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몸이 하루가 다르게 약해진다. 허리 통증이 심해져서 앉아 있질 못하신다. 안 아프다, 전혀 안 아프다, 뻥을 쳐서라도 참석하고야 마는 주일예배를 몇 주 거르셨다. 매일 진통제로 버티신다. 누워만 있다 보니 시도 때도 없이 주무시고 가끔 낮과 밤 구분도 못 하신단다. 진통제 탓인지 통증 탓인지 식사도 거의 못 하셨다. 알고 보니 지난 주에는 삼일 금식기도를 하셨단다. '통증이 너무 심혀서 기도 밲이는 없응게' 평생의 습관대로 하셨다. 다행히 기도빨을 받아서 통증이 잦아들었고 예배에 다녀오셨다. 아무것 못 드셔도 간장게장의 간장만 있으면 밥이 꿀떡꿀떡 넘어가신단다. 시장 반찬가게에서 사다드리곤 하다 직접 담그기도 한다. 간장을 위주로 드시니 양념간장에 신경을 쓰게 된다. 양도 최대한 많이 잡고 양파, 생강, 사과, 배, 매실 등 왠지 좋을 것 같은 건 죄 넣어서 끓인다. 게의 배가 위로 오게 해야 맛있다고 하는데 게에서 좋은 것이 빠져나와 간장이 맛있어지라고 등이 위로 오게 넣었다. 엄마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엄마를 엄청나게 좋아하는, 엄마와 사이가 무지 좋은 효녀 딸이라 오해들 하실까 걱정이다. 엄마는 내내 나의 내적 여정, 영적 여정의 숙제이다. 엄마의 목소리를 떨쳐 버리는 일이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 듣는 일이었다. 동생이 느끼는 엄마와 내가 느끼는 엄마가 얼마나 다른지. 동생은 거칠 것 없이 엄마 손을 잡고 엄마를 안는다. 나는 어려서 그렇게 엄마를 못 떨어져서 울고불고했다는데 지금은 왜 이런가 모르겠다. 마음 깊은 곳에서 엄마에 대한 저항이 크다. 다행인 건 10여 년 내 안의 엄마를 정직하게 만나왔다는 것. 엄마에 대한 신성모독(모성모독?)이 아닌가 싶은 감정이 올라올 때도 피하지 않고 만났다. 여전히 엄마의 어떤 부분이 힘들지만, 아이가 된 엄마를 어른의 마음으로 돌볼 수 있게 되었다. 어른의 마음으로 덤덤하게 간장게장을 만들 수 있다.

 

 

 

 

 

 

내 열정에 겨워서 어머님 자서전 계획을 발설하고 몸 고생 마음 고생이 컸었다. 꿈은 컸으나 각본대로 되는 게 없었다. 어머님이 어머님 자신을 끌어안게 되길 기대했으나 그건 모르겠고, 적어도 내가 어머님을 끌어안을 수 없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삐뚤어진 마음에 '다신 허튼짓 하지 말자'는 허튼 다짐을 해봤다. 허튼짓은 모르겠고, 적어도 어머님을 바꾸겠다는 작당은 하지 않도록 하자. 

 

각본은 틀어졌고 책이 내 손을 떠난 것으로 끝났다 생각했는데 어머님께는 어떤 시작이 된 것 같다. 지인들께 책을 나누면서 받으시는 긍정적인 피드백, 의례적인 인사에도 외로운 어머님은 기분이 왈랑거리시나보다. 쓰실 때는 아랑곳하지 않으시더니 필자인 어머니 입장과 등장인물이며 독자인 친척이나 지인들의 견해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이제야 받아들이신다. '괜찮겠지? 뭐라고 할래나? 내가 뭐 별 얘긴 쓴 것도 없잖냐' 자꾸 물어보신다. 늦었지만 좋은 변화라 생각한다. 책이 만들어진 이후 마음의 풍랑도 있었으나 전보다 덤덤하게 어머님을 대할 수 있게 되었다. 필요 이상 친절하다가 과하게 뚱한 태도를 오가며 나 스스로 헛갈리던 분열의 폭이 좁아졌다. 아이 같이 칭얼거리는 어머니를 조금 더 어른스럽게 대할 수 있게 되었다. 

 

 

두 어머니를 마음으로 외면하며 일상을 꾸려가기는 어렵다. 짐이라면 짐이다. 얼마 전 꿈에서는 걷기 힘들어하는 어머님을 내가 담쑥 안았다. 아기를 안 듯 안았는데 아기처럼 가벼웠다. 안고 가다보니 어머님이 아니고 우리 엄마다. 역시 아기를 안는 것 같이 가볍고 쉬웠다. 실제로도 전보다 가벼워졌다. 그냥 된 일은 아니다. 힘들 때 힘들어했고, 울고 싶을 때 울었고, 미울 때 미워하면서 피하지 않았다. 죄책감인지 사랑인지, 두려움인지 사랑인지를 분별하려고 몸부림을 했다. 엄마를 향해서는 '연민'을 가장한 죄책감이, 어머님께는 '도리'를 가장한 두려움이 컸다. 그것을 깨닫고 인정하는 데 걸린 시간이 바로 이 순간까지이다. 물론 아직도 가야 할 길이다. 그렇더라도 지금까지의 여정이 꽤 자랑스럽다. 간장게장 아니면 식사를 못 하시는 고급진 엄마의 입맛을 위하여 바글바글 끓는 간장의 거품을 걷어내며 책에 대해 반응 없는 인간들에 울분을 토하시는 어머님과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한다. 덤덤하게 두 어머님을 '우쭈쭈쭈' 해드리기다. 이런 오늘이 오기까지 봄부터 소쩍새가 그렇게 울었고, 천둥 또한 먹구름 속에서 그렇게 울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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