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Mansplain

 

약간 활자중독에 유행에 뒤쳐지기 싫어하는 성향도 있어서 SNS를 완전히 끊지 못한다. 걸어다니는 언론사 같은 사람들이 있어서 신문에서 볼 수 없는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며. 무엇보다 좋은 필자의 글을 바로 바로 읽을 수 있는, 바로 튀겨낸 아삭한 튀김 같은 맛 때문이다. 책과는 다른 정보와 배움과 통찰을 주는 글을 싱싱할 때 읽는 즐거움이 있다. 어느 날 깨달았는데 내가 결코 클릭하지 않는 글들이 있더라. 대체로 같은 필자의 글이고, 내가 좋아하는 지인들이 열광을 함에도도(나 은근 덩달이) 도통 클릭조차 되지 않는 글이 있었다. 왜 그럴까? 이유는 별 거 없음. 지루해. 안 읽혀! 맘놓고 신경질적으로 말한다면 지겨워서 토나올 것 같애. 이 정도. 어려워도 잘 읽히는 글이 있고, 잘 안 읽혀도 읽어 내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발동하는 글이 있지 않은가. 아무튼 내 부족한 지성과  재밌는 것만 찾아 헤매는 경박함을 탓하지 않고 단칼에 안 읽어버리는 글이 있다는 것이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책 제목과 첫 글에서 그간의 '거부감 유발하는 글'에 대해 정리할 수 있었다. Mansplain. 가르치려드는 글과 말을 오래 참기란 힘든데, 게다가 진지한 남자가 그러는 건 더욱 참을 수 없는 것이었구나. 암만. 

 

 

#2 정희진

 

<정희진처럼 읽기>를 먼저 배워야겠지만 <정희진처럼 쓰기>가 참으로 부럽다. 맨스플레인 반대쪽 어딘가에 정희진의 글이 있을 것이다. '글 잘쓰고 싶다'는 생각은 하루에 한 번쯤은 하게 되는 것 같다. 잘 쓴 글을 보면 감탄과 함께 패키지로 나오는 말이기도 하다. 내 글에 대한 자부심이 없다 말할 수는 없지만 '허접한 글'이라는 부끄러움을 지울 수도 없다. 그러면서 나로서는 도저히 쓸 수 없는 스타일의 글을 선망하곤 했는데 그 실체가 프로이드식 남근선망과 같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Mansplain과 더불어 정희진 선생의 글을 곱씹으면서 얻은 통찰이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이제껏 이런 글을 선망해 왔었다. 약간 싸우려드는 태도는 기본(음메, 이것이 기선제압!). 그리고 그 호전성은 2막에서 지적 편력을 두루 보여주는 패션쇼로 이어져야 한다.(지...지금 인용된 이 책을 다...다 읽었다는 거야?) 명쾌한 결론으로 속을 시원하게 해주는 마지막 칼부림은 머스트 해브 아이템.(짝짝짝, 브라보. 이건 뭐 탄탄하구만. 반론의 여지가 없어!) 이런 글을 멋진 글이라고 생각했고 열심히 공부해서 언젠가는 나도! 하는 생각을 했었다. 싸우려는 태도와 지적인 패션쇼가 없어서 잔잔하고 밋밋하여 멋진 글이 정희진 선생님의 글이다. 짧은 칼럼 하나를 읽고도 감동을 받게 되는데 그 어떤 전의를 불태우게 되는 그런 감동이 아니다. 지성의 땅을 개척하고 싶은 의지가 아니라 그저 대지에 안기고 싶은, 지혜의 어머니 품에 귀의하고픈 욕구랄까. 내겐 그렇다. 여자 정희진 선생의 글이.

 

 

#3 카렌 호나이

 

에니어그램 공부를 하며 오래도록 이름만 들었던 정신분석학자이다. 원저를 읽어보겠단 생각을 하지 못하고 몇 년 동안 통성명만 한 채로 지냈다. 작년에 원저 한 권을 읽고 빠져들어 버렸다. 그래봐야 손에 넣을 수 있는 책이 한 권이었는데 웬일인지 올해 몇 권의 책이 한꺼번에 번역되어 나왔다. (흠, 나란 여자 유행을 선도하는 여자) 프로이트의 남성중심적 이론을 여성적 입잡에서 반박하는 대표적인 여성 정신분석가이다. <나는 내가 분석한다> <내가 나를 치유한다:신경즉 극복과 인간다운 성장> 책 제목을 보시라. 나는 궁극적으로 사람에겐 자신과 타인을 치유할 치유인자가 있다고 믿는다. 에니어그램 강의에 매달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신에 대해 던지는 (아프지만) 정직한 질문은 어떤 방식으로든 치유의 길로 안내한다고 믿는다. 전문상담가의 분석과 상담, 목사님의 치유기도보다 더 능력있는 도움은 성장하겠다는 자신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아, 물론 치유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시다.) 카렌호나이가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이 특히 마음에 든다. 우리의 성격유형은 성격장애와 건강한 성격발달 그 사이 어딘가에 있을 거란다. 여전히 융(Carl Jung)빠이긴 하지만 호나이만의 접근은 다시 한 번 컴다운 시킨다. 빨리 읽어치우고 싶은 조바심 워워~ 마인드와 마인드로 접속하고픈 심정이 된다. 다시 한 번 지성의 대지에 안겨 머무르고 싶은 마음. 10월 10일자 '정희진의 어떤 메모'는 무려 호나이의 <내가 나를 치유한다>와 영화 <사도>의 콜라보였다. 깜짝 놀랐다.

 

 

#4 정띤띨

 

여자라서 햄볶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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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이 글을 쓰고 제이언니 님이 블로그에 놀러 갔는데요.

여성 글쟁이2 이런 글이 있는 겁니다.

그 글을 읽다다 1년 전에 쓰셨다는 글까지 읽었는데,

(1년 전에 그 글을 읽은 기억이 나거든요>)

제가 무의식적인 표절을 한 것이 아닌가 싶은 겁니다.

제이님 블로그에서 짧게 정리되었지만 늘 잘 제 생각과 마음을 살피도록 해야겠습니다.

내가 안다고 하는 것, 심지어 나의 통찰이라고 하는 것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배운 것이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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