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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얼굴을 가진 리뷰

예술과 기어(綺語), 나의 기어

larinari 2015. 1. 27. 01:56

 

 

 

조소희, 제 14회 송은미술대상, 작가노트 중

 

"사물의 연약함과 흔들림은 언제나 나를 사로잡는다. 이것은 마치 육중한 무게를 지닌 존재가 그의 시간과 공간 안에서 연약하게 미동하는 모습이 기묘하게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런 아름다움은 단순한 개념으로 수렴되거나 시각적인 것에 머무르지 않고 다층적인 감성과 의미를 드러낸다. 말하자면 굉장히 네러티브하기도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상징적이기도, 과학적이면서 동시에 시적(詩的)이기도 하다.

(중략)

예술의 존재론적인 물음에 대해 나는 형이상학과 여타의 개념만으로 그것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정말로 내 이미지를 내 곁에서 떠나 보내고 싶은 한편, 온갖 의미로 가득 찬 탱탱한 이미지의 탄력을 열망하기도 한다. 때론 이미지가 어느 순간 제 스스로 길을 찾아 날아가고 있는 것처럼 느끼기도 한다. 나는 그 사이에서 흔들린다. 그리고 그 진동으로 내 이미지의 끄트머리가 파르르 떨리는 것을 볼 때 나는 만족감을 느낀다.

 

 

전시회장에 도착하여 작품을 보기도 전, 작가노트를 읽고 울 뻔 했다. 작가의 이미지 끄트머리의 파르르 떨림이 이미 내 가슴 깊은 곳에 전해서 파르르 파르르 했다. 감상평을 빙자하여 작품의 이미지를 걸어두고 이렇게 저렇게 알은 척을 하고 싶지만 이번 만큼은 안 되겠다. 다시 도록을 베끼자.

 

 

"조소희의 작업은 예술의 진리 추구를 위한 자기반성에 기반하여 일상의 연약하고 작은 오브제들이 갖는 힘을 사유하고 그로 인해 교차되는 역설적인 미학을 고찰한다. 이를 통해 쉽게 규정지을 수 없는 예술이 갖는 무한한 잠재력에 주목하고 예술가로서 자신의 살밍 어떻게 예술과 합치되어가는지 몸소 실행하여 보여주고 있다."

 

 

예술가의 전부라 할 수 있는 이미지, 작품을 떠나보내고 싶다는 간절함은 무엇일까. 두루마리 휴지, 식당의 냅킨, 실, 초, 봉숭아 물 들인 손가락. 영원불멸의 작품이 아니라 일상의 풍화와 더불어 스러져버릴 것들을 작품화하여 작가는 무엇을 남기고 싶은 것일까? 작품이 아니 작가가 내게 너무 많은 말을 건네온다. 세 시간여에 걸쳐 이야기 나누는 동안 파닥파닥 춤추다 내 마음의 그물에 걸린 물고기가 154 마리는 되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이 중 한 마리도 묘사해 낼 수가 없다.  구상 시인의 <시와 기어>라는 시가 <예술과 기어>라는 제목으로 그대로 작가의 작품이 되었으니 시를 읽어봄이 마땅하다.

 

 

시와 기어(綺語) - 구상

 

시여! 이제 나에게서

너는 떠나다오.

나는 너무나 오래

너에게 붙잡혔었다.

 

너로 인해 나는 오히려 불순해지고

너로 인해 나는 오히려 허황해지고

거짓 정열과 허식에 빠져 있는 나,

그 불안과 가책에 빠져 있는 나,

너는 이제 나에게서 떠나다오.

 

그래서 나는 너를 만나기 이전

그 천진 속에 있게 해다오.

그 어떤 생각도 느낌도 신명도

나도 남도 속이지 않고 더럽히지 않는

그런 지어먹지 않는 상태 속에 있게 해다오.

 

나의 입술에 담는 말이

진심에서 우러나오게 되며

나의 눈과 나의 마음에서

너의 색안경을 벗어버리고

세상 만물과 그 실상을 보게 해다오.

 

오오! 시여 나에게서 떠나다오.

나는 이제 너로 인해 거듭

기어의 죄를 짓고 짓다가

무간지옥에 들까 저어하노라.

 

 

* 기어(綺語)는불교에서 입, 마음, 몸으로 짓는 십언 중 입으로 짓는 업으로, 화려하고 유수하지만 실속 없는 말로 남을 현혹시키는 죄를 뜻한다.

 

 

작품이나 작가가 나를 가르친 것이 없으나 나는 무한 신비로운 배움을 안고 전시장을 나섰고 작가와 함께 한 카페를 나섰다. 그렇게 오후를 보내고 또 다른 배움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융 분석가와 함께 하는 모임에 참석했다. 오후 내내 영혼을 울린 작품이 준 여운을 깊이로 끌고 갈 마음 탐색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이 무슨 공교로움이란 말이냐. 밤은 오후와 달랐다. 오후에 만난 예술가가 예상을 빗겨간 것처럼 밤에 만난 분석가도 내 기대를 보기좋게 저버렸다. 

 

'자기'라는 바다에 푹 빠져 수영을 하든 목욕을 하든 용서받을 수 있는 예술가는 '자기몰입'과 '자기부인' 사이에서 이율배반적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그 흔들림의 고백은 듣는 이의 영혼에 파장을 일으켰다. 에고(Ego)의 일방주행을 인식하고 무의식의 깊은 중심과 연결되어 '자기 자신이 되게 하는 길'을 안내하는 분석가는 '자기공부'에의 자긍심에 갇혀 일말의 흔들림 없이 확고하였다. 예술을 방패 삼아 얼마든지 자신만의 세계를 피력할 수 있는 예술가는 타인의 세계를 수용하는 법을 알고 있는 듯했는데, 성찰을 통해 의식의 작은 나를 버리고 더 큰 나로 나아가야 할 분석가는 타인을 부정함으로 자기를 우뚝 세우는 확고함으로 나를 당황하게 하였다.

 

길고 혼란스러운 오늘 하루를 토닥이며 마음에 담아두는 말은 이것.

 

"사물의 연약함과 흔들림은 언제나 나를 사로잡는다."

 

화려하고 유수하지만 영혼을 울리지 않는말로 남을 속이지 않는 길은,

내가 먼저 된통 속지 않는 길은 안팎의 연약한 것들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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