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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사람

여전히 사람, 은혜 그리고 생명

larinari 2016.07.16 20:50





1. 생명


어제, 그러니까 금요일 새벽에 돌아왔습니다. 헤롱헤롱 어질어질한 상태로 이틀 보내고 이제야 몸과 마음이 조금 맑아졌습니다. 흐릿한 몸과 정신으로 바로 전 포스팅(서점에 나왔습니다:나의 성소 싱크대 앞←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굽신굽신)도 썼고, 중간중간 정신을 잃고 잤다가, 메일함의 밀린 답신도 했고, 장을 보고 반찬도 만들고, 청소도 빨래도 했습니다. 그 순간은 정신을 똑띠했다 여겼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지난 이틀 반수면 상태였군요. 결혼하고 가장 긴 시간 집을 비운 게 되었네요. 돌아와 가장 놀란 것은 싱크대 앞의 고구마순이었습니다. 출발하기 전날에 애매하게 남은 고구마 두 개를 물에 담궜는데 어머머, 한 녀석이 저렇게 쑥 자라버린 것입니다. 나머지 한 놈은 밑둥부터 썪고 있네요. 나란히 섰는 둘을 비교하니 쑥 자란 생명력이 유난히 돋보입니다. 한편 쑥쑥 자라는 친구 옆에서 여전히 그대로인 왼쪽 고구마군은 애잔하게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2. 만남


남편이 놀립니다. 츤데레 기질있는 걸 고려하면 놀림을 가장한 걱정인 것도 같습니다. '초딩 4학년 몸'이 되어 돌아왔으니 무슨 일아냐고, 그 며칠 사이에 이렇게 될 수도 있냐고 합니다. 코스타 기간 동안 월요일 채윤이와 함께 느긋하게 식사한 것은 일장춘몽이었습니다. 이후로는 밥이 대체로 코로 들어갔을 것입니다. 코스타의 꽃은 조별모임이라고 하는데 코스타 세미나 강사 사역의 꽃은 '식사시간의 조별 상담'이 아닌가 싶습니다. 전체 집회나 여타 프로그램을 피해서 남은 식사시간은 끊임없는 만남의 시간입니다. 확실히 코스타는(아니 인생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만남입니다. 말씀에의 목마름보다는 만남에의 갈급함이 미주 각지의 청년들을 휘튼 캠퍼스로 불러 모으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실은 이 멀리서 고비용을 지불하고 시카고까지 날아가는 저를 이끄는 힘도 '만남'입니다. 때문에 만남이 시작되기 전 월요일, 화요일 오전까지는 마음이 무척 힘듭니다. 시차도 시차지만 '내가 뭐하러 여기까지 왔을까' 어리석은 질문을 되뇌게 됩니다. 막상 강의를 시작하고, 강의 후 줄을 서는 질문과 상담을 맞닥뜨리면 어리석은 질문은 흩어지고 맙니다.  


3. 사람


만남이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아, 다시 다시. 만남이라고 다 같은 것은 아닙니다. 만남의 차원이 있습니다. 기간 중에 '브릿지'라는 호를 가진 황병구 본부장님이 동갑내기 자매 하나를 소개해주었습니다. 잠시 커피타임을 가지며 소설같은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탄성이 절로 나는 간증적 삶이었습니다. 충분히 감동이었고, 참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상담하기로한 청년 하나와 시간이 어긋나는 바람에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 동갑내기 자매를 다시 만났습니다. 한 20분 짧은 시간 동안 간증적 삶 이면을 들었습니다. struggle. 20여 분 동안 그녀가 반복해서 발화한 말입니다. 그렇게나 번듯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 삶에도 남모르는 분투가 있습니다. 겉보기에 번듯할수록 분투는 더 치열할 것이며 갈등은 극심할 것입니다. 이것이 진실입니다. 이것이 사람이 살아가는 진짜 모습입니다. 나도 모르게 손을 잡게 만들고, 나도 모르게 기도하게 만드는 것은 이같은 나눔이 있을 때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것은 이렇듯 가슴에 숨은 이야기가 흘러 나오고, 내 안에서 나온 것이 흘러 들어갈 때 아니겠습니까.


4. 은혜


3년 전 처음 코스타에 갔을 때 생각이 납니다. 다녀와서 쓴 몇 편의 후기 중에 '은혜 to 더 은혜'라는 글이 있습니다. 그때 만났던 은혜 자매를 우연히 다시 만났습니다. 코스타 마친 그 주일에 시카고 다운타운에 있는 교회에서 강의가 있었습니다. 3년 전 그 은혜 자매를 바로 그 교회에서 만난 것입니다. 그녀는 저를 잊었을지라도 저는 가끔 떠올리며 기도하곤 했습니다. 내가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당사자가 몰라도 좋은 기도, 얼마나 행복한 기도입니까. 같이 저녁을 먹고 역시 짧은 시간 어떻게 지내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게다가 지금은 텍사스에 살고 있는 은슬이 엄마 송은혜와도 기간 내내 자주 톡을 주고받게 되었습니다. 카톡의 대화창에는 두 명의 'grace'가 나란히 줄을 서있는 형국이었습니다. 결국 이것은 그분으로부터 다시 오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은혜로다, 은혜로다, 한량없는 은혜로다. 모든 오늘, 모든 만남은 은혜이고 선물이라고요.


5. 생명


살아 있는 것이라면 적어도 이 두 가지를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자발성과 예측불가능성입니다. 입력된대로 같은 답이 나오는 것, 충분히 예상되는 건조한 정답이 출력되는 것은 기계입니다. 살아 있는 것은 자발적이고 예측불가능이기에 자유입니다. 정답은 없지만, 예측불허 struggle의 연속이지만, 미끈하게 맞아 떨어지는 것 하나 없지만 생명력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코스타에 강사로 가서 번지르르한 강의만 하고 왔다면 누릴 수 없는 은혜입니다. 첫 강의 망치고, 가져간 책은 잘 안 팔리고, 화장실 갈 틈도 없는 일정이 돌아가고, 몸은 바닥으로 꺼지고, 집회 시간에는 끊임없이 졸고.... 그 와중에도 살아 있는 만남이 있었기에 소생케 되는 것입니다. 돌아와보니 창가의 화분 몇 개는 주인 엄마가 자리를 비우고 물을 챙겨주지 못한 탓에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습니다. 흠뻑 물을 주고 아침에 보니 힘이 들어가 꼿꼿해졌습니다. 생명은 잠시 시드는 것 같으나 살아납니다. 오나가나 생명있는 사람이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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