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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여정

옷을 벗다

larinari 2009. 1. 20. 14:26

'이번 사건으로 경찰서장이 옷을 벗다'
어렸을 적에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 중 대충 뜻은 알겠는데 왜 그렇게 표현하는 지는 알 수가 없었던 말 중에 하나다. 모 그래도 뜻을 알만하니 다시 묻지도 않았다.(어렸을 때 아버지한테 그건 무슨 뜻이냐?는 질문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리고 크면서 왜 그런 표현을 하는 지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 사건으로 경찰서장이 옷을 벗었다' 할 때 '옷을 벗다'의 참 뜻을 머리 말고 가슴으로 배우게 되었다. 아주 오래 전 교회에서 지휘하던 선배언니가 갑자기 아기를 낳는 바람에 경황없이 맡게 된 자리가 어린이성가대, 그리고 청년성가대 지휘자였다. 사람들이 청소년기에 한 번 쯤 꿈꿔보는 게 지휘자라지만 나는 그런 꿈을 가져본 적이 없다. 노래를 하거나 피아노를 치는 일에 대한 꿈은 많았지만 내가 지휘자?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그렇다고 내 것이 안되는 것은 아니었다. 꿈을 꿔본 적도 없지만 인생에서 가장 사랑하는 일, 가장 행복한 일이 되기도 하는 것이었다.

꽉 찬 4년 동안 행복했던 옷 샬롬찬양대 지휘자 까운을 벗었다. 마지막으로 빨아서 반납하려고 집으로 가져온 것이다. 송별식사에서 덕담을 한 마디씩 나눠주시는데 어떤 분이 그러셨다. '지휘자님처럼 사랑받는 분이 있을까요? 떠나시는 거 아쉽지만 정말 행복하신 분 같아요'  맞는 말씀이다. 4년 지휘를 하면서 얼마나 많은 사랑과 존경을 받았는지 모른다. 또한 자타가 공인하는 노래 못하는, 악보 못 보는 찬양대와 함께 하면서 배운 것이 말로 다 할 수 없다.

남편이 전임사역을 하면서 지휘를 그만두고 청년부에 같이 힘을 실어주었으면 하였다. 가볍게 말했지만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계속 지휘하고 싶은 마음 충천하지만 남편의 바램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왜냐면.... 정말 많은 이유들이 있지만 이번에는 내가 양보할 차례라는 것이 가장 컸다. 결혼 10년 동안 내가 하고픈 일을 하기 위해서 남편이 양보해 준 것이 많다. 사실 샬롬 지휘를 시작하는 일도 그러했다. 당시 평신도였던 남편이 청년부 교사로 봉사하고 싶었지만 덜컥 내가 지휘를 하게 되는 암말 없이 포기해 주었었던 것이다.

그래서 한 번 '나 그래도 지휘할래' 하고 버텨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이게 순리라고 생각했기에... 정말 많은 이유를 대면서 내가 계속 지휘를 해야하는 것을 항변할 수 있었지만 할 수 없었고 하지 않았다. 작년 12월의 마지막주로 치닫던 어느 날, 몸에서 두드러기가 올라오고 간지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을 뿐 아니라, 예전에 아주 심했다가 고쳐졌던 또 다른 지병이 성했다. 지휘를 그만둔다는 말에 대원들이 여러 말씀들이 많았지만 그럴 때마다 헤헤 웃곤 했지만 마음은 그게 아니었다. '애야~ 우리 지휘자님 그만둘려고 하니까 좋아서 신이 났네' 할 정도로 헤헤거렸다. 마음과 몸이 다르게 가니 그 분열이 어떻게든 터져나왔나보다. 이사 오기 전 날 밤에 애들은 시댁에 맡기고 둘이 집에서 자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울음이 터졌다. 찔끔찔끔 나오던 눈물이 통곡이 되었다. 통곡이 대성통곡이 되어 민망할 만큼 꺽꺽 울었다. 희한하게 그렇게 울고나서 다음 날부터 몸의 두드러기도 지병도 자연스레 나아지고 사라졌다. 지나고 나서 정리해보니 단지 지휘자를 그만두는 문제도 아니었다.

아무튼, 아직도 저 까운을 보면 마음 한 켠이 아프다. 그리움이 밀려온다. 정직하게 말하면 그 자리에 앉아서 어떻게든 힘을 행사하던 일종의 권력이 그립고, 그로 인해서 받았던 사람들의 주목을 그리워하는 것을 것임을 안다. 그렇기에 '나 없이는 안 될 것 같았던' 샬롬찬양대가 잘 돌아가고 오히려 더 잘 한다는 소식은 내게 조금은 아프지만 큰 훈련이 된다.

좀 더 잔머리를 굴리고 우겨대면 계속 입고 있을 수도 있는 옷이지만 기꺼이 벗고 내려놓았다. 가끔 소명은 '내가 가장 좋아하고는 일'과 일치할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때도 있다는 걸 나이 40이 넘어 비로소 배우는 중이다. 더 이상 아쉬워 하지 말고 이번 주일에는 저 까운을 찬양대 까운실로 옮겨다 놔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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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Comments
  • 프로필사진 신의피리 2009.01.20 16:35 평생 해도 좋을 만한 일이고, 그런 당신을 보는 것도 내게도 좋은 일이지만, 하나님께서 나와 당신이 이제 '함께' 일을 하라 하신다는 확신이 컸어. 미안해. 하지만 또 다른 종류의 행복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으로, 우리 위안을 삼자. 아무래도 샬롬찬양대는 정신실의 그림자가 늘 드리워져 있는 곳일거야. ^^
  • 프로필사진 larinari 2009.01.20 21:40 아직 예전 옷에 대한 아쉬움과 새로 입은 옷에 대한 두려움이 있지만 나도 다른 종류의 행복이 기다리고 있음을 감지하고 기대하고 있어. 미안하기로 치면 완전 한 10:1쯤으로 내가 더 미안했었지.^^
  • 프로필사진 신의피리 2009.01.21 10:08 근데 상당히 제목이 선정적이군. --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09.01.21 14:31 신고 선정적인 눈으로 읽으면.ㅡㅡ
  • 프로필사진 hs 2009.01.20 21:20 한참 전에 주일학교 성가대를 지휘하시던 모습이 떠 오릅니다.
    그 시절에 무슨 대회인지 기억이 안 나는데 1등도 하곤 했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러고 보니 여러 해를 그 힘든 지휘를 하셨네요.
    몸도 약해 보이시는데 혼신의 힘을 다해 지휘하시는 모습을 뵈면
    마음이 숙연해 지곤 했습니다.
    이젠 좀 쉬세요.
    하긴 사모의 역할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 프로필사진 larinari 2009.01.20 21:42 어린이 대회에 나가서 1등을 두어 번 했었죠.^^
    그 때 같이 1등 먹었던 애들이 지금 청년부예요.
    혼신의 힘을 다 쏟을 만큼 제게는 행복했던 일이었나봐요.
    대신 주일 아침이 참 여유롭고 좋아요.
    하루 종일 사역하느라 힘들 도사님 아침식사 챙길 수 있는 것도 감사하고요.
  • 프로필사진 forest 2009.01.20 21:58 제목을 보면서 신임경찰청장 옷 벗는 얘긴줄 알았네요.
    오늘같은 날 경찰청장 얘기 나오니까 열받아서리..
    요즘 뉴스도 잘 챙겨보지도 않는데 왜이리 부아가 치미는게 많은지..

    그나저나 글도 감동적이고 두 분이 나누는 대화도 감동적이네요.
    벗어야 하는 옷도, 새로 갈아입어야 하는 옷도,
    제 깜냥으로 언감생심 상상도 못하지만
    예전꺼도 잘 맞았지만 새로 입는 옷도 lari님 몸에 잘 맞는 느낌이예요.
    옷걸이가 좋아선지, 옷이 좋아선지... 하여간 잘 어울린답니다.^^
  • 프로필사진 larinari 2009.01.20 22:19 요새 진짜 옷을 벗어야할 몇 人이 있습죠.
    옷걸이 칭찬을 지대로 센스있게 해주시넹.ㅎㅎㅎ
  • 프로필사진 hayne 2009.01.21 01:42 뭐든지 잘나갈때 그만두어야 하는 것이다~
    평소 나의 생각이얌.
    샬롬지휘자 이상으로 애정과 정열을 쏟을만한 사역을 하게 되는 것이니
    그 서운함이 오래 가진 않으리라 믿어.
    근데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군요, 통곡할 정도로...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09.01.21 14:34 신고 그게 남편에게나 찬양대에나 속내를 쫌만 비쳐도 계속하게 될 가능성이 많은지라... 내색을 못하고 끙끙거리는 사이 머리와 가슴이 따로 놀면서 몸이 죽겠다고 이게 뭐냐고 스트라이크 하드라구요. 통곡 한 번으로 머리와 가슴과 몸이 화해를 하대요.^^
  • 프로필사진 해란^^ 2009.01.22 07:59 청년부 예배전 뒤에서 커피를 준비해 주시는 사모님. 함께 기도해 주시는 사모님..그냥 바라만 봐도 위안이 되는 사모님... 저희가 참 행복하고 또 회복되는 지체들을 보면서 더욱 더욱 행복해져요. 감사합니다. ^^
  • 프로필사진 larinari 2009.01.22 09:51 아~ 감동!
    어찌 내 맘을 읽어주고 이렇게 힘이 되는 댓글을 남겨주다니...^^ 도사님이나 나나 청년부 가서 어리버리 꾸려가고 있지만 맘으로는 아직 두려움이 많아요. 목자들 특히 두 '엄'목자님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를거예요.
    이렇게 귀한 사람을 동역자로 주심을 감사 또 감사하고 있지요. 아니, 목자 모임이 해란목자님이 한 마디 하면 바로 분위기가 떠버려요. 그런 재주는 돈 주고도 못 하는 달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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