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죽어가는 동안, 나는 자고 있었습니다.
내가 잠과 깨어남 사이에 만드는 어떤 틈, 어떤 구멍 속으로 
당신이 빠져버린 것만 같습니다.

내가 당신을 에레부스에 잡아두고 아직도
놓아주지 않으려 하는 것만 같습니다. 당신은 내일 다시
죽겠지만 꿈속에서는 살아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당신을 아침 속으로 데려가려 합니다. 잠에 취해 몸을 뒤척이며
눈을 뜨면서, 나는 당신이 따라오지 않는다는 걸 압니다.
거듭되는 이 계속적인 저버림.

<신화> 나타샤 트레서웨이

 

 

엄마가 외롭게 죽어가는 동안 잠에 빠져 있었던 것에 대한 벌인가. 내 몸을 아끼는 엄마가 주는 벌은 아닐 테고, 공평무사한 하나님의 벌인가. 공평하지만 사사로움이 없는 분은 아니다. 사사롭고 깨알 같은 분인 것은 알고 있으니 하나님의 심판도 아니다. 나다. 엄마가 외롭게 죽어가는 동안 잠에 빠졌었고, 일에 빠졌었고, 편안함에 빠졌던 나를 향해 공평무사한 내가 내리는 벌이다. 힘들게 잠들며, 깰 때는 더욱 고통스러울지니. 외로움 속에 엄마를 떠나가게 한 죄이고, 늙어 외로운 엄마를 잊고 희희낙락 행복했던 죄, 평생 엄마를 부끄러워했던 죄, 엄마 생을 갈취하여 평안한 일상을 살았던 죄, 말 섞고 싶어 곁을 맴돌던 엄마를 피했던 죄, 주일날 돈 쓰지 말라했는데 작정하고 일부러 돈 썼던 죄. 마땅한 죄로 여겨 달게 벌을 받겠다. 힘들게 잠들며 깰 때는 더욱 고통스러울지니라.

 

미국 시인 나타샤 트레서웨이가 어머니를 애도하며 저런 시를 썼다니. 내가 비정상은 아니라는, 적어도 나만 비정상은 아니라는 것에 위안이 된다.

 

현재라는 고통을 잊을 수 있는 유일한 처방이 현재로선 잠이다. 그 처방을 손쉽게 얻어낼 수는 없다. 쉽게 받는 벌은 벌이 될 수 없으니까. 눈을 뜬 의식의 상태가 내내 슬프고 힘들다는 뜻은 아니다. 가벼운 순간들이 있다. 현승이와만 통하는 하이 개그를 하고, 눈빛 교환하며 킬킬거린다. 채윤이가 내 성대모사를 하고, 아빠가 어설프게 따라 하다 웃음이 터지면 식탁이 환해진다. 하지만 그 환한 순간 끝에 날카로운 슬픔이 덮친다. 행복하지 말아야지. 행복한 순간은 만들지 않아야겠어. 행복한 모든 순간이 누구 하나를 잃는 순간 가장 고통스러운 기억이 돼. 자꾸 다짐하고 매일 다짐한다. 허튼 상상을 한다. 내가 죽고 없을 때, 아이들은 내가 해준 알리올리오 파스타와 김치찜과 잔치국수가 얼마나 그리울까. 그리움으로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예전 글을 찾아보니 처음 고관절 사고가 나기 며칠 전이다. 현승이랑 엄마 집에 갔는데 저녁을 먹고 엄마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너 나허구 한 번 나가볼 텨? 내가 좋은 디 데려가까?" 새로 이사한 단지 한쪽에 소나무 숲 아래로 데려갔다. 어스름한 늦은 저녁시간, 앞서 가는 엄마의 발걸음이 얼마나 빠르고 가벼웠는지. "솔 향내가 좋지? 코가 뻥 뚫리잖여." 그 아래 서서 농담하고 웃고 좋았다. 90에 가까운 연세였지만, 이미 많이 약해진 몸이었지만 젊고 건강 하달 수밖에 없는 짱짱한 몸이었다. 짱짱은 아니다. 그때도 이미 골다공증과 척추협착증으로 불면 날아갈 위태한 몸이었다. 그날 그 시간이 좋아서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마음에 담았다. 좋음을 복기하다 환상을 덧입히다 보니 엄마 생애 가장 건강한 날처럼 느껴진다. 좋았다. 참 좋았다. 그래서 가장 아픈 장면이 되었다.

 

콧줄과 호흡기를 달고 있던 가여운 모습보다 소나무 아래 미소 짓는 엄마 얼굴이 더 아프다. 거친 호흡소리만 들리는 전화기에 대고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성령 감화받은 영혼 하늘나라 갈 때에...." 찬송 불러주며 내장이 끊어질 것 같았는데. 그 통화보다 더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목소리를 변조해 전화를 걸어 속이면 한참 놀림당하다 "이거 정신실이 아녀. 야이, 이년아!" 하던 그 소리들이다. 좋았던 시간이 가장 슬프다. 

 

내적 여정 중에 엄마 작업을 하며 어린 시절의 아픔이 올라와 다시는 엄마 얼굴 안 보겠다 다짐했던 순간이 있었다. 나라는 존재를 이렇게 망쳐놓은 엄마를 용서할 수 없노라 울부짖었다. 그 과정을 통과하고 10여 년, 10여 년의 시간은 아름다웠다. 엄마와 만나는 순간순간이 가볍고 좋았다. 가볍지 말 걸, 좋아하지 말 걸, 차라리 엄마를 미워하던 그때 떠나보냈었으면.

 

아이들과 남편과, 벗들과 행복한 순간은 만들지 않겠다.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순간은 피하도록 하겠다. 좋은 느낌을 아예 느끼지 않겠다. 사랑할수록 더 멀리 하겠다. 나중에 생각날 행복한 기억을 저장해 두지 못하도록. 결심을 하니 더 캄캄해진다. 지난 토요일 밤, 엄마 떠나고 처음으로 집에 혼자 있었다. 그저 책을 읽었고, 라디오 소리만 들렸다. 바로 이거야. 웃고 떠드는 아이들도, 따뜻한 남편도 없으니 행복할 일도 없고, 쌓아둘 추억도 없어. 이렇게 살아야 해! 그렇게 인식되는 순간 두려움인지 슬픔인지 알 수 없는 어둠이 나를 덮고 거실을 덮었다. 혼자 있을 수 없었다. 

 

내적 여정을 동반하며 '지금 여기'를 살자고 얼마나 확신 있는 조언을 했던가. 오지 않은 미래를 향한 불안과 두려움, 지나버린 과거에 대한 그리움은 실체 없는 것이라고. 지금 여기로 돌아오라고. 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지금 누리는 행복, 바로 이 순간을 누리는 선택 외에 없다는 것을 안다. 행복한 오늘인데 행복하지 않을 방법도 없다. 좋은 순간 만들지 않겠다고 고립된다고 죽음이, 인생의 비극이 정복되지 않는다는 것도. 지난 4년 여, '오늘이 선물이다' 이 한 마디 붙들고 살았다. 버틸 힘을 줬고, 살아야 할 이유가 되어주었다. 선물이 되지 않는 오늘을 선물로 받아 살기로 하니 정말 선물이 되었다. 인생 그 어느 때보다 순간이 소중해졌고 내일 일을 염려하지 않게 되었다. 그 어느 때보다 남편과 아이들, 연결되어 있는 벗들이 사랑스러워졌다. 길가의 꽃이, 멀리 보이는 나무가, 심지어 그렇게 싫었던 메마른 겨울나무도 내게 사랑을 일깨웠다. 

 

오늘이라는 선물을 받아 들지도, 팽개치지도 못하게 되었다. 다시 주어진 오늘을 살지 않을 수도, 멀쩡하게 살 수도 없지만 결국 또 살아져야 한다. 행복하고 싶지 않지만 사랑하는 가족들, 벗들로 인해서 나는 자꾸 행복하다. 행복할수록 아프지만 행복을 피해 달아나면 캄캄하다. 이런 오늘이 다시 주어졌다. 잔인한 벌이다. 내 마음을 아는지 남편이 노래를 만들었다. 나 부르라고 만든 노래다. "곡을 만들 때는 부를 사람 목소리를 염두에 두게 되거든. 정신실, 불러봐." 며칠을 지나고는 "실패야. 아무도 노래에 관심이 없어." 삐친 척을 한다. 뜻은 알지만 차마 불러지지 않는 노래이다. 오늘이 선물이라니. 

 

길가에 핀 꽃 본다 그대 눈길에 피고
그대 미소에 춤춘다 들꽃 곁에 머문다
숲 속 길 걸어간다 그대 발길에 웃고
그대 노래에 춤춘다 나무 손잡는다
오늘이 선물이다 어제도 오늘이다
주님 어제를 잊으니 내 아픔 잊혀진다
오늘이 선물이다 내일도 오늘이다
주님 내일을 여시니 내 근심 사라진다

 

그런데 남편이 모르는 일이 있다. 저 가사 중 가장 마음에 안 드는 부분, 심지어 화가 나는 부분 '주님 어제를 잊으니 내 아픔 잊혀진다'를 내 마음이 무한반복으로 부르고 있다는 것을. 나도 몰랐다. 마음에서 저 노래, 저 가사가 계속 울리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아침마다 드리는 향심기도를 잊은 지 오래, '하나님' 하고 부르며 시작하는 대화를 잊은 지 오래다. 믿어지지 않는 가사를 자꾸 노래하는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이 그분을 찾아 더듬는 길인지 모른다.  

'세상에서가장긴장례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몸이 다시 사는 것을 믿사오며 1  (2) 2020.03.31
엄마의 딸의 딸의 기도  (3) 2020.03.28
오늘이라는 저주  (4) 2020.03.27
엄마가 죽었거든요  (12) 2020.03.26
엄마, 몸  (0) 2020.03.25
  (2) 2020.03.23
  1. 2020.03.27 11:11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20.03.31 23:59 신고

      그래, 소식 듣고 걱정 많이 했어. 언젠가는 선물이었던 오늘이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고통의 오늘이구나. 우리의 고통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때 위로가 될까? 같이 잘 견디자!

  2. BlogIcon ㅅ ㅣㄴ ㅐ 2020.03.27 11:22 신고

    언니의 애도의 글 중에 저는 오늘 글이 제일 슬퍼요...많이 울었어요...

    • BlogIcon larinari 2020.04.01 00:00 신고

      어느 글 울지 않으며 쓴 것이 없지만, 눈물이 많이 고인 글이야.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