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에 한 번씩 미용실 가는 일이 고역이다. 책 한 권 떼러 간다는 마음으로 책 두 권을 들고 다녀왔다. 읽은 곳 또 읽고, 밑줄 긋고 또 읽고 해야 하는 신경 많이 쓰이는 책만 아니면 된다. 손에 잡히는 대로 들고 나간 두 권이 미셸 트루니에의 <외면일기>와 예수회 전경훈 수사의 '영화에 비추인 삶'이란 부제의 <어리우는 당신 얼굴>이다. 우연은 없다. 손에 닿는대로 가방에 집어 넣었으나 뭔가 참 좋은 조합이었다. 외면일기 - 영화에 비추어 마음 깊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는 내면일기 - 내가 모르는 나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꿈을 적는 꿈일기. 머리를 말고 스팀통을 뒤집어쓰느라 읽을 책을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 뇌가 뜨듯한 스팀을 흡수하면서 이완이 되는지 뇌주름 사이에 감춰뒀던 일기에 관한 이야기들을 마구 쏟아냈다. 벌떡 일어나 머리 하러 간 것도, 손에 닿는 대로 가방에 넣은 책 두 권도, 열 파마를 선택한 것도 우연이 아니었나비!  난 점점 '우연은 없다, 결코 없다교(敎)' 광신도가 되어가는 중이다.


외면일기


내 동생은 시시때때로 내게 상담을 요청해 좋은 얘기 다 들어놓고 마지막은 꼭 '내~면을 바라봐, 내~면을 바라봐' 하며 허경영의 '내 눈을 바라봐'에 빗대서 나를 놀리곤 한다. 육아와 부부 문제, 일과 관련된 관계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가 아니라 '이 문제는 나에게 어떤 변화를 요구하는가'로 얘기를 몰아가는 내 일관된 방식을 풍자하는 것이다. 내 얘기가 조금만 지루해질라치면 '내~면을 바라봐, 내~면을 바라봐' 노래를 한다. 아닌 게 아니라 나는 오직 '내적인 변화, 자기 성찰'에 꽂혀 수년을 배우러 다니고 읽고 쓰고 있지 않은가. 동생의 놀림이 은근 나의 치우침에 대해 경종을 울려주는 것이란 생각에 '중는다!' 하면서도 같이 낄낄거리고 있다.

이런 내게 미셸 투르니에가 내면의 일기(journal intime)와 정반대되는 외면일기(journal extime)에 가치를 부여하는 시각이 신선하다. ["너 자신을 알라"고 한 소크라테스의 저 유명한 말이 내게는 항상 아무런 의미도 없는 명령으로만 느껴졌다. 나는 나의 창문을 열고 문밖으로 나설 때 비로소 영감을 얻는다. 현실은 나의 상상력의 밑천을 훨씬 상회하는 것이어서 끊임없이 내게 경외와 찬미를 자아낸다] 라고 말한다. 아무렴! 나 자신을 알기 위해서 내 속으로만 파고들어 얻는 것은 끝없는 자기연민밖에 없다. 작고하신 이윤기 선생님이 번역한 책, 지은 책을 두루 읽다 소개받은 미셸 투르니에, (폴 투르니)에 아니고 미셸 투르니에 스타일에 당분간 빠져들 예정이다.


내면일기


'리뷰 쓰기 전에 새로운 영화 보지 않기' 안 지켜도 좋은데, 그래서 더 부담되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보고 싶은 영화가 동시에 상영하고 있어도 연달아 보지 않고 짧더라도 리뷰를 쓸 정도의 여유를 가지고 봐야지 하는 마음이다. 블로그에 쓰다만 비공개 리뷰가 쌓여가고 있다. 마치지 못하고 영화를 보자니 부담도 함께 쌓여가는 중. 리뷰를 쓰는 데 시간이 걸리는 이유는 영화에 대한 논평이 아니라 영화를 빌어 내 이야기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영화를 공부해본 적도 없는 내가 영화를 평한다는 것은 언감생심. 그저 꿈분석을 하듯 영화를 보며 거기 비친 나를 보고 싶을 뿐이다. 영화가 받은 상이며, 감독의 전작 등에 대한 얘기가  반을 차지하는 리뷰는 적어도 내겐 재미 없음이다. <어리우는 당신 얼굴>은 그런 의미로 딱 내 스탈일이다. 쉽고 정직하고, 글쓴이가 잘 드러나는 영화 리뷰가 술술 읽혀졌다. 술술 읽다 잠시 멈추어 숨을 고르고, 술술 읽다 숨을 고르고. 밤에 혼자 옛날 영화를 다운받아 보게되곤 한다. 이것은 영화를 구실삼은 내면일기이다. 서문 중 일부이다.

[글을 쓰는 동안 제게는 생각지 못했던 크고 깊은 일들이 지나갔습니다. 오랫동안 헤어져 살아온 길러 주신 엄마를 미국으로 찾아가 만났습니다. 헤아려 보니 열 일곱 해 반 만의 일이었습니다. 살아온 삶의 반이 넘는 그 시간을 훌쩍 건너려니 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낳아 주신 엄마의 투병생활을 함께하다 하늘 나라로 보내드렸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어릴 적부터 잊고 자란 엄마를 어른이 되어 처음 만난 날로부터 열세 해라는 시간이 흘렀다는 걸 알았습니다. 문득, 제 삶의 밀물과 썰물이 교차되는 그 어느 시간의 즈음에 서 있는 저를 보았습니다여기 스무 편의 글은 마음 저 밑바닥의 침전물마저 헤집어지는 바로 그 시간들 속에서 그렇게 앉지도 못하고 선 채로 쓴 글입니다. 크게 휘어드는 삶의 어느 구비에서 영화를 구실삼아 제 삶을 반추하며 새로운 방향을 잡아가는 과정의 기록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역시 우연은 없다. 결코 없다.


꿈일기


꿈일기장을 따로 마련하여 쓰기 시작한 이후 세 권의 노트가 채워졌다. 얇은 노트들이다. 새로 꿈일기장을 장만했는데 하드커버에 두꺼운 노트라 다 채우려면 몇 년이 걸릴지 모를 일이다. 이 시점에 노트의 마지막 페이지가 끝난 것, 그리고 그 마지막 페이지에 적힌 꿈. 새로운 노트에 처음으로 적힌 꿈도 다 뜻이 있을 것이다. 우연은 없다니끼니! 내가 내 자리에 서서 세상을 관찰하고 발견하여 적는 것이 외면일기라면, 또 다른 내가 내 밖으로 나가 나를 관찰하고 발견하여 적는 것이 내면일기일 것. 꿈일기는 내 안에서 나를 주인공으로 펼쳐지는 드라마를 받아 적는 것이다. 드라마가 먼저이고 드라마를 보고 대본을 받아적는 것인데 내용인즉슨, 얼마나 허무맹랑하고 스펙타클한지! 그런데 그게 감독 연출 배역 배경까지 내가 맡아 하는 자작극이라니. 꿈일기를 채워가고 꿈을 나누면서 내가 모르는(실은 알긴 아는데 모르고 싶은) 나를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 랄라 쏠쏠미 쏠쏠 미미레이다. 이 자주색 노트가 다 채워지는 어느 날, 나는 어떤 외면일기, 내면일기, 꿈일기를 쓰고 있을까? 쌓이고 쌓일 우연, 아니 안 우연들을 흐릿한 눈으로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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