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봐도 좋아하는 것이 뻔한데 어찌하여 제대로 고백할 생각은 안하고 그녀 주변을 맴돌기만 하는 남자. 누가 좋다고만 하면 고민 없이 일단 사귀고 보는 여자. 내키지 않는 스킨십이나 성관계를 단지 오빠가 상심할까봐 허락하고야마는 여자. 이래저래 결혼 프러포즈 할 때가 지났는데 결혼의 결 자만 꺼내도 방어적이 되는 오래된 남친. 나 같은 여자를 누가 진심으로 사랑하겠느냐며 열 번 백 번 고백을 받아도 결코 사랑을 믿지 못하는 여자. 흔한 심리학 용어로 낮은 자존감의 증상 내지 현상입니다. 낮은 자존감은 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서 나옵니다. 자아상(Self Image)이라고 하지요. 자신을 바라보는 자신의 관점입니다. 인식을 하든 못하든 우리는 자신의 가치, 능력, 중요성 등에 대해 나름대로의 관점을 가지고 있고,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관점이 부정적이라는 것이죠.

 

건강한 자아상을 가진 사람을 설명을 하는데 긴말이 필요 없습니다. 좋으면 좋은 대로 싫으면 싫은 대로 있는 그대로 말하고 수용하는 투명한 사람입니다. 자신의 부족함이 드러나도 잘 받아들이며 방어하지 않기에 대하기 편한 사람입니다. 반면 부정적인 자아상을 가진 사람과 관계 맺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웬만하면 오해하고(분명히 나를 비난했어!), 왜곡하는데(왜 나.... 그러는 거야!) 좀처럼 왜곡된 신념을 바꾸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신념을 지켜내기 위해 자기방어의 옷을 입습니다. 자기방어는 타인에 대한 강압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내가 그렇다면 그런 거야! 오빠 말 들어.), 살살 비위 맞추면서 구렁이 담 넘어 가듯 상황을 모면하는 방식일 수도 있고(나도 내 문제 잘 알아. 알겠고, 고치도록 노력할 테니까 이제 심각한 얘기 그만 하자) 아예 뒤로 쑥 빠져서 수동적 태도로 버티고 있는 경우(나는 괜찮아. 아무 문제없는데 왜 그래? 뭘 그렇게 예민하게 굴어?)도 있습니다.

 

부정적 자아상은 오래된 생각의 습관이기 때문에 바꾸기가 어렵다는 것이 난점입니다. 성형중독으로 해가 다르게 얼굴이 망가져가는 탤런트를 떠올려 봅시다. 웬만한 얼굴로 탤런트가 되었겠습니까. 애초에 예뻤겠지요. 예쁘기만 한 얼굴 그만 고치라고, 처음 얼굴이 제일 예뻤다고, 진심 예뻤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지금 얼마나 망가져가고 있는지 일깨워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게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나는 충분히 예쁘지 않아라는 자기인식을 바꿔야 가능한 일입니다. 자아상이 바뀌는 것은 우주가 흔들리는 것 같은 엄청난 일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저는 충분히 건강한 자아상의 소유자를 거의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다들 조금씩 자신에 대해 과대평가하거나 과소평가하면서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요. 자기방어를 위해 때때로 경직되곤 합디다. 물론 저 자신도 예외는 아니구요. 언젠가의 글에서 흥얼거렸던 회상이라는 노래 기억하시나요? ‘묻지 않았지. 왜 나를 떠났느냐고 하지만 마음 너무 아팠네. 이미 그대 돌아서있는 걸. 혼자 어쩔 수 없었지. 미운 건 오히려 나였어.’ 날 버리고 떠나는 사람을 향해 드라마에서처럼 시원하게 따귀를 올려붙이기는커녕 이유조차 묻지 못합니다. 오히려 바보 같은, 지질한, 고집 센, 무능력한 내가 밉다는 겁니다. 머리로는 배신자, 비겁한 X, 나쁜 X' 하면서도 정작 마음에서는 내가 버림받은 이유 백만 가지를 읊어대는 것이 부정적 자아상에서 나오는 목소리입니다. 이 나쁜 목소리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피해 숨던 그 순간부터 인간 안의 나쁜 목소리는 기본설정입니다. 존재론적 죄책감, 존재론적 수치심이라 하지요. 때문에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우리는 모두 이 내면의 나쁜 목소리에 휘둘리며 고통당합니다. 특히, 사랑받고 싶은 욕구 충천한 곳에 너는 이런 이유로 사랑스럽지 않아하는 목소리는 더욱 기승을 부리게 마련입니다.

 

폴 투르니에가 <인간의 가면과 진실>에서 말하는 것처럼 일그러진 자아상과 온전한 자아가 일치하는 것은 꿈같은 이야기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이 사이의 불일치를 알게 될수록 오히려 그 일치에 접근한다고 합니다. , 우리 자신의 건강하지 못한 자아상을 직시하고, 불쾌감을 느껴질 때 피하지 않고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제대로 고백 한 번 못하고 분위기로 알아달라는 소심함은 무엇입니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선택하기보다 선택당해서 사귀고 결혼하려는 무책임한 태도는 무엇이구요? 내 몸에 대한 권리를 애인에게 양도하는 것, 코앞에 닥친 결혼을 추진하지 못하는 것은요? 이렇듯 낮은 자존감은 사랑 앞에서 가장 선명하게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렇구나, 낮은 자존감이었어. 자존감이 바닥인 나는 망했다. 연애는 다 했다.’ 하지 말구요. 안절부절 못하는 바로 그 지점의 자신을 똑바로 보겠다는 결단은 언제나 늦지 않은 선택이며, 온전한 나 자신으로 향하는 첫발입니다.

 

 

 

<QTzine> 12 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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