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이제야 엄마의 장례식 얘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애도일기를 시작한 이유는 엄마의 영예로운 장례식 얘길 잘하고 싶어서였다. 아버지 돌아가신 이후 평생 마음으로 엄마의 장례식을 준비해왔다고 하지만 정작 준비된 것은 없었다. 죽음은 또다시 예고 없는 재난으로 밀어닥쳤다. 겪어보지 않은 코로나 19 사태 속에서 정신 차리고 준비할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없었다. 빈소를 차리지 않는 가족장으로 결정한 것은 단지 코로나 때문이 아니었다. 코로나를 코로나로 부르느냐, 우한 폐렴으로 부르느냐는 가족 안에서도 입장이 달랐고 그 차이가 갈등이 되지 않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렇게 결정을 해놓고도 설마 그리 빨리, 코로나도 끝나기 전에 돌아가실 줄은 몰랐다.

 

발인예배만 드리기로 했다. 가족끼리 드리되 교우들과 친척들 중 정말 아쉬운 분들께는 열어두기로 했다. "오늘이 무슨 요일이냐?" 오직 주일 11 예배를 기준으로 지남력을 유지했던 엄마. 엄마의 뜻을 받들자면 함께 예배했고 엄마를 사랑했던 교우들이 구름떼 같이 몰려오셨으면 좋았을 텐데, 목사님 두 분과 교인 서너 분을 초대하고 예배를 부탁드렸다. 입관식 후 바로 발인예배를 드리고 화장장으로 가기로. 다른 준비는 없었다. 새벽 6시, 엄마를 안치하고 그날 하루를 '이게 무슨 일이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멍하니 지냈다. 동생 집에서 돌아와 밤에 앉았는데 이대로 엄마를 보내다니...... 싶었는지 나도 모르게 말이 툭 나왔다. "나 내일 예배에 특송 부를래. 떠나서 다다른 사랑, 그거 부를게. 채윤아 MR 준비해줘" 남편과 채윤이 동시에 말린다. "부를 수 있겠어?"란다. 실은 나도 부를 수 있을 것 같아서 한 말이 아니었다. 뭐라도 하고 싶었을 뿐. 한 소절도 못 부를 거라며 가족들이 만류하는데 어쩐지 오기가 생겼다. "나 불러볼게, 안 울고 불러볼게, 나한테 힘을 줘."

 

입관식과 발인예배에 사촌 언니 오빠들이 거의 오셨다. 엄마의 특별한 동생 삼촌과 막내 이모까지. 특송 부르기 전 엄마의 마지막 시간을 말씀 드렸다. 끝까지 명료한 의식, 마지막까지 외우고 붙들고 있었던 시편 23편의 말씀을. 특히 동생 전화로 엄마와 함께 찬송 부를 수 있었던 시간에 대해 얘기했다. 말을 하다 보니, 하고 보니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임종을 지키진 못했고, 엄마의 마지막 시간 격리된 채 외롭게 보내드린 것이 아쉽고 아쉽지만 전화기 붙들고 찬송 부른 시간이 선물이었구나! 돌아보니 그러했다. 엄마 귀에 잘 들리게 노래를 크게 불러야겠고, 노래와 함께 울음소리도 커져 통곡이 되니 식구들 걱정 끼칠까 걱정되고. 구석을 찾아 쪼그리고 앉아 부르던 찬송들. 엄마, 동생, 나의 마지막 시간을 연결시켰구나! 그 순간은 내장이 끊어지도록 아프고 안타깝기만 했는데, 그렇게 절절하게 연결되었었다. 엄마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들 앞에서 바로 그 얘길 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그리고 바로 엄마가 부르는 찬송이 예배당 공간에 울려 퍼진다. '예에수 사랑허심은...... 날 사랑허심 승경이 쓰셨네' 엄마의 노래를 받아서 내가 부른다. '예수 사랑 그 사랑 나는 엄마에게 배웠네' 힘을 내서 존재를 부풀리고 섰다. 나는 어른이다, 나는 어린아이가 아니다. 나는 열세 살 어린애가 아니야. 울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불렀다. 내 노래가 끝나고, 바로 엄마 육성의 시편 23편이 울려퍼진다. 

 

예배를 마치자 동생이 앞으로 나왔다. 감사 인사와 이후 일정 안내를 하려는 거겠지. 예배 시작하자마자 내 뒤에서 누군가 주체하지 못하는 울음을 울었다. 안 봐도 동생이었다. 앞에 나와 마이크 잡았는데 표정이 환하고 여유롭다. 특유의 유머감각으로 엄마 얘길 하며 몇 번 웃음을 유발하더니 "오늘 목사님 말씀을 듣고 혼란스러운 분들이 계실 겁니다. 목사님께서 아까 저희 형제를 6남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어, 남매 아닌가? 목사님이 잘못 아셨나? 하셨죠. 그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며 생각지 못한 얘길 꺼냈다. 6남매의 진실을 더듬어 가는 것은 그대로 엄마의 신산한 삶이었다.

 

열아홉에 결혼 한 엄마는 아들 둘을 낳자마자 남편을 잃었다. 친정살이를 하며 두 아들을 홀로 키웠다. 두 오빠들 장성하여 대학을 졸업한 이후 우리 아버지를 만났다. 아버지는 북에서 월남한 홀아비 목사였고, 엄마가 다니던 교회로 부임했다. 그렇게 아주 늦은 나이에 아버지를 만나 동생과 나를 낳았다. 여기까지 4남매다. 엄마와 아버지가 각각 수양아들, 수양딸을 삼아 키운 오빠와 언니가 있다. 그래서 6남매다. 어릴 적부터 가족소개를 할 때 남매라고 해야 할지, 뭐라 해야 할지 늘 곤란했던 기억. 어, 오빠들과 왜 성이 다 다르지? 했던 기억. 이런 가족사 역시 어린 내게는 부끄러움이었다. 어른이 되어서는 부끄러움보다는 복잡한 책임감이 앞섰던 것도 같다. 마이크 잡은 동생이 엄마의 인생을 6남매 키워드로 풀면서 모두 인사를 시켰다. 이 부분, 그 순간에도 그러했지만 다시 생각해도 자랑스럽고 뿌듯하다. 짧은 장례식 중에도 2, 4, 6남매로 정리되지 않는 혼란과 곤란이 있었다. 입관식 중에 '장남, 상주 나오세요' 하면 모두 큰오빠를 보고, 큰오빠는 동생에게 손짓을 하고. 우리에겐 익숙한 상황이라 순간순간 넘길 수 있는 정도의 혼란과 곤란이긴 하다. 그럼에도 동생의 소개와 인사로 모든 것이 당당해졌다. 엄마를 자주 찾아뵙지 못하여 죄송함으로 몸을 움츠리는 오빠와 언니들까지 한 형제자매로 환대하는 시간이 되었다. 영정 속 엄마의 어정쩡한 표정이 '웃는 얼굴'로 보였다. 

 

엄마 장례식을 상상할 때 이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장례식 안내 모니터에 형제들 이름이 뜰 때 어떨까? 내 지인들 중엔 '남매'로만 아는 사람도 있는데. 자녀들의 성(姓)은 각각 다 명기해야 할까? 큰 걱정은 아니었으나 소소한 곤란함이었다. 생각해보면 엄마에게는 더 큰 마음의 짐이었을 것이다. 평생 품고 산 곤란한 사랑이었을 것이다. 돌아가시기 전 몇 년 동안 당신의 인생을 복기하고 또 복기하는 것 같았다. 어릴 적에 내가  아팠던 얘기, 아버지 돌아가시고 막막했던 얘기, 결론은 늘 기도로 고난을 이겨냈다는 것이지만. 같은 얘기 하고 또 하는 게 귀찮아 나는 늘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인생의 마지막 시간을 정리하던 엄마에겐 얼마나 중요한 일이었겠는가. 어느 날 단둘이 있을 때 엄마가 그랬다. "내가 두 아들한티 너머 미안허다. 그때는 젊고 은혜도 받기 전이고 너머 많이 때리고 쌀쌀맞게 키웠어. 어트케 그렇게 모질게 키웠을꼬......" 그래서 자꾸 눈물이 나온다고 했다. 남매, 사 남매, 육 남매 엄마로서의 인생은 어떤 것일까. 가늠이 되지 않는다. 

 

엄마도 혼자 걱정했을지 모르겠다. 매끈하지 못할 남매, 사남매, 육 남매 엄마인 당신 장례식을. 헌데 동생의 따뜻한 소개와 인사로 우리 모두 당당해졌다. 엄마가 남긴 우리가 모두 당당해지며 누구보다 엄마가 영예로워졌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엄마, 엄마 인생에 부끄러움이란 없어! 

 

아버지 장례식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장례식 주변 어느 구석에서 찔찔 울던 남매, 누구 하나 따뜻하게 돌봐주는 어른이 없었다. 다들 조용히 "아이고 불쌍해라" 혀를 끌끌 찼겠지. 기껏 들은 말은 "울지 마라, 아버지 좋은 곳에 가셨는데 왜 우느냐"였고. 그랬던 남매가 어른이 되어 엄마 장례식의 주체가 되었다. 형식적인 상주 그 이상의 역할을 했다. 안팎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순간순간 화평을 이루는 선택을 했다. 무엇보다 엄마를 영예롭게 보내드렸다. 장례식에 참석한 분들이 감동적인 후기를 전해온다. '인생을 돌아보게 되었다, 잘 사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생애 가장 감동적인 장례식이었다.' 나의 지인들에겐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못해서, 우리 엄마의 영예로운 장례식을 자랑할 수 없어서 안타깝다.  

 

육 남매의 엄마, 사 남매의 엄마, 남매의 엄마, 내 엄마.

내 엄마의 떠나는 길이 아름다웠다. 살아온 날들의 열매이며 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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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ㅅ ㅣㄴ ㅐ 2020.04.21 02:49 신고

    아팠던 한 시대를 안아주고 가신 어머니 덕분에 저도 글을 쓰고 있네요. 언니..정말 자랑스러워요. 그리고 너무 감사해요. 이 힘든 길을 멈추지 않고 와주셔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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