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꿈같은 여름 휴가를 말로 풀어내기가 쉽지않다.
미야자키 하야오 영화의 주인공들이 튀어나올 것 같은 정원이 있는 그림 같은 곳이었다.
이 믿을 수 없이 아름답고, 안락한 곳으로 믿을 수 없는 우정이 우리 가족을 초대해 주었다.






쌩뚱맞은 청승 에피소드 하나.
얼마 전 운전 중에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생전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해외여행을 다녀온 부부의 이야기였다. 비행기에서 주는 기내식이 돈을 내고 사는 건 줄 아는 아내가 남편에게 '여보, 배 안고프다고 해. 참어. 비행기에서 사 먹으면 얼마나 비싸겠어' 했다는 얘기다. 남편은 아내를 놀릴 양으로 두 개씩 식사를 주문했고, 화장실 가고 싶은 아내에게 지금은 내륙을 날고 있으니 이따 바다 쪽으로 날아가면 화장실을 가야한다고 놀렸다는 얘기.
진행자들이 사연을 읽으면서 요절복통 하는 바람에 나도 덩달아서 낄낄거리며 운전했지만 부끄럽게도 그 웃음 끝에 눈물이 나는 청승작렬로 에피소드 마감이었다.

그 아줌마에게 내 모습이 오버랩 되어서다. 나도 해외 나가는 비행기를 타면 딱 그 아줌마의 심정으로 긴장을 하겠지 싶어서였고, 두 진행자가 그 내용을 정말 재밌고 웃기게 희화해주는 것이 나를 놀리는 듯 착각을 하게 되어서였다.
그렇다. 난 비행기로 하는 여행, 해외여행 이런 것들에는 살짝 주눅이 든다. 내가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그게 일상사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느껴지기에 더 내색도 못하고 안으로 숨겨놓는 콤플렉스가 되는가보다. 이번 휴가를 정리하면서 자꾸만 이 에피소드가 머릿 속에 맴도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이번 제주여행은 지난 5월 말 중미산 휴양림에서 영빈이 아빠 백현웅씨가 던진 한 마디가 씨앗이 되었을 것이다. 주구장창 1박2일 붙어서 놀고도 헤어질 때는 '우리 어느 집이라고 가서 쫌 더 놀자'고 징징거리는 아이들을 보면서 '다음 번에 제주도 가서 오래 놀자. 우리 한 번 기도해보자.'라고 던지신 것이다. 그리고는 부부끼리 '한 **만원만 있으면 채윤네랑 우리랑 제주도 가서 맘껏 놀텐데....'했다는 얘기다.






지난 6월을 지내면서 이런 저런 변화들이 생겼고, 매주 목요일 마다 백현웅씨와 나는 기도를 배우는 모임에 함께 가기도 하였다. 제주도 여행을 슬슬 추진하는 것을 보면서도 난 속으로 '결국 우리는 가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결국 7월21일 제주행 아시아나 항공티켓은 예매되었다.






자신들이 충분히 누리고 남는 것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우정이라고 아니 하늘의 우정이라고 설명할 수 밖에 없는 마음으로 우리를 최고의 휴가로 초대해준 이 사람들은 누구? 이 선물같은 가족은 누구인가?






생각해보면 우리는 직장동료 것두 한 2년 정도의 짧은 기간동안의 직장동료였을 뿐이다.
남편들? 남편들은 그저 우리의 인연으로 만났을 뿐이다.
내가 채윤이 낳고 들어간 직장에 첫출근 하던날 <시냇가에 심은 나무>로 큐티를 하는 그녀를 보았고,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신혼부부라는 걸 알았고, 우리처럼 집에 티브이가 없다는 것등으로 끌렸고, 조금씩 마음을 나누게 되었다. 그저 말이 잘 통한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부부관계를 성숙시켜가는 일, 아이를 키우는 일, 여성으로서 직장생활을 하거나 접는 일, 교회를 섬기는 일, 부모님을 섬기는 일, 영적인 지도자들로 인해서 받는 상처들, 인생의 소명을 발견해 가는 일.... 어느 주제하나 이들 부부와 나누고 공감할 수 없는 것이 없다. 그렇게 우리의 만남이 10년이 되었다.






현승이는 영빈이 형아랑 만나서 노는 일이 가끔씩 가장 원하는 것의 1순위이고,
이번 제주여행에서 그 맛있는 먹을거리, 물놀이를 제치고 가장 즐거웠던 일이 '영빈이 형아랑 베개싸운 한 것'일 정도로 형아가 좋다.






여행을 마치고 공항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채윤이는 '엄마, 나 벌써부터 유진이가 너무 보고싶어. 우리 방학이니까 유진이 자주 만나서 놀면 안돼?' 라면 울먹이기도....
언니들보다 동생을 데리고 노는 걸 좋아하는 채윤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엄마, 유진이는 어렸을 때 나같애. 응, 놀 때 내 말을 안듣고 지가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그래서 함께 놀기가 힘들어' 하더니, 이번 제주여행에선 그것도 다 좋았단다.






엄마가 누나말고 형아를 낳아줬으면 좋겠는데 이제 낳으면 자기가 형아가 되는 거니까 싫은 현승이, '현승이 같은 애 말고 여자애를 낳았어야지' 하고 가끔 시위하는 채윤이의 소원이 다 이루어진 셈이다.






아이들에게도 이 만남과 이 여행을 선물 그 자체이다.






넷이 모여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보면 어느 새 '아침마당'이 되기 일쑤다.
부부사이의 깊은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결국 두 사람을 관객으로 놓고 한 부부가 아침마당식 고발과 공개부부 싸움을 하기 일쑨데.... 그러다가 나같은 경우는 찔찔 짜는게 다반산데...
이런 쪽팔린 짓을 기꺼이 지켜봐주고 비난하지 않으며 조심스레 내 모습을 보게 해주는 친구들과 삼일 밤을 지낸다는 것은 또 얼마나 큰 선물인가?






저거봐, 저거봐.
형님은 저렇게 망가지시는데 끝까지 카메라 응시하면서 관리하는 점잖은 동생 김종필씨.
이런 어려운 형삘나는 어려운 동생도 기꺼이 품어주시는 형님.ㅎㅎㅎ





이렇게 누려도 되는거야?는 마음이 3박4일 내내 마음 한 켠에서 떠나지 않았지만, 그 마음까지 알아서 배려해준 친구들. 3박4일 내내 신비로운 구름으로, 수영할 때는 구름기둥으로 우리의 우정에 함께하신 그 분의 사랑.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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