 넘쳐난다. 번쩍 촛불을 드는 팔도 춤을 추듯 흔들린다. 높다란 무대 위에선 남자는 빵빵한 스피커로도 부족하다는 듯 피를 토한다. 문재인 개새끼 조국 개새끼. 온몸을 뒤틀어 젖먹던 힘까지 짜내는 폭력성이 차라리 가련하다. 촛불 시민들은 힘도 안 들이고 하하 웃으면 문재인, 체고!로 받아친다. 흘러가는 인해, 사람의 파도들, 이 사람들이 진심 체.고! 체고! 최고!


지난 8월, 검찰개혁 정국이 시작되던 시점 조국 장관 가족의 안위가 걱정되어 잠을 잘 자지 못했다. 그 어간에 투병 중이시던 권사님의 병세가 악화되신 일이 겹쳤다. 며칠 인생 최악의 불면의 밤을 보내고, 권사님 장례를 치르고, 연이은 여름 수련회 강의로 몸과 마음의 에너지가 한 칸도 남지 않았었다. 남편의 분석만 간간이 들으며 가급적 뉴스를 멀리했다. 내 한 몸 지키기 위한 방어였다. 그래도조국 장관 가족의 안위가 걱정되었다.


촛불 광장에 나가면 에로틱 파워가 사람과 사람 사이를 흘러다니는 느낌이다. 에로틱 파워란 다름 아닌 프로이트가 말하는 삶 충동이다. 성 충동 그 이상의 에너지이다. 가장 긍정적으로 발현될 때 생명 에너지라 할 수 있다. 여성신학자 카터 헤이워드는 하나님을 '에로틱 파워'라고 불렀다고 한다. 바로 그 충만한 생명, 생기이다. 서로에게 한없이 너그러지고, 기꺼이 자발적으로 양보하면 길을 터주고, 가져온 것을 나눠주는. 별다른 말이 없어도 긍정 에너지로 하나 되는 느낌이다.


남편이 기독교인들의 이기적이고 편협한 자아를 설명하며 들려주는 자기 경험이 있다. 어렸을 적 어머니따라 기도원에 가서 겪을 일이다. 앉을 자리가 비좁아 한 번씩 공간을 만들어야 하는데 강사 목사가 '할렐루야' 하면 '아멘'을 외치며 방석을 들고 앞으로 한 뼘씩 이동하는 시간이었단다. 상상할 수 있 듯, '아멘'은 크게 외치되 앞으로 나가지 않는 분들이 있고 그분들 앞에 공간이 생겨 편안해지되 바로 뒤에 앉았던 엄마 따라간 어린 아이는 뒤에서 밀리고 앞에서 막히니 숨이 막히는 지경이 되었다고.


촛불 광장에 나가면 딱 그 반대이다. 자기 공간을 내어주는 사람들로 중간에 누가 화장실이라도 갈라치면 바로 길이 난다. 나가는 사람의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도 그렇게 말랑할 수가 없다. 그 사이에 들리는 욕설은 타나토스 충동이 광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생생한 현장이다. 극단의 공격성, 배제와 혐오. 자기로 가득 차 누구도, 무엇도 침투할 수 없는 타나토스의 감옥에 갇힌 자로 보일 뿐이다. 


젊은 시절에 기도가 목말라 어느 대형교회 철야집회 간 적이 있다. 극장식 좌석이었는데 늦게 온 사람들이 안쪽의 빈자리로 들어가려 할 때, 무릎을 틀어 자리를 내주는 분들의 짜증스런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심지어 통성기도를 한 판 하고나서 찬송 부르는 시간이었다. 마냥 비난할 수는 없는 것이 나 역시 종교생활에 익숙할대로 익숙한 인간이기에 어디서 어떤 본색을 드러낼지 모르니까. 


어쨌든 촛불광장에는 교회에서조차 찾아보기 힘든 톨레랑스가 있고, 유머와 재치로 받아치는 너그러움이 있고, 에로틱 파워가 사람들 사이에 강처럼 흐른다. 희한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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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mments
  • 프로필사진 sparkle 2019.10.09 00:17 사실, 정치의 문제는 우리가 각자의 하나님을 알고, 각자의 정의와 공의의 감각이 있듯,
    인구수만큼이나, 수천만 가지의 정치적 입장이 있지 않을까, 작가님의 강의를.. 통해 유추합니다.

    사실 저는 조국.. 을 가족처럼.. 염려하는 많은 사람들이, 박근혜를 불쌍해 하는 어르신들, 삼성일가의 안위를 걱정하는 일반 직장인들처럼, 이해는 가나 적절한 수준의 (인권적 연민과 같은) 걱정인가 싶은 생각이 들어요.

    그만큼이나, 우리가 존중하고 존경하고 때로는 보호해줘야할 정치적 인물이라기 보다는, 비판적 지지를 보내고, 과도한 마녀사냥을 저지하는 수준의, 검찰과 언론의 공격도 받지만 최고수준의 변호사 14명을 쓸수 있는 일반 서민들은 가달수 없는 '부르주아' 라고 아마도 평생 노력해도 부르주아가 될수 없을 평범한 20-30들은 생각하지 않을까 해요.

    검찰개혁.. 사실 적폐청산이라는 대의를 위해 그 개혁을 미루고 오히려 힘을 실은 것이 문 정권 초반기의 일입니다. 박을 향한 칼은 정의의 칼이고, 문의 사람을 향한것은 정치의 칼일까요?
    (죄질이 다르다기엔, 사실 역시 평범 한 20-30 의 눈엔 그깟 표창장 위조따위.. 그깟 민정때 가족 비리 따위.. 이렇게 볼수도, 보아서도 안되는 그저 비리 일 뿐이지요.)

    사실 태극기ㅡ한기총 집회도 얼척없지만 마냥 조국수호 외칠수도 없는 젊은 세대의 눈에, 어쩌면 서초동 집회의 분들은 어떤 트라우마의 경험, 마땅이 자신들이 선이요 타자에게는 그 선이 없는 (또는 타자에게있는 악은 적폐요 비슷한 자신들의 악은 인정할수 없는) Modernity 를 꼭 붙잡아야 하는 일련의 경험이 있지 않았을까 추정할뿐입니다. 사실 그 경험세계를 직접 경험 없이 단정 혹은 단죄할수 없는 저의 경험의 한계또한 있겠지요.

    **postmodernity 의 세례를 입은 이들에게는, 완벽한 절대선과 진리의 단 맛보다는 너도 옳으며 그르듯 나도 옳으며 그르다. 진리의 일부를 알뿐, 우리안에 공통선과 공통악이 있다..의 경향이 있는것 같아요.
    이것이 합리성, 공정, 등의 성향으로, 어떤이들에게는 흐리멍텅한 보수성으로도 비춰질것 같습니다.

    이와는 별개로,
    원래 정치의 장은 확장된 종교의 장, 아니 종교성이 비로소 온전해지는 장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의 삶자체가 정치이듯, 종교안에 정치가 분명 있으니까요.

    다만, 우리가 회의하며 신앙을 하듯,
    우리가 사랑하는 정치인도 틀릴수 있고,
    때로는 다른 정치집단안에도 어떤 진리의 단면 혹은 경청해야 할 단면이 있음을 알며 정치함도 중요하지 않을까요?

    물론 여전히 광화문 현장에서 배움을 구하기란 쉽지 않겠습니다만.. 그 또한 그 세대와 집단의 경험의 한계를, 그리고 그것이 주는 교훈과 같은 유산 한자락을 배울수 있는것을 아닐지.

    조심스레 댓글을 남깁니다.

    제 직업이 정치도 아니고, 뚜렷한 신념이 따로있는것도 아니면서 이렇게 댓글을 남기는 것이 저에게어떤 좋은 결론도 주지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넓은 마음으로 저의 짧은 경험과 좁은 시선도 동의는 하지않을지언정 잘 들어주시지는 않을까 어떤 기대로 지나가다 남깁니다.

    긴글, 읽어주신 애정에 감사를 드립니다:)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19.10.09 08:49 신고 sparkle님, 댓글 감사합니다.
    나눠주신 생각보다 마음이, 댓글의 내용보다 태도가 고맙게 느껴집니다.

    댓글 유발하지 않으려고, 몇 단락을 버리고 다시 쓰고 버리며 머리 많이 굴린 글인데요. 결국 수포로 돌아갔네요. ^^

    정성 들여 정중하게 써주신 글에 저도 급한 일과 글 마무리한 후 다시 댓글 드리겠습니다. 감사해요.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19.10.13 10:12 신고 sparkle님 나눠주신 정치, 종교, 정치 안의 종교에 대한 관점에 동의합니다. 한 발 더 나아가 박근혜를 염려하는 어르신들이나 조국 일가를 염려하는 저같은 사람의 연민이 과도하다는 면에서 다르지 않다는 말씀도 심장박동이 빨라지지만 인정하겠습니다. 광화문도 아닌 서초동도 아닌 곳에서는 둘 다 그렇게 인식되겠어요.

    저에겐 '비판적 지지'는 어려워요. 객관적이지도 끌리는 감정을 잘 절제하지도 못하거든요. 그저 제 마음이, 몸이 이끄는 사람을 사랑하고 지지하죠. 실망하게되면 아프게 실망하고요. 정치도 그래요. 저는 광화문 어르신들을 악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그분들에겐 그분들의 선과 도덕이 있다고 생각하고요. 심지어 요즘 화요일마다 광화문을 지날 일이 있는데 백팩에 태극기와 성조기 꽂고 어슬렁거리는 어르신들의 뒷모습을 뵈면 커피라도 한 잔 사드리며 얘기 나눠보고 싶단 생각을 해요. 다만 몇몇 정치인들과 종교인들은 사악하다고 생각해요.

    정치적 입장만큼 확증편향적인 것이 있을까요? 이미 자신이 가진 입장 안에서 뉴스를 선택하고, 팟캐트를 선택하여 논객들의 논평을 선택하는 거죠. 저 역시 확증편향 안에서 선택하여 서초동에 가요. 그러니 제가 어떻게 광화문, 광화문 아닌 곳에 있는 분들을 객관적인 '악' 또는 '옳다, 그르다'를 판단할 수 있겠어요?

    저의 확증편향성은 sparkle님 말씀하신 트라우마의 작용이라는 것 인정합니다. 저의 정치적 도덕성은 트라우마에서 기인합니다. 대학 1학년 때 처음 접한 광주민주화 운동 사진, 책으로 읽고 충격받았던 전태일, 그리고 동시대 사람들 박종철, 이한열, 87년 의 대선, 그리고 가장 가까이 노무현, 노회찬.... 이런 분들의 삶과 죽음이에요. 님의 sparkle님 댓글을 읽고 저의 서초동 행보를 생각하다 아하! 했어요. 저는 서초동에 그분들을 만나러 가는 것 같아요. (믿어지실지 모르겠지만^^) 코앞의 일상을 살지만 내 일상이 누군가의 핏값이라 생각하면 뭉클하고, 정신도 차려지곤 하거든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다시 허리를 세우게 되고요. 그것을 일깨우는 것이 앞선 죽음들이에요. 그 죽음의 원형은 바로 저의 예수님이지요.

    이것은 저만의 트라우마이고, 저의 확증편향적 이념임을 알아요. 대학 1학년 때부터 저를 형성한 정체성이지요. 여기엔 더 많은 정치적 신앙적 고민과 분노와 슬픔과 부끄러움의 이야기가 담겨 있지요. 이 서사만이 제가 서초동에서 촛불을 드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요. 매우 주관적이지요. 그러니 저는 비판적 지지가 어려워요. 주관적 '선'이고 '지지'이기 때문에 누구의 지지를 판단할 마음이 없어요. '지지' 편향'이 다름이 확인될 때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요. 그것까지 어쩌겠어요.

    남겨주신 댓글로 며칠 저를 돌아보게 되었어요. 저의 어떤 트라우마들을요. 남모르게 눈물을 훔치기도 했네요. 제겐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다르게 느껴지지 않아요.

    좋은 댓글 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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